"선물은 괜찮아요, 아빠가 돌아오는 게 선물이니까"
"선물은 괜찮아요, 아빠가 돌아오는 게 선물이니까"
  • 칼럼니스트 백운희
  • 승인 2018.04.26 13: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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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키우는 아이] 장시간 노동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

눈이 부셨다. 또 전등을 켜둔 채 잠이 든 거다. 남편이 외국 출장을 떠난 지 일주일 되던 밤이었다.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다 어느새 곤히 잠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다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옆 사람의 빈자리는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다.

처음 칼럼을 싣던 날, 남편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이 남편의 흠도 가져가요”라며 응원했다. 하지만 마침 그날 가족이 함께 본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우리의 추억은 너만이 것이 아니라 가족의 것이야”라는 대사가 나왔다. 멈칫했다.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망설임과 자기 검열의 작업이다. 나만의 추억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작정하고 남편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마침 자신이 한 말도 있겠다.

◇ 비정한 부모를 만드는 노동환경

안타깝게도 최근 그를 설명하는 문장은 “외국 출장이 잦다”이다. 바쁠 땐 일주일 간격으로 공항을 드나들고, 작년에는 1년 중 3분의 1은 한국을 떠나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생과 노력을 생각하면 ‘산업역군’ 칭호라도 주고 싶지만, 가정에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빠 없는 하늘 아래 딸과 아내를 남겨두는 ‘비정한’ 대상이 되고 만다.

아빠의 출장 기간 잠들기 전 아이가 그린 아기 천사와 이를 잡고 있는 엄마, 아빠의 손. ⓒ백운희
아빠의 출장 기간 잠들기 전 아이가 그린 아기 천사와 이를 잡고 있는 엄마, 아빠의 손. ⓒ백운희

남편의 일은 가족을 부양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데도 한몫을 했다. 물론 그로서도 억울한 일이다. 몇 년을 매일같이 대전-서울 간 출퇴근을 이어간 것은 직장이 대전인 아내의 일을 존중해서였고, 야근이 잦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아내 대신 그 시간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온 것도 그였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맞닥뜨리는 상황은 개인들을 변화시킨다. 양육자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면서 아이 키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돌봄 정책 역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비용을 써서 전담인력을 구하지 못할 경우 결국 부모 중 한쪽은 일을 그만둬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다.

그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가정을 꾸려가려 했을 뿐인데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을 이어가기 위해선 다른 한 사람은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우리 부부에게도 일어났다. 결과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좋지 않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기는 어렵다. 다만 상대적으로 급여가 많아 일자리를 지킨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됐다.

출산 후 70일 만에 복직하던 날 일터에서 누군가에게 “어린 자식을 놔두고 일하러 나온 비정한 엄마”로 지목됐던 순간의 나처럼. 그리고 이 같은 사연은 비단 우리 가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정마다 사정과 차이는 있겠지만 대게 출산과 육아를 위해 여성이 일을 중단하고, 경제적인 부담을 안아야 하는 남성은 더 과도한 노동에 내몰리는 사이 ‘맘충’, ‘독박육아’와 ‘시간거지’를 생산하는 풍토가 된다.

◇ 분리되는 아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

요즘 즐겨 듣는 팟캐스트 ‘쓰리맘 쇼’에서 진행자가 자녀의 어린이집 행사에 갔더니 여러 아빠들이 있었음에도 교사가 학부모를 “어머니”로만 지칭해 당황스러웠다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당연하듯 자녀양육과 교육의 주체는 ‘엄마’로 한정하고 아빠는 분리해 오면서 교사마저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했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예전보다 자녀 양육과 교육활동에 아빠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증가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학부모=주 양육자'라는 등식은 여전하다. TV 드라마를 봐도 학교에서 학부모와 관련된 에피소드에는 여지없이 여성, 엄마들이 등장한다. 주로 이기적이고, 자기 자식만을 생각하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은 덤이다.

