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아이가 30개월이 되던 날 어린이집을 보냈다. 기관 생활이 처음이라 걱정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밥은 잘 먹을지, 선생님은 잘 따를지, 엄마와 떨어져서 잘 지낼지.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이의 언어발달 부분이었다.
아이는 말이 늦었다. 할 줄 아는 단어라곤 엄마, 아빠, 이거, 뽀뽀(뽀로로)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이거”는 제일 중요한 표현이었다. 원하는 게 있어도, 짜증이 나도, 배가 고파도 “이거 이거”라고 말했다. 아이의 전후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만 아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선생님이 어떻게 아이의 표현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걱정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괜찮아. 아직은 걱정 안 해도 돼. 아는 집 애는 엄마, 아빠 소리도 못하다가 학교 입학해서 말문 터졌어!”
“답답해서 8살까지 어떻게 기다려!!”
아이가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더 걱정스러웠다.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말로 전달되지 않으니 몸으로 과격하게 나타내는 것 같았다. 혹시 어린이집에서도 그러나 싶어 선생님께 여쭤보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로 표현을 못 하니까 아무래도 답답해하는 것 같아요. 또래들은 다 말을 하거든요.”
아이 반 친구들은 모두 1월, 2월생이었다. 혼자만 9월생이라 모든 게 친구보다 늦은데, 말도 못 하니 소통도 안 되고 답답했을 것이다. 엄마가 말을 더 많이 해줬어야 했나 싶어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말문이 터졌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놀이를 하며 노는데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따라 말하는 게 아닌가! 딱 32개월 하고도 11일이 지난 날이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그 다음날에는 “싫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후 ‘내거야’부터 사탕, 팥빵, 형아, 주스, 우리 집, 공룡, 크롱, 오빠, 택시, 빵집까지! 아이가 좋아하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단어들을 쉴 틈 없이 쏟아냈다.
말문이 터진다는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았는지 신기했다. 아니면 할 줄 아는데 안 했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다행이었다. 말문이 터지니 공격적인 행동도 줄었다. 동생이 장난감을 만지면 무조건 때렸는데, “엄마, 동생이 장난감 만져요”라며 도움부터 청하는 기특한 아이가 됐다.
아이의 언어 표현 능력이 향상되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해졌다. 서로 말이 통하니 할 말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요리사와 손님, 도둑과 경찰 등 다양한 역할놀이가 가능하니 놀이의 질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어디 계세요?”(이런 존댓말은 진짜 감격!) 등 작은 입으로 야무지게 말하는 걸 보고 있으면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말을 하니 또래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같이 놀자"며 손을 내민다. “뚜아(수아)가 좋아”라며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배변 문제도 걱정했는데 “선생님 쉬 마려워요!”라고 또박또박 크게 말한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끔 부작용도 있다. 아이의 표현력에 상처받을 때가 있기 때문. 치마를 입은 엄마를 빤히 쳐다보면서 “엄마는 공주님, 난 왕자님”이라며 감동을 선사하더니, 잠옷 바지로 갈아입자마자 “엄마는 왕, 이모는 공주님”이란다. (아이에게 왕은 공주님, 왕자님보다도 존재감이 없다. 참고로 아빠도 왕이다.) 최근에는 엄마를 왕도 아닌 “긴급출동센터”라며 사람 취급도 안 한다. 흑.
아이마다 말문이 터지는 시기가 다른데 괜한 걱정을 했나 싶다. 또래보다 말이 늦더라도 때가 되면 쏟아낸다. 늦게 말할수록 그 감동은 배가 되는 것 같다. 둘째 아이는 말이 좀 늦더라도 걱정 않고 차분히 기다릴 생각이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