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여중생 책상에… “네가 한국에 있는 게 망신이야”
난민 여중생 책상에… “네가 한국에 있는 게 망신이야”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07.2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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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의 국적은 ‘인권’입니다①] 난민아동의 하루, 미셸·브래드 가족 인터뷰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 또는 그의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하지 않고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국내에서 태어나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는 난민아동들은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난민아동 실태를 알리고 아동의 최소한의 인권 보호를 위한 지역사회와 정부의 역할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기자 말

[기사 싣는 순서]

① 난민 여중생 책상에… “네가 한국에 있는 게 망신이야”
② “왜 아프리카 아이들을 우리 어린이집에 받아주나요?”
③ “법무부가 ‘가짜난민’ 문제 불 지펴 혐오에 일조”
④ 난민아동 절반 ‘무국적자’… 건강보험 없어 치료 포기

지난 4일 경기도 동두천시에 사는 미셸(17·여·가명) , 브래드(4·남·가명) 그리고 남매의 엄마 안젤리나(41·여·가명)를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4일 경기도 동두천시에 사는 미셸(17·여·가명) , 브래드(4·남·가명) 그리고 남매의 엄마 안젤리나(41·여·가명)를 만났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브래드, 거실로 나와봐. 브래드!”

“으앙~ 쾅!(문 닫는 소리)”

“어휴~ 브래드가 말을 너무 안 들어서 힘들어요. 아침에 8시 50분까지 브래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9시에 학교 가서 오후 6시쯤 집으로 와요. 집에 오면 동생 돌보죠. 저는 만날 (동생에게) 맞고 살아요. 브래드가 어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 표현을 못 하니까 그런 게 안타깝고 힘들어요.”

지난 4일 경기도 동두천시에 사는 미셸(17·여·가명)네 집을 찾았다. 벨을 누르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브래드(4·남·가명)와 미셸이 노느라 벨 소리를 듣지 못한 것. 미셸의 하루 일과는 동생 브래드를 돌보는 일로 꽉 찬다.

브래드의 저녁은 주로 미셸 담당이다. 유난히 뭘 잘 안 먹는 브래드이지만 흰밥에 달걀 프라이를 올리고 간장 조금, 참기름 조금 넣고 비벼 먹이면 잘 먹는다고. 미셸의 말을 듣다 보니, 한국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미셸의 엄마, 안젤리나(41·여·가명) 씨는 1990년 여성 할례를 피해 고국 라이베리아를 떠났다. 시에라리온, 기니를 거쳐 가나 유엔난민기구(UNHCR) 부름부라 난민캠프에서 6년을 보냈다. 2012년 3월 당시 11살 된 미셸과 둘이 한국으로 왔다. 싱글맘으로 고생하다 한국에서 만난 외국인과 결혼했다. 현재 부부는 난민신청 불허판정을 받고 재신청한 상태. 외국인등록증이 압수돼 취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젤리나 남편의 아르바이트로 집세도 내고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 같아요(한숨). 처음 한국 와서는 공장 일을 했는데 지금은 그 일조차 못하고 있어요. 집세, 공과금 등 매달 내는 것조차 힘들고 추위를 심하게 타서 난방비도 많이 나와요.” (안젤리나)

◇ “한국말, 드라마 ‘내 딸 금사월’로 독학했어요”

브래드는 미셸이 인터뷰 하는 내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관심을 끌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셸'에게 달려가 안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브래드는 미셸이 인터뷰 하는 내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관심을 끌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셸'에게 달려가 안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미셸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나다. 또래 한국 아이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미셸은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안젤리나 씨와의 인터뷰를 통역해주기도 했다.

“한국말은 독학했어요. 책이랑 드라마 ‘내 딸 금사월’로 배웠어요(웃음). 혼자 배우다 보니 잘하고 있는지,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고 힘들었어요. 도와줄 사람도 없어 외롭기도 했고요.” (미셸)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전혀 모른 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한 미셸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다. 친구들은 ‘미셸’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미셸의 피부색을 가지고 ‘야, 킹콩아!’라고 불렀다. 한국에 살기 위해,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한국말을 배웠고 익숙해지는 만큼 친구도 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처럼 친구나 선생님이 통째로 바뀔 때는 늘 처음처럼 힘들었다. 학교 전체에 흑인은 미셸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한참을 노력해야 했다. 매점이나 식당에 갈 때마다 “재야, 1학년 미셸이라는 그 흑인 외국인 애”라는 선배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늘 따라다녔다.

중학교 때는 ‘너의 나라로 돌아가’, ‘네가 한국에 있는 게 망신이야’, ‘이 흑X아, 병X아, 꺼져, 이 흑돼지야’, ‘왜 살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니?’라는 말들이 책상에 빼곡히 적혀 있었던 적도 있어 아주 슬펐고 많이 울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미셸의 외모나 옷차림 등 지적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미셸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리면서 “저 한국말 다 알아들어요” 하고 내린다.

“예전엔 사람들이 제 얘기하는 게 속상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제가 한국말 다 알아듣는다고 할 때 당황해하는 모습 보면 재미있어요.(웃음)” (미셸)

브래드는 아직 영어, 한국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엄마가 한국어를 못 하기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아프거나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없어 누나인 미셸이 나서서 주로 해결한다. 미셸은 브래드가 자주 아프고 먹는 것도 부실해서 짜증도 많고 폭력적이라 돌보기 너무 힘들다면서도 내내 브래드의 행동을 주시하고 챙겼다. 브래드는 인터뷰하는 미셸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미셸”, “미셸”, “미셸” 쉴새 없이 부르며 미셸만 찾았다. 

◇ “아파도 돈이 없으니까… 따뜻한 물 마시고”

안젤리나 씨가 브래드에게 과자를 먹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안젤리나 씨가 브래드에게 과자를 먹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토하고 배가 잘 아파요. 병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으니까 따뜻한 물 마시고, 많이 아프면 약국 가서 약 사먹고…. 브래드는 태어날 때부터 폐렴을 앓았어요. 감기가 잘 걸리고 잘 안 낫는데 그럼 입맛이 없는지 밥을 잘 안 먹고 짜증도 많이 내고 성격도 나빠지는 것 같아요.” (미셸)

미셸은 아파 병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참는다. 동생 브래드도 마찬가지. 브래드는 네 살이지만 출생신고가 안 돼 있다. 달랑 병원에서 태어날 때 받은 출생증명서 한 장이 신분을 증명할 유일한 것이다. 그러니 건강보험 혜택과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열나고 아프면 한국 아이들은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는데 난민아동들은 그럴 수가 없다. 비싼 병원비 때문이다.

◇ “한국에 와서 통역사나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안젤리나 씨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졌다.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하다 허리까지 다쳐 일하기도 힘든 상태. 난민 재신청을 하면서 ID 카드를 압수당해 취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젤리나 씨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한국어 책을 들어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난민 신청자들은 하루하루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나마 민간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브래드 보육비가 지원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 미셸과 같은 초중고생의 경우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15만 원씩 매월 교육비가 지원되지만 급식비가 넉 달째 밀려 있다.

내장탕을 제일 좋아한다는 미셸은 “한국에 있는 난민들도 그냥 한국인과 똑같다. 열일곱 살인데 이 나이에 겪으면 안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겪으며 자랐다”고 했다. 여느 여고생과 마찬가지로 가수 워너원의 강다니엘과 윤지성을 좋아한다는 미셸. 지금은 한국의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신기한 게 가나 난민캠프에 있을 때는 꿈이 없었는데 한국에 오고 나서 통역사나 여군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교도 가고 싶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직업도 가지고 싶어요.” (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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