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맘에게 티타임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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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맘에게 티타임을 허하라!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5.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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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그 시절 나를 살게 한 커피 한 잔

몇 년 늦게 아기를 낳아 키웠다면 돈깨나 쏟아 부었을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집에서 배달 받는 테이크아웃 커피와 디저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사는 곳에는 이런 서비스가 없었다.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지금으로선 아쉬울 게 없지만 다시 아기를 키운다면 단골손님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후기를 살펴보니 아기엄마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업 중인 모양새다. 아기엄마라면 다 비슷비슷한 마음인가보다. 어린 아기를 키우던 그때의 나에게 커피란 밥 대신이었다. 그중에서도 남이 타주는 카페 커피는 꿀맛이었다. 아기 돌보느라 끼니를 거르는 일은 허다했지만 커피만큼은 찾아 마셨다. 그때는 왜 그리 커피가 고팠을까? 

그 시절 나를 살게 한 커피 한 잔. ⓒ한희숙
그 시절 나를 살게 한 커피 한 잔. ⓒ한희숙

밤낮이 따로 없는 아기를 돌보려면 졸음을 쫓을 얼마쯤의 카페인은 필수였다. 온통 아기 물건만 사대던 아기엄마에게 커피 한 잔은 자신만을 위한 작은 사치이기도 했다. 카페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게 가능했던 아기 낳기 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섞여 있었다. 무엇보다 아기에게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내 시간에 대한 갈증도 커피 한 잔으로 달랠 수 있었다. 물론 원한다고 티타임이 가능한 건 아니었다. ‘백일의 기적’이 오기 전까지 아기는 잠깐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돌아서면 울어재끼는 아이를 달래며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으로 하루 일과가 벅차게 돌아갔다.

그림책 「오 분만 쉬고 싶은 덩치 부인」은 제목에서 휴식이 간절한 엄마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표지에는 김이 나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차를 마시는 덩치 부인이 있다. 표지를 넘겨보니 목욕하러 가는 덩치 부인 뒤로 세 아이가 줄레줄레 따라간다. 지금 정황으로 보면 덩치 부인이 편히 목욕하기는 틀린 것 같다. 예상대로 덩치 부인의 ‘하늘나라같이 평화로웠던’ 목욕 시간은 찰나에 그치고 만다. 아이들은 차례로 덩치 부인을 찾아와 피리를 불고 ‘빨간 모자’ 책을 읽어대고 장난감을 가져와 욕조에 쏟아 붓는다. 그러고는 욕조 안으로 우르르! “5분만 너희들에게서 떨어져 조용히 쉬고 싶다”는 덩치 부인의 말은 참으로 눈물겹다. 아이들을 피해 엉망이 된 거실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덩치 부인은 영락없는 내 모습, 우리 엄마들 모습이다. 나도 어쩌다 한숨 돌리고 마시는 커피 한 모금, 꿀 같은 휴식시간이 있어 고단한 육아를 버틸 수 있었다.

그림책 '오 분만 쉬고 싶은 덩치 부인'의 한 장면. ⓒ한희숙
그림책 '오 분만 쉬고 싶은 덩치 부인'의 한 장면. ⓒ한희숙

지금은 아이와 함께 카페에 가도 비교적 수월하게 차 한 잔쯤 마실 수 있다. 여섯 살 아이는 자기가 먹을 음료와 케이크를 척척 고른다. 자기 딴에는 최대한 얌전한 태도로 놀잇감을 가지고 시간을 보낼 줄도 안다. 아이와의 카페 나들이가 다소 편해진 건 사실이지만 달콤한 휴식 시간이 길지는 않다. 엄마는 행여 아이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불안하다. 또 아이의 행동이 과격해지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러다 아이가 지루해하는 기색이라도 보일라치면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다. 남은 커피는 벌컥벌컥 들이키는 수밖에 없다. 아이가 몇 살 더 먹으면 이런 불편함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지금도 꽤 의젓해졌으니까. 하지만 우울하다면 우울한 소식 하나는 나중에라도 엄마라는 자리가 편할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가정을 이뤄 살아보니 아이만 엄마 손길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더 절망적이다.

그림책 「엄마가 낮잠을 잘 때」는 엄마가 낮잠에 든 뒤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그림책 속 엄마가 낮잠에 들자 곧바로 엄마를 찾는 전화가 온다. 이어서 아이는 청바지며 라면, 반창고 따위가 어디 있냐며 엄마의 휴식을 방해한다. 아빠는 아빠대로 라면 물을 얼마나 부으면 되는지 사소한 질문으로 엄마를 귀찮게 한다. 게다가 엄마가 자는 시간에 부득부득 못질을 해대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못 찾아 우스꽝스럽게 허둥댄다. 남편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는 이런 꼴을 보자니 솔직히 부아가 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현실이라고 다를 게 없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라도 쉴라치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질적으로 예민한 내 성격 탓에 남편한테 아이를 마음 편히 맡기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나면 나중에 내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그림책 속 엄마와 나는 상황을 보는 태도도 다르다. 나라면 소리를 빽 질렀을 텐데 그림책 속 엄마는 인내심을 갖고 아이와 아빠의 질문에 답을 한다. 그리고 이 난리 중에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성격이 유한 엄마구나 싶다가도 그만큼 엄마가 힘들었구나 싶어 안타깝다. 이야기 말미에 “엄마는 우리 집이라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말로 엄마를 치켜세운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말보다 엄마에게 진짜 필요한 건 따로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방해받지 않는 휴식 시간이야말로 지금 엄마에게 절실하다. 엄마가 좀 쉬어야 육아도 남편과의 관계도 힘을 낼 수 있으니까. 물론 육아와 가사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 변화라는 숙제는 남아 있다.

그림책 '엄마가 낮잠을 잘 때'의 한 장면. ⓒ한희숙
그림책 '엄마가 낮잠을 잘 때'의 한 장면. ⓒ한희숙

“엄마도 숨을 쉬어야 해요. 바람도 쐬어야 하고요. 좀 움직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여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토록 똑똑하게 잘하는 이는 다름 아닌 아이다. 그림책 「엄마를 산책시키는 방법」은 어린 아이를 화자로 내세워 이토록 중요한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역시 엄마에게는 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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