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면서 아이랑 실내에서 놀만한 곳을 급히 알아보기 바쁘다. 아이 친구 집을 번갈아 가며 놀러 가는 것도 한두 번, 모이면 더욱 난장판이 돼 버리니 밖에서 함께 어울릴만한 공간을 찾는 게 최고의 해결책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뛰어놀 만큼 자라고 나니 근래에 부쩍 많이 늘어난 키즈카페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주위 엄마들도 일명 ‘키카’가 없었으면 힘이 넘치는 아이들과의 하루를 어찌 보낼 뻔했는지 모르겠다며 서로 갈만한 키카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집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대형 장난감 가게, 작은 놀이동산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놀잇감들이 있으니 마음껏 뛰놀고 즐길 수 있는 키카는 아이들에게 천국 같은 공간이니까.
어디 이 뿐만이랴! 키카에는 엄마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카페 공간도 있고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도 많다. 요즘은 아예 식당 자체에서 키즈룸을 만들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분명 희소식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공간이 살벌한 전쟁터로 변하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 가족과 함께 키즈룸이 있는 식당에 방문한 일이 있었다. 3살, 5살 어린 아이들이 있어 어른들이 돌아가며 아이 곁에 있었고 식사를 하던 중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키즈룸에 함께 있던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무리가 친구네 아이에게 피해를 입었다며 엄마에게 이른 것이었다. 엄마들은 우리 테이블로 와서 다짜고짜 따지듯 사건 경위를 묻기 시작했고 함께 키즈룸에 있었던 아이 아빠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소란은 일단락됐다.
결론만 말해 아이들 사이에 작은 영역 다툼은 있었지만 누가 누군가를 다치거나 위험하게 만든 일은 없었다. 우리 아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이 사건은 나를 두고두고 속상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처음부터 키즈룸에는 6세 이하 아이들만 입장할 수 있다는 자격 제한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초등학생들을 들여보낸 것도 문제였지만 그네들의 엄마들은 단 한 번 아이들이 노는 곳을 들여다본 적 없이 본인들의 이야기와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영역에 대한 고집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순서와 규칙을 정해주는 어른이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법천지가 돼 버린다. 그래서 본인들이 노는 공간에 새로운 친구가 나타나거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기는 일 등이 발생하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정해 주는 역할은 분명 함께 온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키즈카페, 식당, 놀이터… 아이들이 모이는 모든 공간에서 사건 사고는 분명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는 엄마들이 너무 많다. 휴대폰을 보느라, 수다를 떠느라, 식사를 하느라 이유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아닐지. 나도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있거나 우리 집처럼 편한 내 공간에서는 휴대폰 보는 일에 열중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른 일에 빠져 아이를 방관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 맞춰져 심지어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기도 전에 잔소리부터 시작하는 내가 너무 심한 건 아닌지 아이에게 미안해질 정도이다. 혹여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줄까 더욱 강도를 높여 야단치는 내 마음이 좋지 않아 다른 엄마들도 전부 나 같은 마음일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곤 했는데 가끔 이렇게 무책임한 엄마들과 마주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벽이 생겨버린다. 아이가 외동이라 동네 놀이공간에서라도 또래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길러주고 싶었던 엄마의 야심찬 각오는 이렇게 한방에 무너지곤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내 아이만 감싸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엄마들도 마주하기 힘들지만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공간에서 무턱대고 아이를 풀어 놓고 방관하고만 있는 엄마 역시 다툼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쯤 되니 나는 과연 어떤 엄마일지 다시 한번 반성하고 돌이켜 보게 된다.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나 또한 어울리고 싶지 않은, 불편한 엄마는 아니었을까?
아이들끼리는 서로 부딪히는 것도 성장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를 현명하게 이끌어 주는 것은 분명 어른들의 몫이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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