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됨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됨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 칼럼니스트 조성실
  • 승인 2018.04.26 17:53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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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중생활] 전업모가 됨을 후회함, 그렇다고 취업모가 아님을 후회하지도 않음

◇ 나는 전업주부다

나는 전업주부다. 처음부터 전업주부였던 것은 아니다. 단 한순간도 전업주부를 꿈꾼 적 없었고, 혹여 전업주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울기도 했던 나였지만, 임신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난임 치료를 받고 있었고, 유산 위험이 높았고, 그 당시 일하던 직장은 야근이 잦았다. 신혼 시절 남편이, 부부의 근황을 묻는 이들의 질문에 ‘하숙생을 치고 있습니다.’라고 답할 정도였다. 육아 휴직을 쓰고 돌아 온 선배들도 있었지만, 친정 부모님과 한 집에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또한 휴직을 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전화로 업무를 지시 받을게 뻔했다. 그 당시 나는, 출산·육아 휴직을 다 쓴 후에 아이 맡길 곳이 마땅찮다며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전에 일을 그만 두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일도 육아도 가정 생활도 모두 엉망이 되고, 그렇게 여기 저기서 민폐 인력이 된 이후에 (심지어 출산·육아 휴직도 다 쓴 이후에) 그만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 일을 그만 두는게 조금 ‘덜’ 민폐 끼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도와주는 부모님 없이 육아와 일을 지속한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에, 일을 그만두는건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란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판단을 후회한다.

그 때 일을 그만두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버티는게 나았다. 그리고 버텨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6년여간의 전업모의 세월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세월’로 평가 받을 때,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음에도 내 돈이 아닌 ‘남편 돈’을 받아쓰는 처지임을 실감할 때(남들의 말을 통해서), ‘아이들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할 일 없이 커피숍에 앉아 된장질이나 하는 맘충’이란 보이지 않는 굴레에 둘러싸인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도 않는 전업주부, 일상적인 노동을 반복하는 성인임에도 제 이름으로 된 소득을 갖지 못하는 지금의 상태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성인이지만 성인으로서의 구실을 다 못하는 사람, 노동은 하지만 노동자는 아닌 이 취급을 받는 기분이랄까.

특권학교 폐지 촛불시민행동 기자회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특권학교 폐지 촛불시민행동 기자회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 엄마도 일하러 가면 안 돼?

열 살 때쯤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OO이네 엄마는 일도 하고 엄마도 하고 멋진 것 같아. 엄마도 일하러 가면 안 돼?”

그 당시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오빠와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알지 못했다. 엄마가 결혼 전에 공무원이었던 사실도, 여고에서 일이등을 다투던 재원이었다던 이야기도, 여러명의 동생과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고 그냥 취업을 했다는 것도 모두 다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이나 더 지나서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58년생 이영자가 아니라, 그냥 ‘우리 엄마’.

내 질문 뒤에 이어진 정적을 잊지 못한다. 내 등을 밀어주던 엄마의 손길이 짐짓 멈췄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 당시엔 엄마의 표정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의미를 알게 된 건, 육년간 두 아이의 엄마로 무엇보다 전업주부로 살아 온 최근에 와서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아이가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가끔은 두렵다. 내 아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질문을 건넬 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노력한다. 나의 정체성을 전업 엄마 아무개가 아닌, 인간 조성실에 두기 위해, 자주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나는 조성실이고 엄마이지, 엄마인 것만은 아니라고. 아이를 기르는 일(育兒)이 (나를 소거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기르는 일(育我)이 되고자 몸부림쳐온 것 역시 그런 연유에서일지 모르겠다.

