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 시간에 울리는 남편 핸드폰, 왜 그랬을까?
꼭 그 시간에 울리는 남편 핸드폰, 왜 그랬을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6.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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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육아에서 역할분담하기

“당신 어디야? 땡땡이 약 언제 먹여야 해? 어린이집 선생님이 어제랑 투약 의뢰서가 뭔가 다르다고 문자를 자꾸 보내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남편과 통화하는 후배가 걱정되어 물었다.

“어린이집이야? 왜? 애가 아파?”

“감기요.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왜 자꾸 저한테만 전화하는지 모르겠어요. 매일 아침에 등원시키는 건 아빠고, 투약 의뢰서도 아빠가 썼다는 걸 알 텐데...”

나도 그게 궁금했다.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건 5년 내내 남편의 역할이었다. 그런데도 온갖 문의와 상담은 엄마를 필요로 했다. 부부가 똑같이 일하는데, 아이와 관련한 일들은 엄마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이유는? 선생님도 엄마가 편하니까.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거기에서 조금 해방됐다. 아빠가 육아휴직 중이라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 담임선생님뿐만 아니라 방과 후 수업 교사들과 돌봄 교실 교사 등등 선생님이 보내는 문자가 수시로 들어온다. 회사 일로 바쁠 때면 뭘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메시지들. “아이가 아직 수업에 도착하지 않았어요”라는 문자를 보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때도 있고, 퇴근시간 지하철에서 문자를 확인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랬던 문자가 입학 둘째, 셋째 주 들어서면서 확실히 줄었다. 남편이 학교에 왔다 갔다 하면서 중간 해결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증거다. 학교에서 보내는 각종 유인물 연락처에 아빠 전화번호를 적은 것도 한몫했을 거다. 그렇게 되니 일하는 중간에 아이들 일로 문자나 전화를 받으면서 순간적으로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았다. 일이 생기면 바로 갈 수 있는 남편이 있는 것도 얼마나 좋았던지.

남편이 설정해 놓은 알람들. ⓒ최은경
남편이 설정해 놓은 알람들. ⓒ최은경

그랬는데 어느 날엔가 꼭 일정한 시간에 남편 핸드폰 알람이 울리는 걸 알아챘다. 내가 쉬는 날 함께 있으면 어김없이 오후 4시 30분, 6시 10분, 7시 25분에 울리는 핸드폰 알람. 뭔지 궁금했다.

“무슨 알람이야?”

“응, 둘째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

“이건 무슨 알람이야.”

“응, 큰애 미술학원에서 끝나는 시간.”

“또 이건 무슨 알람이야?”

“응, 방문학습지 선생님 오시기 전에 울리는 알람.”

순간, 어쩌면 내가 그랬을지 모르는 상황들이 떠올랐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 좀 치우고 하면 점심 먹을 때다. 점심 먹고 뭐 좀 할라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 학교와 집이 거리가 있는 터라 큰아이 때는 일이 있을 때마다 집과 학교를 종종 거리며 다녀야 했다.

그런 와중에 깜빡 잊는 게 생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 기억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다. 기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됨을 인정하게 된다. 휴대폰 메모장에 온갖 비밀번호 등 기억해야 할 것을 일일이 메모해 두고, 스케줄러에 일정을 체크해둔다. 알람은 필수다. 아마 남편도 나처럼 그걸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의 육아휴직 후 몇 주. 그동안 아이들을 세심하게 챙기기 위한 남편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한 것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마운 마음은 더 많이 들었다. 내가 회사에서 자유롭다고 느끼는 동안, 남편은 집에서 그러지 못했던 거니까.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내가 남편에게 미룬 일들이 있었을 거다. 나는 아마도 그걸 ‘육아와 집안일은 부부가 분업하는 거야’하고 여겼을 거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집에서 쉬니까 아내가 시킨 일’이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분업이든 시켜서 하게 된 일이든 남편의 육아휴직도 3개월이 훌쩍 지났다. 이 시간을 지나며 육아에서도 이제 웬만큼 서로의 역할 분담이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큰애 일은 내가, 둘째 아이 일은 남편이 맡게 됐고 한 사람이라도 부재 시 서로의 역할이 커버 가능한 부부가 됐다.

특히나 남편은 육아 휴직하는 동안 그동안 많이 하지 않았던 요리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어느 광고처럼 아내가 일주일치 곰국을 끓여 놓고 여행 가는 끔찍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남편도 할 수 있게 됐으니, 남편이야말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몸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부부의 상이다. 그걸 남편이 먼저 해냈다. 나는? 나는 안타깝게도 아직이다. 남편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를 못한다. 바로 운전. 면허는 있지만, 배짱이 없다. 그러니 아직은 좀 더 남편이 필요하다. 남편에게 그래야 하는 적당한 논리를 말하고 싶었다. 근데 이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혹시, 말이야. 나는 할 수 있는데, 당신이 할 수 없는 게 있어?”

“글쎄. 아, 있네! 애 젖 먹이는 거? 모유수유는 당신만 할 수 있는 거였잖아!”

“아 그렇지. 맞네 맞네. 하하하.”

남편 말대로 남편은 절대 할 수 없는 모유수유를 내가 했으니까, 이번 생에 운전은 평생 부탁해 볼까 한다. 나, 그럴 자격 충분히 되는 것 같다. 이래 쓰면서 막 웃음이 나는 건 왜지?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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