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좋아하는 아들이 이상한가요?
분홍색 좋아하는 아들이 이상한가요?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8.08.06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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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의 MOM대로 육아] ‘아들답게’ 말고 ‘내 아이답게’ 키우렵니다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이번 여름휴가 때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대충 짐을 풀었다. 아이는 숙소 앞에 펼쳐진 바닷가를 보고 신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엄마 바다 가요. 바다 가요!”

얼른 나가자는 아이에게 수영복을 입고 나가자고 타일렀다.

“이거 입을까, 이거 입을까? 한결이가 골라봐.”

아이는 요즘 ‘미운 네 살’이다. 제안하는 건 뭐든 다 싫단다. 그래서 몇 가지를 제시해 아이가 직접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수영복도 그냥 입자고 하면 거부 반응부터 보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제시해줬다. 아이에게 입히려고 준비한 파란색 수영복과 동생에게 입힐 분홍색 수영복을 말이다.

“이거요!”

아이는 망설임 없이 분홍색 수영복을 골랐다. 예상 밖의 선택이었다. 내 계획대로라면 아이는 친척 형아한테 물려받은 파란색 수영복을 골라야 했다. 난 아이가 당연히 파란색 수영복을 고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저건 딸 예쁘게 입히려고 로켓배송으로 급히 주문한 건데?’

다시 물었다.

“이게 마음에 들었구나. 수영복에 미니마우스도 그려져 있네. 이거 입고 나갈까?”

“응! 핑크색 좋아! 미니도 좋아!”

그렇게 아이는 2박 3일 내내 사이즈도 맞지 않는 동생의 분홍색 수영복을 입고 열심히 모래놀이를 했다. 동생은 오빠의 선택을 받지 못한 파란색 수영복을 입었다.

아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분홍색 수영복을 골랐다. 파란색을 고를 거라는 엄마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들은 분홍색을 좋아했던 것이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아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분홍색 수영복을 골랐다. 파란색을 고를 거라는 엄마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들은 분홍색을 좋아했던 것이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처음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 준비를 위해 백화점에 가면 꼭 파란색 옷, 파란색 내의, 파란색 이불만 추천해줬다. 심지어 쪽쪽이 젖꼭지, 우주복, 바운서까지 파란색이었다. 아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왜 꼭 아들은 파란색이어야 해?’

아들이면 파란색, 딸이면 분홍색이라는, 성별로 색깔과 성향을 규정하는 게 싫었다. 나는 그런 고정관념 하에서 자라왔지만, 내 아이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할 것 없이 다양한 색깔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분홍색 옷도 입히며(물론, 아들 옷으로 분홍색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아이에게까지 적용시키지 않으려고 다짐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짐을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아이의 연령이 높아지고, 아이가 어린이집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하면서는 더욱 그랬다. 이상하게 아들은 파란색으로 치장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이의 어린이집 수저세트 색깔을 분홍색으로 보내면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혹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다. 남자가 파란색을, 여자가 분홍색을 좋아할 것이라는 건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일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그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불편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쓸데없는 고정관념을 심어줘 왔던 걸까? 아이는 엄마에게 깨달음을 주겠다는 듯 분홍색 수영복을 골라 입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분홍색 수영복을 입고 좋아하던 아들을 보며 다시 다짐한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아이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지지해주겠다고.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분홍색 수영복을 입고 좋아하던 아들을 보며 다시 다짐한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아이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지지해주겠다고.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일괄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것을 선택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다. 엄마인 나는 내 아이들이 원하는 취향, 기질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권만 제시해주면 된다. 그러지 못했다. 성평등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의 취향, 아이의 기질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키우겠다고 말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웠나 보다. 실천에 앞서 엄마인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분홍색 수영복을 입고 행복해했던 아이를 보며, 다시 다짐한다. 아들답게 키우지 않고 한결이답게 키우기로. 한결이답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기로 말이다. 꼭 뽀로로가 파란색이고 루피가 분홍색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이의 선택을 위해 내 고정관념부터 깨는 연습도 꾸준히 해야겠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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