얼마 전 이력서를 적어 낼 일이 있었다. 내 이력서를 훑어 본 이가 혼잣말을 했다. “아이 낳기 전까지는 열심히 살았네. 경력도 이 정도면 좋고. 근데 너무 오래 쉬었다. 육년이나 아무 것도 안했네.” 상대의 입장에서라면 문제 될 게 없는 발언이었다.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한 말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안 한 세월이 자그마치 6년. 자기 손으로 돈 한 번 안 벌고(물론 중간 중간 소득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대개) 지낸 시간이 자그마치 6년. 구태여 지난 시간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해 온 역할과 노동에 대해서, 그 과정에서 습득된 숙련 기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말할 필요 자체를 느끼기 어려운 자리였다. (말해줘도 아마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 결국 우리 모두, '무능'과 '무책임' 그 사이 어딘가에 외로이 서 있다

취업모로 지내온 6년보다 더 대단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더 모자란 시간도 아닌 지난 6년의 세월. 그 시간동안 나 자신이 발전해 온 사실이 분명하다면, 기회는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취업모의 현실이라고 다를까? 이들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자주 보육·교육 현장에서 소외되고, 어느 아이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상황에서조차 ‘일하는 엄마’란 죄책을 꼬리표처럼 의식해야 한다. 요즘은 그나마 일하는 엄마에게 대놓고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을 묻진 않는 분위기지만,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특이사항이 발견될 경우, 이는 여지 없이 '일하는' 엄마에 대한 질책으로 귀결된다. 심지어 엄마들 사이에서조차 취업모와 전업모간에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고들 한다. 어떤 이는 엄마들 모임에 가면 "일하는 엄마들은 커피라도 사"란 말을 예사로 듣는다며 울먹였다. 일하는 엄마가 죄인인거냐고. 일하는 엄마들은 말한다. 어디서든 이류 인력이 되고, 죄인이 되는 심정이라고.

결국,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무능'과 '무책임' 그 사이 좌표값 어딘가에 힘겹게 서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엄마들만 그럴까. 아빠도 그렇고. 이모도 그렇고 삼촌도 그렇고. 심지어 이제 막 태어난 아이,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에게까지도 좌표값 찍기가 예사로 행해진다. 좌표값을 찍어 줄세우는게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믿는 사회. 그런 문화 속에서 모다들, 무능한 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무책임한 이로 비난받지 않기 위해 외로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무한 경쟁의 사회,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는 결국 서로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어질 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화되고 지속될 뿐.

최근 개인적으로 일련의 상황을 겪으며 생각했다.

"엄마됨을 후회하지 않음, 그러나 전업모가 됨을 후회함."

그런 마음 상태에서 취업모인 절친과 통화를 나눴다. 너무도 긴 노동시간, 엄마가 일찍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바람, 만성적인 소진 증후군, 등등. 처한 상황이 현격히 달랐지만 내밀한 대화는 끊어질 줄 몰랐다. 맞아맞아. 그렇지 그렇지. 긴 대화가 이어졌다. 통화 이후 문장을 더 채워넣었다.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통화 이후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 엄마됨을 후회하지 않음, 그러나 전엄모가 됨을 후회함, 그렇다고 취업모가 아님을 후회하지도 않음

"엄마됨을 후회하지 않음, 그러나 전업모가 됨을 후회함. 그렇다고 취업모가 아님을 후회하지도 않음."

엄마된 걸 후회하지 않지만, 전업모든 취업모든 어떤 길이든, 후회하거나 후회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상태. 아니면 그 무에든 전심으로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도 나도 같은 처지였다. 이래서 결국 엄마된 걸 후회한다고들 하는구나 싶었다. '엄마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은 사실상 '엄마 된 것을 후회한다'는 말과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같은 말이다. 우리는 같은 문제의식과 같은 고뇌 속에서, 같은 한탄을 내뿜고 있는 셈이다.

