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구름, 별, 그리고 우리 아이
하늘, 구름, 별, 그리고 우리 아이
  • 칼럼니스트 조은희
  • 승인 2018.07.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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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엄마, 세 살 아기] 세 살 엄마는 육아(育我) 중

어느 날, 언니와 형부, 조카가 우리 집을 깜짝 방문했다.

누나의 방문에 신이 난 성빈이가 이것저것 장난감을 끌어와 함께 놀자며 졸졸 따라다녔다. 둘이 한참을 조용히 앉아서 놀더니 거실에서 방까지 마구 뛰어다녔다. 그러자 언니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다혜야, 뛰면 안 돼! 아래층에서….” 하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곤 나를 보고 “아! 맞다! 너희 집은 아래층 없지? 다혜야, 맘껏 뛰어”라며 웃었고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 세 살 엄마와 세 살 아이의 전원(田園)생활

우리 집은 아래층도 위층도 없는 전원의 단독주택이다. 게다가 옆집도 앞집도 없다. 정말 말 그대로 단독주택이다.

처음부터 전원생활을 한 건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도 도시고, 연애와 결혼, 출산을 한 곳도 도시다.

도시생활에 큰 불편이 없었지만 출산 후부터의 도시 생활은 이전과 달랐다.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걱정하지 않은 것들이 걱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아이도 환경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주에 있는 시댁에 갈 일이 생겨 밤늦게 출발해 새벽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신랑이 “하늘 좀 봐”라고 말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사진에서나 보았음직한 광경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집 안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칭얼거리는 성빈이를 안고 집 앞으로 나왔다. 세수도 안하고 집 밖에 나와도 보이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아침공기가 상쾌하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렸다. 너무 좋았다. 육아로 지쳐있는 줄 몰랐는데 ‘내가 많이 힘들었었구나.’싶은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신랑이 무주에서 전원생활을 하자고 제의했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1년 후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주에 내려가면 복직 할 수 없고 내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당장엔 아이에게 좋을지 모르지만 자라면서 교육문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의 전원생활이라니…그 순간 밤하늘의 별과 맑은 공기, 새소리, 물소리의 낭만은 사라지고 전원의 단독주택이 고독주택으로 다가왔다. 나의 거절에 신랑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갔다. 카페를 운영하는 신랑은 주말도 없이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집 밖으로 나와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공기는 무거웠고 하늘은 뿌옇고 구름에 반쯤 가려진 달이 보였다. 그 순간 무주에서의 밤하늘과 별이 생각났다. 그리곤 아이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성빈아, 별 보면서 살래?”

우린 성빈이가 10개월이 되던 때,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무주로 내려왔다.

전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우리집 지붕과 하늘! 낮에는 구름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며 이야기 나눈다. 모든 자연은 성빈이와 나의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어 준다. ⓒ조은희
우리집 지붕과 하늘! 낮에는 구름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며 이야기 나눈다. 모든 자연은 성빈이와 나의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어 준다. ⓒ조은희
아침에 눈뜨면 창밖을 보며 성빈이가 인사한다. “나무야, 잘 잤니? 하늘아, 잘 잤니? 성빈이 잘 잤어.” ⓒ조은희
아침에 눈뜨면 창밖을 보며 성빈이가 인사한다. “나무야, 잘 잤니? 하늘아, 잘 잤니? 성빈이 잘 잤어.” ⓒ조은희
성빈이는 산책길에 계곡을 만나면 신발을 벗고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나 발 아이 차가워 할래." ⓒ조은희
성빈이는 산책길에 계곡을 만나면 신발을 벗고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나 발 아이 차가워 할래." ⓒ조은희

◇ 세 살 엄마는 육아(育我) 중

전원생활을 결심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경력단절과 아이 교육을 걱정해주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괜히 나온 작품이 아니라며 별이 보고 싶으면 무주에 놀러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전원생활을 시작했지만 언니가 방문할 때 쯤 난 도시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전원의 생활은 아이에게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나를 잃어 가는 기분이었다. 내 생활에서 나를 위한 것을 찾기 힘들었다. ‘그때 아이가 아닌 나를 먼저 생각했다면 이곳에 내려오지 않아도 되었을 걸… 그때 다시 복직했으면 활발히 일할 수 있었을 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유 없이 울고, 떼 부리고, 좋았다가 싫었다가를 반복하고,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참을인(忍)을 세 번도 부족해 열 번, 백번을 쓰며 하루를 고비처럼 넘기는 날이 많아졌다. 고작 세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상대로 숨을 고르며 내 안에 몰랐던 나와 마주치면서 당황스러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른 엄마들도 나와 같겠지… 이 또한 아이가 커가는 과정이겠지…’라고 마음을 다독여 보지만 마음이 무거운 날이 많았다. 나는 이 무거움 들을 친구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과 수다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주에는 아는 사람이 없고 또래의 엄마도 찾을 수 없었다. 또 휴대폰을 들고 있으면 성빈이가 달라고 떼를 부리는 통에 친구들과도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에겐 대나무 숲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꾹꾹 누르며 나를 다독이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을 때 언니가 방문했었던 것이다. 그날 언니의 “다혜야! 뛰지마!” 한마디가 일상이 되어버린 나의 전원생활에 잊고 있었던 작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무주에 내려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구나.’

성빈이와 나는 집 안팎을 가릴 것 없이 뛰어다니고 낮에는 하늘의 구름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며 이야기 나눈다. 눈이 오면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비가 오면 함께 물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고 논다. 아이만 즐거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와 신랑도 아이와 함께 늘 웃고 있었다.

아이가 아니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어쩌면 아이 덕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선택을 통해 성장해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이 때문에 경력단절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에게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또한 나의 경력으로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만 일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일에 대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잠든 성빈이를 보며 육아(育兒)는 곧 육아(育我)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성빈이가 나를 키우고 있구나.

그리고 잠든 성빈이에게 속삭여 본다.

“내일은 엄마가 더 많이 놀아줄게. 널 위해 더 많이 커 줄게.”

서로를 육아 중인 세 살 엄마와 세 살 아이 성빈이. ⓒ조은희
서로를 육아 중인 세 살 엄마와 세 살 아이 성빈이. ⓒ조은희

*칼럼니스트 조은희는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10여 년간 보육현장 및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많은 교사와 부모들에게 진정한 교사와 부모가 되는 일에 힘을 보태며 살아 왔다. 현재는 무주에서 아이와 함께 쉼표없이 느낌표만 가득한 전원육아 속에서 진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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