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은 정말 스펙 한 줄 되지 않을까?
엄마 경력은 정말 스펙 한 줄 되지 않을까?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8.05.16 13:2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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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의 MOM대로 육아] 공감능력·인내력 등 끊임없는 능력 발휘... 어떤 경력보다도 대단해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첫 아이를 품에 안은 그날을 기억한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던 그날. 너무나 작은 입으로 내 젖을 문 그날. 그 벅찬 감동과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기쁨 이면으로는 내 인생이 끝난 것만 같은 두려움도 존재했다. 적어도 10년, 아이 스스로 자기 물건을 챙길 때까지는 나 ‘정가영’이 아니라 아이의 엄마로서만 살아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울적한 기분이 공존했던 것 같다. 둘째를 낳고는 더욱 그랬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나는 생각에 젖었다.

‘내 인생은 진짜 끝난 걸까?’

특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두 아이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는 내게 사람들은 “왜? 조금만 더 버티지. 경력 단절되면 나중엔 어쩌려고?” “물론 아이들도 엄마 손 필요하지. 근데 공백기가 있으면 나중에 일하려고 해도 원하는 일을 수가 없어”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경력 단절. 공백기. 이 단어들이 이렇게 아픈 말인 줄 몰랐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사실 엄마가 되고 행복할 때도 많았지만, 나 스스로 작아지고 주눅들 때도 많았다. 아이들 때문에 만나왔던 사람들을 못 만나며 인간관계가 좁아질 때도, 겨우 잡았던 약속을 “아이가 아파서” “아이 때문에”라며 취소할 때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자꾸만 작아져갔다.

엄마가 된 뒤 처음으로 받아본 카네이션. 그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한다. 매일매일 엄마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때론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이 공백기로만 여겨질까 두렵기도 하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가 된 뒤 처음으로 받아본 카네이션. 그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한다. 매일매일 엄마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때론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이 공백기로만 여겨질까 두렵기도 하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그런데, 정말 엄마라는 시간은 경력 단절기이고 공백기일까? 문득 엄마로 살아보지 않은, 엄마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진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생각의 시작은 한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copy)였다.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았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사실 엄마로서의 시간은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일부 어르신들은 “집에서 편하게 애 키우고 밥하는 게 뭐가 힘드냐”라고 엄마 경력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근데 우리들은 그 어떤 때보다도 엄마가 되고 나서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말해보고 싶었다. 엄마 경력이 얼마나 많은 능력들을 만들어내는지 말이다. 먼저 책임감. 때로는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기도 하지만, 엄마의 책임감은 막중하다. 평생 아기를 안아본 적도 젖을 먹인 적도 없지만, 엄마라는 타이틀을 쓰자마자 늘 해왔던 것처럼 아기를 돌봐내는 능력. 밤 10시만 되면 잠이 쏟아져 별명이 ‘잠만보’였던, 고3 수능 준비할 때도 날 밤을 새운 역사가 없던 나도 엄마라는 이유로 24시간 대기하며 신생아 둘을 키웠다. 지금도 두 발 뻗고 못 잔다. 언제라도 “응애”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불빛 한줄기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감각적으로 기저귀를 갈아낸다. 엄마 되기 전엔 감기몸살 나면 며칠을 앓아누웠는데, 이젠 정신력으로 훌훌 털고 일어난다. 내 아이를 지키고픈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공감능력도 대단하다. 늘 타인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우선순위였는데, 아이의 요구를 알아차리기 위해 끊임없이 집중하고 인내한다. “깩깩깩깩” “꿔꽁” “빠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의 말도 수십 번, 수백 번 듣고 관찰하며 알아차린다. 아이의 투정을, 아이의 울음을 그냥 넘기는 법도 없다. “그래서 속상했구나, 그래서 마음이 아팠구나” 끊임없이 공감해주고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아이를 공감하는 과정을 겪으며 지난날 이기적이었던 내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기도 한다.

또 얼마나 참아내는가? 평생 이렇게 인내하고 또 인내할 때가 언제라도 있었을까 싶다. “싫어” “다 내 거야”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고 떼쓰는 아이를 보며 '참을 인'을 얼마나 새기는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 폭발할 때도 있지만, 엄마들은 그저 ‘내 탓’이라며 인내하려고 노력한다. 동시에 많은 것을 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둘째 젖 먹이면서 첫째 배변활동 돕기, 유모차와 자전거 동시에 끌기, 아이들 돌보면서도 청소, 빨래, 요리 다 끝내기 등. 아이들의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많은 것들을 해낸다.

무엇보다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요리 한번 해본 적 없어도 이유식에 유아식까지 후딱 만들어낸다. 아이가 잘 자라는지 매일매일 발달 점검을 하고, 내 양육방식, 훈육방식은 괜찮은 건지 육아서적 뒤지며 공부하기도 한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좀 더 안전하고 깨끗하길 바라는 마음에 쓰레기 문제, 환경 문제, 아동학대, 폭력 문제는 물론, 정치에도 더욱 관심 갖는다.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에 좋은 사람으로서의 생각과 행동이 무엇인지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는가? 부모의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흡수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바른 말, 고운 말 사용하는 건 물론, 약속, 교통법규 등 사소한 것들을 꼭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엄마가 되고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공감능력, 인내력 등 많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전거와 유모차를 동시에 끄는 것도 능력!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가 되고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공감능력, 인내력 등 많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전거와 유모차를 동시에 끄는 것도 능력!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책임감, 공감능력, 인내력, 관찰력, 배움의 자세까지. 이렇게 적어보니 엄마들이 매일같이 발휘하는 이 많은 능력들은 요즘 기업들이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다. 고작 난 엄마 된 지 4년밖에 안 됐는데, 긴 시간 엄마로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할지 가늠조차 안 된다. 다시 회사를 다니더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더라도 엄마라는 시간 동안 쌓은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젠 엄마 경력을 공백기, 경력단절기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경력은 스펙 한 줄로는 부족하다. 그 이상이고, 다른 어떤 경력과 감히 비교할 수도 없다. 앞으로는 엄마라서 주눅 들지 않을 것이다. 누가 내게 뭐라 한다면 엄마라서 가진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고 자랑해야겠다. 어떤 이들은 “그 경력을 어떻게 증명할 건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렇게 덧붙여 대답해야지.

“엄마 능력으로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란 아이들을 봐!”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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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ka**** 2018-05-16 19:47:03
임금노동만 인정받아온 구조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글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qhr**** 2018-05-16 15:26:28
정말 공감백배가는 글이네요~제가 딱요즘 저생각에 불면증까지 생기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는데 위로가 되는글이네요~세상의 모든엄마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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