스물 여섯의 나이에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 했을 때, 스물 여덟 첫 아이를 갖고 전업주부가 됐을 때, 가장 강력하게 나를 말린 건 친정 오빠였다. 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몇 날 며칠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오빠의 걱정을 불필요한 간섭과 때늦은 관심 정도로 여겼다. 오빠는 어릴적부터 나와 달랐다. 무뚝뚝했고,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며(어쩌면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다섯 살의 나이 차이, 어린 나는 늘 오빠와 함께 놀고 싶었지만 오빠는 그런 나를 귀찮아했다. 그게 자주 서운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오빠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자그마치 십년을 넘게 떨어져 살았다. 복학생이 된 오빠와 (같은 지역 대학을 다니기 위해) 한 집에 다시 살게 되었을 땐, 집안 곳곳에서 어색함을 조우해야만 했다. 그랬던 오빠의 반대였기에 더욱 블편했던걸까. 평소에 어느 정도 일상을 나누던 사이였다면 조금은 달랐으려나. 어찌됐든, 전업모로 지내온 지난 6년의 시간을 두고 ‘너무 오랫동안 아무 것도 안했다’고 평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쌩뚱맞게도 몇 년 전 나를 뜯어 말리던 오빠 얼굴이 떠올랐다.

사회인으로서 살아 온 시간, 맞벌이로 살아 온 경험 속에 나온 현실적인 조언이었고, 무엇보다 무뚝뚝한 그가 보낸 최선의 애정 표현이었단 생각에 뒤늦게지만, 몹시도 고마워졌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한 사람을 제대로 돌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돌보는 전 과정은, 인간이 얼마나 민폐적 존재일 수 밖에 없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상 통제 불가능한 것이었단 걸 인정해야만 했고, 아이를 돌보는 순간 순간 타인의 도움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받아야만 했다) 또한, 내 몸에서 나왔지만 전적으로 타자인 아이, 그 간극에서 오는 불안은 나를 수시로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경험들이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 주었다. '양육자인 내가 아이의 삶을 핸들링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진리를 조금씩 받아들여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부딪힌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한계였다. 누군가를 품고 낳고 기르기에 턱 없이 부족한 나 자신 말이다. 엄마도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나 역시 처음 엄마가 되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자라가야 했다. 어쩌면 아이보다도 더 바지런하게. 이 모든 것들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뒤늦게 배운 사실들이 너무 많았다.

◇ 엄마가 '되어 갈'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엄마가 '되어 갈'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 순간부터 엄마여야 하고 엄마일 뿐이다. 좋은 엄마, 유능한 엄마, 착한 엄마여야 하는 건 물론이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시간, 유능한 엄마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착한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유는 갖지 못한 채로.

