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출산 전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엄마, 출산 전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08.0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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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내게 와준 아가, 고마워

아기엄마들에게 건네는 질문 하나. 만약 아기를 낳기 전 20대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단, 아기에 대한 기억은 간직한 채 돌아가야 한다면? 아마 돌아간다는 쪽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쪽도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힘들고 지칠 때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짜 그런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나는 돌아가지 않는 쪽을 택할 것 같다. 지금 여섯 살 외동아이를 키우고 있어 육아에서 절정으로 힘든 시기는 지나갔다. 육아에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다는 건 아니다. 지나온 시간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20대 청춘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또 내가 그 시절을 잘 살아왔는지 아닌지 그와는 별개로 그립고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청춘이 제아무리 좋다고 한들 아이를 볼 수 없다면 제대로 살아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하는 엄마라 해도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을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누구도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다시 살 수는 없다. 텔레비전 속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그런 상황을 가정해봄으로써 지금 발 딛고 선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깨닫고 마음을 다지게 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육아맘의 고단한 일상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 눈물콧물 짜내며 시청했던 드라마가 있다. “출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고민에 빠트렸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지난날 남부럽지 않게 사랑도 했지만 30대 후반에 이른 부부는 서로에게 지쳐 이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지금의 기억을 간직한 채 스무 살로 돌아가 과거를 다시 산다. 30대 후반 육아맘으로 팍팍한 나날을 보내던 여주인공은 풋풋한 연애를 시작하고 돌아가신 엄마와도 애틋하게 재회한다. 그러다 문득, 두고 온 아기가 그리워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여주인공이 아이에 대한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나는 주책일 정도로 울며 내 아이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아이가 내 옆에 단단한 현실로 자리하고 있다는 데 크게 안도했다.

지금도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할 때면 전심을 다해 나를 반긴다.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잠시 맡겼다가 돌아오면 자기는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한다며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다. 물론 아이가 나를 찾지 않고 잘 놀 때도 많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런 날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정작 아이를 맡기고 외출한 엄마가 지레 걱정을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섯 살, 남들 눈에는 제법 커 보일 테지만 엄마 눈에는 여전히 아기라서 떨어져 있으면 자꾸 생각이 나고 보고 싶다. “부모 없이는 살아져도 자식 없이는 못 살아”라는 드라마 속 대사는 슬프게도 사실이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자기 아이에게 되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주인공 엄마도 아기에게 되돌아가라고 자식의 등을 떠민다.

그림책 [네가 아니었다면] 의 한 장면
그림책 「네가 아니었다면」(김별아 글, 이장미 그림, 토토북, 2010년)의 한 장면 ⓒ토토북

드라마는 육아맘의 생활 모습도 매우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밤잠은 고사하고 밥 한 술 제대로 뜰 수 없으며 용변마저 자유롭지 못한 육아맘의 고단한 하루하루. 씁쓸하지만 너무나 현실과 닮아 있어서 깊이 공감하며 시청했다. 그림책 「네가 아니었다면」(김별아 글, 이장미 그림, 토토북, 2010년)이 마음에 들어온 이유도 비슷하다. 모성애를 다룬 그림책 중에는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책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육아맘의 쓸쓸한 민낯을 그림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눈길이 간다.

아기엄마는 한밤중에 비몽사몽 일어나 앉아 수유를 한다. 뒤로 질끈 동여맨 짧은 머리에 얼굴은 창백하고 멍한 표정이다. 그에 반해 아기는 엄마의 등 뒤에 기대어 곤히 잠든 모습이다. 아기엄마의 인생에도 분명히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당장 하루하루를 보면 어쩐지 서글프다.

육아가 말도 못하게 힘든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달라진 엄마의 삶이 이것만은 아니다. 그림책은 “엄마를 키워주고 너를 키워준 부모님과 형제, 햇살과 바람과 바다와 공기,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아이 덕분에 배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도 아이가 없었다면 몰랐을 다른 차원의 경험을 아이 덕분에 했고 지금도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마음도 넓어졌다. 아이가 ‘엄마의 선생님’이라는 말은 실로 사실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출산 전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왜 지금에 머물겠다고 했는지를 생각해본다.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일이 아닌가 싶다. 지난 주말 아이에게 내가 ‘보물상자’라고 부르는 상자의 내용물을 공개했다. 그 안에는 아기수첩, 손발싸개, 앨범, 그리고 아이가 만들고 그린 소소한 작품과 편지 등이 담겨 있다. 텔레비전에서 아기 초음파 사진이 나와서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상자를 열어 보여준 것인데 아이가 보물이라며 이것저것 넣자고 가져온다. 장난감이나 점토로 만들어 나에게 선물한 반지 같은 것들이다. 사실 엄마의 진짜 보물은 따로 있다. 엄마에게 아이는 보물이자 큰 축복이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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