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2학년 학부모 고백 ‘9년 차 워킹맘의 돌봄 수난사’
초등 2학년 학부모 고백 ‘9년 차 워킹맘의 돌봄 수난사’
  • 기고 = 송지현
  • 승인 2018.07.20 07:0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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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송지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송지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19일 오후 2시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 열린 서울시 정책제안 공개토론회에 참석해 ‘시민의 삶과 도시의 질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 토론회에서 발표한 ‘9년 차 워킹맘의 돌봄 수난사’를 베이비뉴스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 거 이직이 왜 그리 잦나요?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 무렵까지 아이의 유일한 양육자이자 가장인 나는 각기 다른 고용형태의 직장 다섯 군데를 거쳤다. 대기업, 재택근무 프리랜서, 외국계 파트타임 계약직, 5인 미만 중소기업, 공공기관 풀타임 계약직. 나는 이렇게 시간과 돈의 우선순위 사이에서 때마다 줄타기하며 생계를 걸고 고용형태를 바꿔보는 모험을 감행했다. 아니, 감행 당했다. 물론 아이의 어린이집‧유치원 역시 내 직장만큼 자주 바뀌었다. 일·가정 양립 가능한 노동환경 및 돌봄 환경이 동시에 충족되는 기회가 이 사회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는 희박한 희망을 부여잡은 채.

끝내 별다른 보조양육자 없이 육아와 가사노동과 경제활동을 혼자 다 할 수 있는 은혜로운 환경을 쟁취해내기도 했다. 그것은 그동안 고용 불안정, 경력 단절, 그리고 경력은 늘어나는데 임금은 줄어드는 불합리 등을 감수한 대가로 얻은 기회였다. ‘내가 돈 벌어 내 아이 내가 키우는’ 그 당연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토록 요원하다.

5월 10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한부모가족의 날' 제정 기념행사가 있었다. 베이비뉴스 DB.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5월 10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한부모가족의 날' 제정 기념행사가 있었다. 베이비뉴스 DB.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다 키웠다고 방심한 순간 진짜 돌봄 절벽에 섰다

드디어 아이가 어설프게나마 글을 읽고 시계를 보고 혼자서 바르게 옷을 입는 때가 왔다. 초등 돌봄교실 입소를 위해 가족이라고는 우리 둘만 등재된 단출한 등본과 내 재직 증명서를 조용히 제출했더니 (18년 기준) 월급 약 148만 원 미만 저소득 한부모에게만 발급되는 ‘법정 한부모 증명서’ 제출을 요구한다. 그 서류가 없는 한부모는 입소 자격 미달이라며 꼭 입소해야겠다면 ‘맞벌이’ 증명 서류를 내란다. “맞벌이에는 안 따지는 소득 조건을 한부모에게만 따진다고요? 그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뱉는 대신 어렵사리 친부의 재직 서류를 구해 제출했다. 한부모라는 사실이 학내에 확산됐을 때 행여 아이에게 향할 편견이 염려되기도 했고, 입소 경쟁이 워낙 치열해 까딱하면 탈락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던 까닭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토록 기형적인 서류 세장으로 입소한 돌봄교실은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물론 학교 역시 부모의 통근시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 8시 30분에 연다. 그리하여 아이에게 주어지는 공보육은 하루 8시간 30분이다. 주 40시간 근무에 칼퇴근, 그리고 왕복 통근 1시간 이내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조건으로만 어림잡아도 부모는 하루 10시간 집을 비우는데 말이다. 게다가 나는 드디어 아이를 다 키워놨다고 착각한 채 이젠 내 경력도 좀 돌보겠다며 더욱 고강도, 장시간, 장거리의 노동환경으로 자신을 몰아넣으려던 참이었다. 서울 도심으로 왕복 통근 3시간에 저녁 먹고 2시간씩 야근한다는, 비정상이지만 이 사회에 흔하디흔한 기준을 적용하면 부모는 하루 15시간 집을 비운다. 무려 6시간 30분의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리저리 셈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돌봄 절벽이라는 곳에 발을 반쯤 걸친 채 서 있었다.

# 아이가 입학하는 순간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었다

저녁 8시까지 운영한다는 지역아동센터를 부랴부랴 물색했다. 이것도 나의 15시간 공백을 메우기엔 부족하지만, 가장 난제였던 저녁 식사가 해결되고 초등 돌봄교실 보다 무려 3시간이나 더 운영한다니 절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원이 터무니없이 적은 데다 이마저도 저소득 순으로 채워져 우리에겐 기회조차 닿을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같이 아이 혼자 걸어 다닐 수 없는 거리에 위치한다는 고민은 애당초 사치였던 거다. 그래도 미련을 못 접고 찾다가 지역아동센터 입소자에게 저소득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글들을 접했다. 그때까지 나는 지역아동센터를 ‘과잉 노동이 만연한 우리사회 속 장삼이사 부모들을 위한 연장 돌봄을 본연의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만 생각했었다. 물론 취약 계층에 복지 서비스를 행하기 위해 좋은 뜻으로 설립된 기관이겠지만 애초부터 소득에 따라 일부 아동을 격리하는 취지를 내재하고 있거나,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 격리를 묵인하고 있다는 점에 마음이 불편했다. 하여 지역아동센터를 후보에서 배제했지만 그렇다고 아동방조죄 현행범의 길로 접어들 순 없었다. 초등 돌봄교실 이후 공백인 저녁 시간에 보조양육자를 구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엄마를 찾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는 자기 일을 포기하고 매일 우리 집을 오가며 두 집 살림하게 됐다. 나는 그렇게 내 몫의 가정에 엄마를 붙들어 매어놓고 저임금 돌봄 노동자로 착취하기 시작했다. 결코 그 짓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그토록 악착같이 혼자 버티려 했던 것이었는데.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에게는 엄마의 일과 엄마의 가정이 있었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아빠에게는 보호자이자 아내인 엄마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 엄마와 아빠에게 남은 것이 희미해져 간다.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무시무시한 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 학교 앞은 학원 차가 붐빈다. 베이비뉴스 DB.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 학교 앞은 학원 차가 붐빈다. 베이비뉴스 DB.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절벽은 끝나지 않았다(1)

