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안 먹는 우리 아이..."먹어라 쫌! 비비디 바비디 부"
밥 잘 안 먹는 우리 아이..."먹어라 쫌! 비비디 바비디 부"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6.1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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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스트레스 덜 받고 아이 밥 먹이기

남들은 잘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 나는 육아가 그렇다. 아이 둘셋도 쌍둥이도 연년생도 척척 키우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여섯 살 아이 하나가 왜 이리 버거운지... 육아 스트레스도 남들 못지않은데 그중 팔 할 이상이 아이 밥 먹이기에서 비롯된다. 아이 밥 먹이기가 조금만 수월했다면 엄마로 산 지난 몇 년, 내 삶이 덜 팍팍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데 수월한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잠투정만큼은 덜했다. 일찍부터 통잠을 잤고 이른바 ‘등센서’가 없어 이부자리에 누워 혼자 잠들기도 잘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었지만 문제는 밥 먹기였다. 육아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지 잠은 잘 자되 대신해서 밥은 (징글징글하게) 안 먹어 속을 썩였다.

그저 여느 아이처럼 시금치 같은 채소나 특정 음식을 싫어하는 편식 문제라면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아이가 토마토를 싫어했다면 저 유명한 그림책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를 펼쳐줬을 것이다. 엄마처럼 콩이라면 질색해서 죄다 골라냈다면 「맛있는 구름 콩」으로 콩과 친해지도록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는 콩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으며 토마토도 좋아한다. 모순인 점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즐겨 보는 책 중에 「아가야 밥 먹자」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기들이 보는 보드북인데 지금도 한 번씩 읽어달라고 가져온다. 쌀밥, 콩밥, 주먹밥, 카레밥, 김밥을 한 장씩 보여준 뒤 “밥은 다 좋아! 밥은 참 맛있어”하며 맛나게 밥 먹는 아기가 나온다. 이 아기처럼만 먹어준다면 좋으련만 “밥은 참 맛있어”라고 되뇌면서도 아이는 밥 먹기에 관심이 없다. 신생아 때부터 그러더니 여섯 살인 지금까지도 입이 짧다.

그림책 「아가야 밥 먹자」의 한 장면. ⓒ한희숙
그림책 「아가야 밥 먹자」의 한 장면. ⓒ한희숙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는 건 단순히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밥에 흥미를 보이는 날이 드물기 때문에 살살 구슬리며 밥 먹이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잘 먹을까, 희망을 걸어보지만 이내 기대가 무너지고 엄마는 아이에게 애원조로 매달리게 된다. 엄마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안 먹으면 어쩌고저쩌고… 이마저 효과가 떨어지면 꽥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만다. 감정 소모도 커서 아이가 한상 비울 때쯤에는 마음 속 여유도 같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아이가 사소한 실수를 하거나 장난을 걸어와도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받는다. 덩달아 애먼 남편에게 화를 쏟아낼 때도 많다. 아이 밥 문제에 절절매는 나에게 남편은 배고프면 알아서 먹을 테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놔두라고 한다. 유하게 넘기고 싶지만 금방 조바심이 난다.

2킬로그램이 안 되는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는 평균치를 따라잡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의 한 끼 한 끼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언젠가부터 식사 때 하지 말라는 ‘동영상 보여주기’, ‘떠먹여주기’ 등 나쁘다는 건 다하게 됐다. 아이가 한 숟갈이라도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라지만 가끔은 이게 다 뭔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육아서적이나 인터넷에서 보면 밥 잘 먹는 아이들은 왜 이리 많은지… 식욕도 좋아서 먹는 양도 많고 개월 수도 적은데 혼자서도 잘 먹는다. 내 아이와 비교를 시작하는 순간 엄마의 욕심은 커져 식사량에 집착하게 된다. 더 먹이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래도 그 때문에 아이가 즐겁게 식사할 기회와 멀어진다면 안 될 텐데 말이다.

그림책 「너는 특별하단다」에서는 특별함의 이유를 ‘너의 존재’에서 찾는다. ‘웜믹’은 목수 아저씨가 나무로 만든 사람들인데 이들은 서로를 살펴보며 좋은 모습에는 별표를 그렇지 않은 데는 잿빛 점표를 붙인다. 칭찬받을 만한 게 없어 점표만 가득 받는 웜믹은 스스로를 좋은 나무 사람이 아니라며 실망한다. 하지만 이들을 만든 목수 아저씨에게는 별표와 점표는 의미가 없다. 웜믹 하나하나가 제각기 특별할 따름이다.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밥 먹는 걸로 속을 썩인다고 아이에게 잿빛 점표를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엄마인 내가 별표와 잿빛 점표를 들고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고 문제로 규정했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신체 리듬과 방식대로 성장 중인데 엄마의 욕심이 과할 때가 많았음을 인정한다.

매일매일 이렇듯 잘 먹어주길. ⓒ한희숙
매일매일 이렇듯 잘 먹어주길. ⓒ한희숙

반가운 일은 아이가 여섯 살쯤 되니 종종 음식에 흥미를 갖고 혼자서 먹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마다 식욕이 왕성해지며 급성장할 때가 있다는 세간의 말도 내게는 한 줄기 희망이다. 잘 풀리지 않는 육아 문제는 엄마가 중심을 잡고 감정을 다독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육아는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니 조급해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다. 전쟁이 따로 없는 우리 아이 밥 먹이기도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잖은가. 엄마로서 살아온 지난 몇 년 그리고 당분간이 최고치일 테니 이후에는 좋은 날들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담담하고 유연한 자세는 어려움을 건너는 지혜”라 했으니 오늘도 이 말을 붙잡고 아이 밥 먹이기에 힘을 내본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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