한 사람을 키우고, 또 그가 스스로 자라가기 위해선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사람은 돈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숱한 사람들의 애정과 돌봄, 이름 모를 이들의 선의, 맑은 공기, 뛰어놀 수 있는 땅(마당, 골목길 또는 운동장, 혹은 그 무에든지), 친구와의 우정, 입을 옷, 집과 책, 화장실, 적절한 시기의 교육 기회(배움) 등등.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 사회에서 중요하게 회자되지 못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건, 죄다 돈, 부동산, 학벌에 관계된 것들 뿐이다.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어떤 학군에 속해야하는지,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면 어느 지역에 살아야 할지,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만큼의 교육비가 드는지에 관한 정보와 영웅담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 애나 어른이나 다들 힘겹게 산다. 끊임없이 서로를 견주며 살인적인 경쟁에 짓눌리다가, 자칫 한 발짝만 뒤로 가도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것만 같은 위기감 속에 부모가 된다. 혹은, 낭떠러지에 매달려,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채로. 이게 보통 부모들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은, 성공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성공한 워킹맘 뒤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마저 그의 타고난 운이자 능력이 되고 만다. 워킹대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성공하기 위해 놓쳐야 하는 많은 것들의 가치를, 그 성공에 기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저임금(또는 무임금) 노동에 대해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화려한 슈퍼우먼(또는 슈퍼맨)의 신화에 주목한다. 반면 평범한 시민, 위대한 시민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평범하고 위대하게 사는 시민을 찾기 어려워서일까?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대선 공약에서 주목 받았던 '슈퍼우먼 방지법'이었다. (극소수의) 슈퍼우먼 신화는 워라발 세대에겐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성공만큼이나, 아이들과의 또 개인의 시간도 소중한 이들에게, 앞선 선배들의 성공담은 불완전하고 상처입은 트로피로 인식 될 뿐이다. 그마저도 갖지 못한 채 좌절하고 내몰리는 엄마들의 현실을 가까이선 지켜본 후배들이 출산을 거부한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결말 아닌가? 앞선 엄마들의 궂은 현실을 지켜 본 후배들이 출산을 거부하는게. 우리 사회가 사실적인 성평등 사회로 구조적 개혁을 하지 않는 이상 저출생 추세의 물길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이 정도는 박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전망할 수 있다. 현실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저출생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소로 자리매김한 지 십여년이 흘쩍 넘었다. 작년 한 해 신생아 수가 7만명 이상 감소하면서 올해부터 폐업하게 될 어린이집들이 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린이집난은 유치원난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학교난으로 이어질 것이고, 종국엔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로 이어진다. 어떤 이는 인구가 줄어들면 일자리 부족 대신 인력 부족 현상이 일어날테니 저출생을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아주 부정적이기만 한 건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총인구 자체가 곧 자산인 정부 입장에선 '저출생 현상'은 그 무엇보다 위험한 사건이다. 반드시 청산해야 할 과제로서, 이를 위해 어마어마한 재원과 인력을 쏟아 붓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했다. 출산율·출생아 수 목표 중심이었던 그간의 저출생 정책을, 개인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는 ‘사람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고 이를 위한 근본적 구조 개혁을 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기대감을 주는 대목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정책 대상자들의 '시대정신'과 '감수성'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느끼는 불편한 감각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반영한 정책들이 실효성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지 않는 정책, 이들과 함께 진행되지 않는 정책 설계는 제 아무리 좋다한들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하다. 현장에서 구동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간 100조 이상의 저출산 예산을 집행하고(그러는 와중에도 출산율은 기록적으로 하락했다) 배운 쓰라린 교훈이다.

얼마 전 쓴 '엄마, 싸움을 시작하다'란 칼럼을 보고 모르는 이가 댓글을 달았다. 노력이 너무 존경스럽다고. 그렇지만 그런 사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군가의 희생 없이 가정이 굴러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냥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86년생 조성실이 18년생 김지영을 상상하며 댓글을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의 정치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바꿔내야 한다고.” 그 글을 쓰며 생각했다.

같은 마음으로 오늘 우리 함께, 정치하는 엄마이기를. ©조성실
같은 마음으로 오늘 우리 함께, 정치하는 엄마이기를. ©조성실

◇ 우리에게 부족한 건 '더 나은 삶을 향한 상상력'과 '경험' 그 뿐이다

‘다른 삶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사실은 아니었다고. 그냥 우리가 이렇게 오래 살아온 것 뿐 이라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우리에게 부족한 건, 희망과 가능성이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건 다만 ‘더 나은 삶을 향한 상상력’과 ‘경험’ 그 뿐. 그리고 아직, '사회적 합의'를 시작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가을도 기다린다. 무엇보다, 엄마들의 정치가 빚어 갈 '더 나은 사회'를 기다린다. 같은 마음으로 오늘 우리 함께, 정치하는 엄마이기를.

*칼럼니스트 조성실은, ‘육아(育兒)가 육아(育我)’인 사회를 꿈꾸는 전업활동가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이라고 믿는 필자는, 아이 키우는 일의 중요성과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기에 엄마 개인을 소진해야만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때론 엄마라서 벅차고, 때론 엄마라서 보람찬 양가 감정들. 이 모든 경험과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하나마을 공동육아 교사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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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um**** 2018-04-30 01:08:39
정말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된
맘들이라면 누구나 같은맘이라는ㅠ
진짜이게 현실이라는ㅜ

db**** 2018-04-30 20:21:58
속상 하네요 정말 바뀔 수 없나요~

qufrhkek**** 2018-04-26 18:00:23
딱제마음이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휴...

ddobi**** 2018-04-28 00:31:38
슬프네요

thdus**** 2018-04-30 13:42:42
속상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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