방학 중 초등 돌봄교실 운영시간은 오후 1시까지다. 각종 방과후수업도 4시간씩 앞당겨져 1시 전후로 끝나고 만다. 즉 학기 중 4교시로 수업이 종료되며 돌봄교실이나 방과후 수업이 전무한 상태와 마찬가지다. 다른 점 한 가지가 있다면 점심 도시락을 싸는 가사노동이 추가된다는 것. 그나마 오후 시간 일부라도 돌봄 공백을 막으려면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 아이도 나도 썩 원하지 않는 무의미한 배움과 엄청난 사교육비로 돌봄 공백을 틀어막는다. 주 1회 학원비 6만 원. 주 2회 학원비 12만 원. 영어나 수영 등을 보내려면 값이 곱절로 뛴다. 하루에 두 시간씩만 버티는 것으로 계획해도 50만 원이 우습다. 막상 부모에게 휴가가 주어져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해도 휴가비는 이미 방학 중 사교육비로 소진된 상태. 갓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대학생보다 더 복잡한 스케줄로 여러 셔틀버스를 오가며 안전과 보호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로 동네를 곳곳을 오간다. 아침과 저녁 돌봄에 한한 보조양육자였던 나의 엄마가 방학이면 주 양육자가 되어버린다. 어린이집에 보내던 신생아 시절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8세 아이 돌봄에 할애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다. 옆 반 학부모 중 워킹맘 한 분이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그 시점이 7월 중순 무렵임은 우연일 수 없을 것이다. 돌봄 절벽이 또 한 명의 경단녀를 낳고 말았다.

# 절벽은 끝나지 않았다(2)

잔인한 봄이 왔다. 2학년이 되자 신입생 돌봄 수요가 너무 많아져 희망자를 모두 수용할 수 없다며 초등 돌봄교실 추첨일 공지 안내문이 왔다. 이 무시무시한 추첨이 심지어 평일 오후에 열린다. 보조양육자가 없다면 부모 중 하나는 반차를 소진해야 한다. 추첨에서 떨어져 눈물짓던 누군가가 또 직장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을 테다.

# 절벽은 끝나지 않았다(3)

3학년이 되면 초등 돌봄교실 입소 자격이 사라진다. 대신 3~6학년 대상의 ‘방과후 학교 연계형 돌봄교실’ 제도가 있는데 실태를 살펴보니 ‘학교장 재량’이라는 조건 탓인지 현장에서 거의 활용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정책이다. 아무래도 저학년보다 수요자가 적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관리 및 기획 등 운영의 효율성이 없다고 각 학교가 자체적으로 판단 내리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우리 학교 역시 2년 전에는 있었다는데 공교롭게도 마침 교장 선생님이 바뀐 시기부터 운영하지 않았다. 3학년 진학과 동시에 그나마 있던 제한적 돌봄마저도 증발한다. 어차피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땐 방학 때처럼 사교육 뺑뺑이로 시간을 때우는 게 차악일까, 라면 끓이기 훈련이라도 시킨 뒤 혼자 내내 집을 지키도록 하는 게 차악일까.

장시간 과잉 노동이 만연한 착취 구조라는 적폐 청산에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보육 문제와 일·가정 양립 문제, 나아가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베이비뉴스
장시간 과잉 노동이 만연한 착취 구조라는 적폐 청산에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보육 문제와 일·가정 양립 문제, 나아가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베이비뉴스

◇ 부모가 가정에 지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길…

경제활동을 하는 양육자는 모두 직장과 가정에서 각각 투잡(Two-job)을 하는 중임에도 우리의 노동 문화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부모는 첫 번째 직장에서 제때 퇴근하지 못해 매일 몇 시간을 지각해가며 가정이라는 두 번째 직장에 너무도 불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바꾸어 생각해보자. 매일 아침 가정을 몇 시간 더 돌봐야 한다며 직장에 지각한다면 직장에서 잘려도 진작 잘렸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나의 경우 가정이라는 직장에서 동료가 내 아이 하나뿐인데, 퇴근 시간이 늦어 매일 지각하는 나를 자르지 않는 아이에게 황송할 만큼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보육 문제는 노동 문제와 필연적으로 직결된 과제다. 따라서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장시간 과잉 노동이 만연한 착취 구조라는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보육 문제와 일·가정 양립 문제, 나아가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작금의 노동환경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부모들은 ‘온종일 돌봄’을 이토록 소망하고 있지만, 언젠가 장시간 과잉 노동문제가 해결되어 공공의 돌봄 기능이 양육이라는 부모 본연의 역할을 임시로 완충하는 대안으로서만 작동하는 사회가 속히 열리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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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jui**** 2018-07-30 11:17:48
저희도 맞벌이라 걱정이 많아요 ㅠ

db**** 2018-07-30 09:21:04
맞벌이면 어쩔수 없는 현실이죠 사교육비 줄어 주겠다는 정부 현실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 모르죠

black**** 2018-07-23 00:24:02
아이가있는집에 맞벌이부부라면 현실적인문제네요

so**** 2018-07-21 09:34:04
일과 아이의 관계는 정말 안타까울 뿐이예요. 
아휴... 걱정안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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