학교에는 학부모의 학사일정 참여와 협력을 위해 ‘학부모회’가 꾸려지는데 이와는 별도로 ‘아버지회’도 존재한다. 없는 경우 새로 만들자는 민원이 주기적으로 제기된다. 아빠들의 학교 행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이다. 그런데 굳이 아빠를 분리하고 선별하는 활동이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학부모 속에 아빠를 참여시키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는 아빠가 없다. 오늘 오전 단체 채팅방에선 통신사에서 운영하는 학생 등하교 알림서비스가 일주일째 먹통인 것이 화제였다. 결론은 “엄마들 걱정하지 않도록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는 것. 걱정은 엄마들만 하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이제는 흔해진 아빠 참여수업을 보자. 딸이 다니던 유치원에 왜 ‘부모’나 ‘양육자’ 전체가 아닌 아빠로 대상을 한정한 것인지 문의했더니 아빠라고 못 박지 않으면 대부분 엄마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라는 해명이 뒤따랐다. 부모, 양육자의 함께하는 돌봄이 자리매김하려면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 과도한 노동시간, 개인사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회사에 몸이 묶인 채 오랜 시간 일에 매진해야 하는 삶을 수용한 채 개인사로 돌려버리는 순간 우리 사회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장시간 근로와 그 결과 생기는 일과 생활의 불균형 문제를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같은 이유로 남편이 의도하지 않았으니 내가 그의 잦은 출장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독박육아를 감내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이다.

개인사로 치부하는 순간 장시간 노동은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거나 연민의 대상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기가 없는 동안 혼자 아이를 돌보고 집을 책임져야 하는 아내, 아빠와 놀이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돌아오기를 그리워하는 딸에게 늘 미안해한다. 그리고 나는 비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편도만 열 시간 이상, 목적지까지는 꼬박 하루가 닿는 여정을 밥 먹듯 떠나야 하는 그의 고생에 마음이 아파온다.

그리고 딸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먼저 “아빠 그때 출장이에요, 아니에요?”부터 묻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아빠가 없으면 미안해한다. 일찍 철든 모습에 또 부모 마음은 짠하다.

그러다가 ‘우리는 왜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생활을 계속 하고만 있을까’라는 고민에 닿는다. 어떨 땐 귀촌을 하거나 이민을 가는 삶의 전환을 택하지 않는 이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로 마감하고 또 어떨 때는 지금 주어진 이 시간에 더욱 감사하며 행복하자고 서로를 북돋운다.

그래도 출장이 없는 날은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는 편이니까.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 조부모에게 자녀를 맡겨야 하는 가정도 있는 데 그래도 우리는 빠듯한 벌이지만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위로하며.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처럼 서로를 위로하고 이를 통해 결속하는 ‘연민공동체’가 지금 우리시대의 가족이라는 생각에 닿는 것이다.

소리는 요란한 데 실효는 내지 못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정치권의 무성의한 태도와 더불어 어쩌면 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안주하고 포기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오랜 시간 일하는 사회가 계속돼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고 답을 내야 한다.

야근(연장근무)은 가정파괴범이지만 해고는 살인이라며 더 큰 공포 앞에 현재의 시간의 내어주는 상황을 되풀이하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지점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사이 아이들은 자란다.

정책을 만드는 정부도, 정치권도, 보육, 교육 기관도, 양육자들도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의 눈높이와 의견은 얼마나 담겨 있는지 의문이다. 고정된 성 역할, 돌봄과 가사노동에 대한 천시, 놀 권리보다 눈에 보이는 곳에 아이들을 묶어두는 데 그치는 돌봄정책, 업무라는 명분이면 가족의 일 앞에 우선되는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자라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가. 

노동시간 단축은 기존의 업무를 그대로 둔 채 시간만 줄여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업무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일을 줄여야 하고, 일을 줄이려면 인식을 재구성해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자본과 토지를 물려주고 싶지도, 부모세대처럼 살지 않으려면 더욱 뛰어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싶지도 않다. 다만 사회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논의를 통해 세상이 진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더디게 가는 에움길이라도, 잘못된 길을 질러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래서 아빠의 빈자리가 결핍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고민하고 사유를 넓힐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 욕심일지라도.

아이가 물었다.

“엄마, 아빠가 이번에도 선물을 사오실까요? 음, 아니에요, 선물은 사오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아빠가 돌아오는 게 선물이니까”

*칼럼니스트 백운희는 여전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흔들리는 눈빛과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초등생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모입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조금 덜 실망하고 좌절하는 육아 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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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obi**** 2018-04-27 15:23:51
문화가 쉽게 바뀔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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