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끝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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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끝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친구에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7.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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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고맙다, 친구야!"

돌아보니 1년이 훌쩍 지났다. 내가 첫 책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육아」를 낸 날이 그렇다는 말이다. 책이 나오면 꼭 직접 주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핑계라면 서울 살던 친구가 친정이 있는 유성으로 이사를 가서다. 서울 살 때도 애 낳고 키우고 일하느라 자주 보진 못했다. 친구가 유성으로 가니 더 그랬다. 그렇게 친구에게 줄 책은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 친구가 대전에 냉면집을 냈다고 연락을 해왔다. 때마침 근처에 볼 일도 있어서 아는 언니와 함께 유성 나들이에 나섰다. 눈부실 만큼 볕이 좋고, 바람마저 달큰한 날이었다. 2층 큰 식당 카운터에 친구가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친구는 음식 이야기부터 했다. 친정엄마가 직접 당근 동치미와 닭 육수로 맛을 낸 평양냉면, 예전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그대로 생각나는 손만두, 그리고 직접 담갔다는 백김치까지. 친구 얼굴에 자부심이 담겼다. 왜 안 그럴까. 이 가게는 친구가 오랜 경력단절 끝에 가족들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 모습이 새롭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친정엄마가 직접 당근 동치미와 닭 육수로 맛을 낸 평양냉면, 예전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그대로 생각나는 손만두, 그리고 직접 담갔다는 백김치까지. ⓒ최은경
친정엄마가 직접 당근 동치미와 닭 육수로 맛을 낸 평양냉면, 예전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그대로 생각나는 손만두, 그리고 직접 담갔다는 백김치까지. ⓒ최은경

친구가 추천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친구의 손길이 닿은 가게를 둘러봤다. 누군가 책을 낸 나에게 “셋째 낳았네” 하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도 이제 막 셋째를 낳은 것 같았다. 식당 구석구석에 눈길이 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손님들이 계속 늘었고, 덩달아 친구의 손과 발, 눈빛도 바빠졌다.

드디어 짬이 난 친구. “이제야 줘서 미안하다, 직접 주고 싶었어”라고 책을 내밀자 친구는 오히려 “사봐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책을 들춰보며 친구는 내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나도 친구에게 “너야말로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그리도 나도 친구처럼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이거 내가 2년 동안 쓴 거야, 많이 팔리진 않았어(그래서 더 팔아야 해)... 많이 팔리진 않아도 책 나오고 애들이 참 좋아했어...” 말하면서 손발이 오그라들만큼 부끄러웠지만, 어때? 친구인데.

친구도 책을 낸 내가 새롭고, 어색하고, 좋고 그랬을까.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가야 할 시간. 계산할 필요가 없다는 친구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음식 값을 치르고 돌아서면서 가볍게 서로를 안았다. “잘 가, 건강하고...” 그러는데, 왜 눈물이 났을까. 나도 친구도 동시에.

학교 신문사 동기, 선후배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나의 대학 친구. 힘들 때면 항상 그 친구가 있었다. 정말 어디로도 갈 수 없을 때, 돌아보면 그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특유의 넉넉한 성품으로 내 이야길 묵묵히 들어줬다. 지하 자취방, 좁은 고시원에도 내가 가면 늘 자리 한쪽을 내어주곤 했던 친구.

그런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갑자기 폭발한 걸까. 사는 게 뭐라고, 애 키우는 게 뭐라고, 한번 만나기도 어려웠는지... 서럽고 미안하고 서글퍼서 그랬던가 보다. 울어서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서로를 보며 웃었다. “우리 왜 이래” 하며. 옆에 있던 언니는 “니들 뭐하냐”면서 일부러 장난을 걸었다.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오자 언니가 내게 묻는다.

“친구가 식당 차려서 고생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어? 오랜만에 봤는데, 오래 있지도 못하고 그래서 서운했어? 친구랑 껴안고 우는 거 처음 봐서 그래.”

“아니. 고생은 뭐... 그리고 쟨 원래 저런 거 잘해. 손도 크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짧게 보고 가려니 그랬나 봐.”

집에 도착할 무렵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주고 간 책 가게에서 틈틈이 봤노라고. 잘 썼노라고, 내 친구 자랑스럽다고 또 말해줬다. 이번에는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우리가 처음 만난 스무 살, 그때가 생각나서.

그때 우린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꾸었다. 꿈은 있었지만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내 마음과 다르게 생기는 일들이 많았다. 끝이 나지 않는 일,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위로받을 수 없는 가족 사이에서 늘 겉돌았던 나에게 친구는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20대를 지나 30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우리는 치열한 육아 전투도 치렀다. 그러는 동안 홀랑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40대에 막 진입한 거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다시 고민하는 나이. 직장에 다닌다고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인생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고들 하잖나.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내일 일은 모르는 거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싶었다. 우리가 함께 견디면서 꿈을 포기 하지 않고 앞으로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데... 이런 생각에 뭉클했다. “우리 모두 대박 나자”라는 친구의 문자. 그런데 그거 아니? 너라는 친구가 이미 나에겐 이미 대박이라는 거. 고맙다, 친구야. 냉면 먹으러 또 갈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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