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칭찬하고 사랑하기
더 많이 칭찬하고 사랑하기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6.20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이의 일곱살 인생] 사이좋은 남매가 되어주렴

연이는 몇 달전부터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연이 손을 잡고 처음 피아노 학원에 다녀온 날, 학원 문을 나서며 연이는 “피아노에서 유리 소리가 났어”라는 예쁜 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내 눈을 올려다보던 연이의 해사한 얼굴. 겨울이었다. 윤우는 네 살,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등하원 시각이 자유로웠다. 일찍 유치원에서 돌아온 연이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 주고, 피아노가 끝나면 연이와 함께 윤우를 데리러 가곤 했다. 끝날 시간에 맞춰 학원에 들어서면 강아지처럼 반갑게 달려오는 연이를 한 품에 안았다. 즐거워하는 아이의 얼굴은 어떤 식으로든 부모를 위로한다. 나, 잘 하고 있구나, 흐뭇함이 어깨를 감싸오는 기분좋은 느낌. 윤우에게 가는 길에 나는 여섯 살 그 어린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연이가 좋아하는 젤리 같은 맛있는 간식을 손에 쥐어주었다. 연이의 조그맣고 따뜻한 손을 꼬옥 쥐던 겨울날들.

“엄마 일찍 와야 해. 두 시에 와야 해!”

봄이 되었다. 해가 바뀌고 다섯 살이 된 윤우가 누나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등하원 시각이 같아지니 편한 점이 많았다. 별일 아닌 듯 해도 시차가 있는 일을 매일 챙기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행여나 일이 생겨 평소보다 윤우를 늦게 데리러 가는 날이면 미안함이 먼저 어린이집 현관문을 두드리곤 했다. 이제 두 아이가 함께 다니니,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같은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게 안심이 됐다.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윤우가 이맘때 대부분의 동생들이 그렇듯 누나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게 됐다는 것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윤우와 나는 피아노 학원까지 연이를 바래다 준다. 그리고 함께 기다린다. 그동안 윤우 손을 잡고 근처 개울가를 거닐거나 두부나 콩나물 같이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저녁거리를 사기도 한다. 시간을 때운다. 윤우가 어려서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뒤도 안 돌아보고 학원으로 뛰어들어가던 연이가 학원 문 앞에서 ‘두 시에 와’, ‘세 시에 와’, 시계를 볼 줄 모르니 아무렇게나 시간을 말하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자동문을 넘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곱 살 연이 모습 그대로 언니, 동생들과 깔깔거리는데도 말이다. 다른 건 별말없이 하는데 유독 피아노 학원에 갈 때만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가는 길목마다 내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걱정이 됐다. “금방 올게, 긴바늘이 2에 오면 올게~!” 연이와 굳게 약속을 하고 돌아서기를 한동안 반복했다. 그런 연이 모습이 낯설고 이상해서 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기도 하고, 연이와 얘기를 해보기도 했다. 피아노를 배우는 게 싫어진 거라면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엄마 욕심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연이는 ‘겨울앓이’ 중이었다. 피아노는 좋지만 자기가 없는 동안 엄마가 윤우와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싫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서운함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연이의 마음을 확인하게 될 때면 연이가 짠해진다. 엄마와 둘이서 보냈던 지난 겨울을 연이는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을 한번에 케어할 수 있어서 편하다고만 생각했다. 미안해졌다. 누군가 동생의 존재는 ‘첩’과 같다고 했다. 사랑을 나누어 써야 하는, 경쟁자이자 동반자 사이. 이런 복잡한 감정은 아마도 연이가 처음으로 느끼는 삶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윤우가 태어나면서부터 연이가 짊어지게 된 첫째의 삶의 무게.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처럼 우리는 연이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연이는 지구 옆에 붙은 작은 달을 부러워한다. 그 거리만큼 서운함을 느낄 연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밀린 숙제처럼 내 앞에 쌓여가고 있다.

남매의 사이좋은 모습을 볼 때 무척 행복하다. ©신은률
남매의 사이좋은 모습을 볼 때 무척 행복하다. ©신은률

독일의 숲 전문가 페터 볼레벤은 나무가 그냥 서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면 나무들의 관계가 보인다고 말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나무들은 서로의 가지가 닿아 있는 부분이 굵고 튼튼하다고 한다. 서로에게 햇빛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사이좋은 나무들은 뿌리가 얽혀 있다고 한다. 서로에게 필요하거나 부족한 영양분을 뿌리를 통해 나눈다는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볼 때는 나무들이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얘기다. 어린 나무들이 자라면서 가지가 아니라 뿌리가 만날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가족이라는 숲을 가꾸는 내가 계속해서 풀어야 하는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막 둘째를 낳았을 때, 주변에서 다들 첫째에게 60퍼센트, 둘째에게 40퍼센트 정도로 사랑을 주라고, 첫째를 더 많이 예뻐해줘야 한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래야 첫째가 둘째를 밀어내지 않고 보듬을 수 있다고 말이다. 숫자처럼 딱 떨어지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이 연이를 더 많이 칭찬해주고 사랑해줘야 할 타이밍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