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
일곱 살,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6.0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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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아이만의 특별한 감수성을 지켜주세요

“엄마~ 쓰러졌다고 얘기해야지!"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가능하면 매일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아이들과 한 침대에 누워(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아이들 방에 부부가 쓰던 퀸 침대를 놓았다) 천장을 보며 치르는 의식. 한날은 동화책을 읽다, ‘매미 찌르는 죽고 말았어요’라는 문장을 그대로 읽어버렸다. 평소에는 신경 써서 고쳐 읽으려 하지만 너무 피곤하거나 의식하지 못 하는 날이면 후루룩 읽게 된다. 그럴 때마다 연이는 '죽었다'고 하지말고 '쓰려졌다'고 말해달라고 당부한다. ‘매미 찌르는 쓰러지고 말았어요’라고 읽었어야 했던 것이다. 잘은 몰라도 연이에게도 죽음은 받아들이기 무서운 세계인 모양이다. 한번은 연이가 “내가 엄마가 되면 엄마는 어떻게 돼? 하고 묻길래 “엄마는 그럼 할머니 되지~” 하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럼 내가 할머니 되면” 하고 연이가 또 물었다. “왕할머니가 되겠지~” 별스럽지 않게 대꾸했는데 연이가 잠시 나를 보더니 다시 묻는다. “그럼 내가 왕할머니가 되면?” 이번엔 내가 연이를 보며 멈칫한다. 내 머릿속에 스쳐버린 ‘그땐 엄마가 이 세상에 없을 거야’라는 문장을 내뱉지 않기 위해서.

'아... 연이도 무언가를 알게 됐구나. 죽음에 대해 걱정할 만큼 자랐구나.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구나.'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궁금해 하면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해주는 게 좋다고 들었다. 아빠 씨와 엄마 씨가 엄마 뱃속에서 만나면 아기가 만들어지고, 아기집에서 자란 아기가 열 달 후에 아기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따라 나온다고. 꼬리를 무는 질문은 부모의 노하우에 맡기더라도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는 숨기지 말라고. 그런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죽음에 대해서도 솔직한 게 좋은 걸까. 아기에 대해서는 상상의 나래를 어디로든 펼쳐도 되지만 죽음을 두고 할 수 있는 상상은, 너무도 슬픈 일뿐 아닌가. '죽었다'는 말도 피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무섭지 않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한 번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다는 말을 아직은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희망적으로(?) “연이가 왕할머니가 되면 엄마는 왕!왕! 할머니가 되는 거지~~”하고 대답했다. 연이에게는 세상의 전부와 가까울 엄마의 부재를 되도록이면 천천히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남편과 하루 동안의 일과를 나누다 낮에 뉴스에서 봤던, '기차 탈선 사건'이 불쑥 생각났다.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 중 몇 명이 죽고, 다쳤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연이가 끼어들어 ‘탈선’이 뭐냐고, 왜 사람들이 '쓰러진' 거냐고 물었다. 짐짓 덤덤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연이가 듣고 있는 줄 알았다면 굳이 그 일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회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여느 때처럼 거실에서 놀던 연이가 갑자기 “엄마, 기차가 왜 숲길로 갔을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니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연이는 “운전 기사 아저씨가 잘못한 거야” 하고 재차 물었다. 그제야 나는 그게 며칠 전 탈선한 기차에 대한 얘기라는 걸 알아챘다. 아직도 걱정스러운 건가, 연이의 눈치를 살피며 “그러게, 아저씨가 길을 잘못 알았나봐” 하고 가볍게 넘어가려 했다.

“아니, 엄마~~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기사 아저씨한테 숲으로 가달라고 한 거 아닐까? 도토리랑 다람쥐랑 보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아, 마녀가 기차에 타고 있었나봐. 마녀는 장난꾸러기니까 숲으로 기차를 데리고 가고 싶었나봐.”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엉뚱한 곳으로 튀어가는 연이의 상상을 잡지 않았다. 연이는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연이답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볼까 싶어 계속 맞장구를 쳐줬다. 연이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엄마!! 뮤탄스 마녀일지도 몰라!!! 사람들을 '쓰러뜨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숲으로 데려가서 재미있게 해주려고 한 걸 거야!!!!"

탈선한 기차에 대한 상상은 지난밤 잠들기 전에 읽은 책에 나오는 '뮤탄스 마녀'로 이어졌다. 충치균 '뮤탄스'를 의인화해 양치질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교훈적인 내용의 동화였다. 연이에게 '뮤탄스 마녀'는 충치도 양치도 아닌, 기차를 숲으로 데려간 장난꾸러기가 됐다.

소리지르는 충치균 '뮤탄스 마녀'. ©신은률
소리지르는 충치균 '뮤탄스 마녀'. ©신은률

연이가 돌 즈음일 때, 동네 엄마는 일곱 살 먹은 아들내미가 '니모를 찾아서'를 보고는 그날부터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아들의 감수성에 대해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중에 연이도 그럴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웬 걸. 연이는 '니모를 찾아서'를 몇 번이나 보았는데도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고등어도, 조기도, 갈치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다. 기대와 달랐던 연이의 반응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마다 도드라지는 감수성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온 식구가 극장 나들이를 한 날, 연이는 소들이 뿔싸움을 하는 게 무서워서 영화 '페르디난드'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왔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센(?) 영화보다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라는 잔잔한 책을 더 재미있게 보는, 여리고 걱정이 많은 연이. 니모 때문에 생선을 먹을 수 없다고 선언한 아들에게 '괜찮아, 영화는 영화고, 생선은 생선이야. 몸에 좋으니까 먹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저 잠시, 아이 안에 휘몰아치는 감수성이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맞을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페르디난드의 엄마는 다른 소들과 달리 꽃향기를 좋아하는 페르디난드의 특별한 감수성을 바꾸려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았다. 덕분에 페르디난드는 행복한 소가 될 수 있었다. ©신은률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페르디난드의 엄마는 다른 소들과 달리 꽃향기를 좋아하는 페르디난드의 특별한 감수성을 바꾸려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았다. 덕분에 페르디난드는 행복한 소가 될 수 있었다. ©신은률

솔직한 건 대체로 좋은 것이지만, 죽는다는 운명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얘기를 해줘야겠지만, 얼마 동안은 연이답게 남겨두기로 한다. 아직은 연이의 감수성을, 그 여린 마음을 보듬고 싶으므로. 알맞은 때가 오기를 연이의 엄마답게 기다려보기로 한다. '죽는다'는 말 대신 '쓰러진다'는 말을 더이상 쓰지 않아도 되는 되는 그때를.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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