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센터 해? 말어?' 문화센터 딜레마
'문화센터 해? 말어?' 문화센터 딜레마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7.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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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문화센터, 세상을 향한 우리 아기 첫발

출산 전 나의 육아로망은 두 가지였다. 산후조리원과 문화센터. 워낙 대중화되긴 했지만 이 두 가지 정도만이 임신부가 당장 꿈꿀 수 있는 즐거움이라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말 그대로 로망에 그쳐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출산 직전 대학병원으로 전원하면서 계약해 두었던 병원조리원은 타 병원 산모의 입소를 거절했다. 서둘러 대학병원 근처 조리원으로 다시 잡았지만 이번에는 입소 후 하루 만에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지금이야 아이 키우며 후회되는 일 중 하나지만 그때는 출산 직후 감정이 널뛰던 때라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놔두고 혼자 조리원에 있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다녀온 산모들이 입을 모아 전하는 ‘조리원 천국’은 나로서는 영영 알 길이 없게 되었다.

게다가 조리원 동기끼리 문화센터 수업으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보니 문화센터에도 끼지 못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혼자라도 등록해서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육아맘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저만 혼자고 다들 친구 같아요”라는 고민글을 본 뒤로는 영 내키지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사람과 사귐도 가능한데 그즈음 나는 독박육아에 최고조로 찌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센터에 다니며 아기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기 성장에 보탬이 된다면 그것 보고 다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와 번거롭게 문화센터에 가는 이유가 엄마의 기분 전환 때문이란 게 공공연한 사실인 만큼 굳이 낯선 사람들과 얽혀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기엄마들이 어찌나 잘 가꾸고 다니는지, 남편과 시댁 자랑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불편을 토로하는 이야기도 많아서 문화센터는 점점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갔다.

그러나 나는 문화센터에 나가 아기엄마들과 어울리며 육아 정보도 고민도 터놓고 나눠야 했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육아맘의 정신 건강에 그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그림책 『난 혼자가 좋아』 속 아이는 혼자가 좋다며 사람들과 자기 사이에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방이 벽돌로 막힌 공간 속에 갇히는 처지가 되고 만다. 스스로 택한 길이었지만 아이가 진짜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었음을 나는 경험으로써 안다. 나 역시 아기 키우며 일 년 넘도록 그림책 속 아이처럼 “난 혼자가 좋아”, “몰라도 돼”, “상관하지 마”를 기본 마인드로 장착하고 살았다. 자발적 혼자를 택했지만 고백하건대 지독하게 외로웠다. 결혼생활을 타지에서 시작했기에 가족은 멀리 있어 자주 만나기 어려웠고 임신 막달까지 일을 했기에 근처에 왕래하는 이웃 한 명이 없었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는 말처럼 육아는 엄마 홀로 감당할 게 못 되는데 나는 말 못하는 아이와 밤늦게 퇴근하는 아기 아빠만 기다리며 꾸역꾸역 외로운 길을 걸었다. 얼마나 외로웠던지 아기 돌 무렵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니 회사 사람들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신체 리듬에 맞춰 나아가는 중이었는데 엄마는 항상 불안했다. ⓒ한희숙
아이는 자신의 신체 리듬에 맞춰 나아가는 중이었는데 엄마는 항상 불안했다. ⓒ한희숙

아기 낳고 일이 년간 내 마음이 누구도 허락할 수 없었던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어쩌면 더 본질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아기가 개월 수에 맞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작게 태어난 아기는 본인의 성장 리듬대로 크고 있었지만 보통의 아기들이 올록볼록 소시지 팔다리를 자랑하는 백일이 되어서야 신생아 체중에 이르렀다. 작은 아기를 보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몇 번 겪고 나니 아기들이 서로 비교되는 상황에 놓이는 게 싫었다.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는 거라는 둥 우리 아이 혹은 손자가 작았는데 지금은 말도 못하게 잘 자랐다는 둥 위로라 건네는 말도 거듭되니 피곤했다. 그 시절 아기는 몸만 작았지만 엄마는 마음 그릇마저 작디작았다. 내 자격지심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돌을 넘기고 회사에 복직하느라 시간이 없어 문화센터에 다닐 기회는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다섯 살이 된 아이를 문화센터에 등록시켰다. 4~5세가 한 시간 동안 함께하는 축구 수업이었는데 일찍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며 무난하게 생활해온 아이라서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고 유리창 너머로 지켜본 아이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처음 만난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는 유달리 겉돌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어 그러는지 꽤 산만하게 굴었다. 수업 때마다 거슬렸는데 아이도 체력이 달리는지 달리기가 힘들다며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올해 다른 주제의 문화센터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사이 친구 관계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어떤 친구가 있을까?” 하며 기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사람들 틈에서 쭈뼛거리다 엉뚱한 행동을 보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접하기 어려운 독특한 주제라 먼 거리를 마다않고 등록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다시 한 번 환불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나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겉모습만 닮은 게 아니라 아이의 품성이나 성격도 엄마인 나를 닮은 게 맞다. 그래서 아이가 새로운 관계 앞에 망설이는 데는 내 책임이 크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놀이에 가깝다고는 해도 낯선 수업이 아이에게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채근만 했다. 더욱이 아이에게 좋은 모델도 아니었으면서….

그림책 [큰집 작은집]의 한 장면. ⓒ한희숙
그림책 [큰집 작은집]의 한 장면. ⓒ한희숙

그림책 『큰집 작은집』에서는 “숲에서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마을에서 누군가 만날 수 있다면…” 하며 친구 사귀기를 기대하는 ‘큰 곰’과 ‘작은 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동물들이 서로 어울리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굳이 이어지지 않는 관계를 엄마는 마다하면서 아이에게 요구할 필요는 없다. 이곳에서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도 아이는 성장하며 진짜 우정을 나눌 친구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큰 곰’과 ‘작은 쥐’도 다른 동물은 사귀지 못했지만 이야기 뒤에서 진짜 친구를 사귄다. 

덧붙여 친구는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소중한 존재인 만큼 사귀고 볼 일이다. 그림책 속 곰처럼 엄마 먼저 마음을 열고 말해본다. “어서 와. 네가 첫 손님이야. 누군가와 같이 마시는 차, 아주 맛있는데.”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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