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꽃 피우는 '조부모 육아'
자식을 꽃 피우는 '조부모 육아'
  • 칼럼니스트 윤기혁
  • 승인 2018.05.0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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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남편의 알쏭달쏭 육아수다] 존경과 경의를 바칩니다

초등학생인 첫째 은이의 개교기념일에 맞춰 모처럼 휴가를 냈습니다. 미세먼지도 없고 비도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인데, 멀리 떠나는 일상 탈출은 미처 계획하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러 둘째 빈이가 유치원에서 하원하길 기다려 놀이터에 갔죠. 육아휴직 중에는 이런 시간이 일상이었는데, 회사로 복직하고 나니 평일 놀이터도 작은 일상 탈출이 되네요.

집에서 아이의 입을 통해서 들어왔던 해진, 서진, 설아, 우진의 얼굴을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녀석들은 시소 앞에서 삼삼오오 모였다가 흩어지며 킥보드를 타고 내달립니다. 또 순식간에 언니, 오빠들이 매달리던 구름사다리로 갑니다. 걱정돼 다가가는 저를 보고 손짓하며 접근을 불허합니다. 떨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은 높이인데도 말이죠.

아이들 주위에는 저 말고도 두 분이 더 계셨습니다. 유치원 가방을 들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가진 아이들의 할머니였죠. 한 시간이 지나자 제 마음을 대변한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이내 할머니와 저는 패잔병이 돼 벤치로 돌아가 앉습니다. 이 모습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조르는 할머니와 친구가 모두 집에 가야 자신도 가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아이들‘이 될 것입니다.

1년 전. 빈이의 등·하원을 담당하며 놀이터를 어슬렁거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때 벤치에 앉아 육아의 고단함을 나눈 동료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 보았지만, 아이의 나이가 비슷하면 양육자는 저절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거든요. 그 분은 또래를 둔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조부모 육아 중이셨던 할머니셨어요.

사위의 직장이 멀어 주말 부부를 하는 딸의 고단함을 이야기합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서둘러 퇴근해 집에 오는 딸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돌보니 여유가 없다며 안쓰럽다고 하십니다. 엄마의 문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를 등지고 뛰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기도 전에 자신의 딸을 걱정합니다.

사위가 돌아오는 주말이 되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계신 대구로 향합니다. 알고 보니 할머니도 주말부부였던 거죠. 할아버지의 다음 일주일을 준비하며 주말에도 바쁘실 할머니,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주말부부를 감당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정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아니 온 가족, 온 친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책을 쓰고 북 토크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젊은 아빠 한 분이 질문하셨어요. 조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는데, 생활습관에 대한 생각이 달라 자주 부딪히고 게다가 아이들의 짜증이 늘어 고민이라고 말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저 조부모 육아를 해야 하는 현실의 부모 마음에도,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내 자식을 위해, 내 손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부모의 마음에도 공감할 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육아하시는 조부모 마음을 생각하는 기회가 좀 더 잦아집니다.

SG워너비 김진호의 '가족사진'(영상은 여기를 클릭)이란 노래를 들어보셨나요? 

카네이션. ⓒDarren Coleshill, Unsplash
카네이션. ⓒDarren Coleshill, Unsplash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아가씨의/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이란 부분이 특히 뭉클합니다.

여기에 조부모의 육아를 덧붙여 생각합니다. 퇴근해 돌아온 엄마, 아빠가 아이의 상처를 보고는 조부모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지요. 자식이 다치면 그 아픔은 물론 이를 보는 부모 아픈 마음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손주가 다쳐서 아프고, 이에 마음 아파하는 자식을 보는 조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예순을 훌쩍 넘기신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시고, 이제는 자식의 자식을 꽃 피우기 위해 다시 거름이 되시는 것 같습니다.

곧 어버이날입니다. 당신의 젊음과 사랑에 존경과 경의를 담아 작은 카네이션을 드립니다.

추신.

잠시 엄마의 속마음을 잊었던 분을 위해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영상은 여기를 클릭)라는 노래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라는 노랫말이 나오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답을 만들어가고 계신가요?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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