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에 즉효약이 어디 있습니까?
결혼생활에 즉효약이 어디 있습니까?
  • 칼럼니스트 이정수
  • 승인 2018.08.0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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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의 결혼수업] 뒤틀린 시간만큼 반대로 뒤틀어야 원점이 됩니다
가슴속에 눌러왔던 이야기를 훅, 했더니 우리 아내도 저에게…. 욱해서 저도 또 하나 꺼내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정수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입니다. 이사를 하는 김에 정수기도 바꿨죠. 새 정수기로 바꾸고 나니까 좀 깨끗이 쓰고 싶은 겁니다. 기존의 정수기는 제가 커피를 만들 때 뜨거운 물이 튀고, 컵라면 물이 튀어서 지저분했거든요. 그냥 더럽게 쓰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쓰다 보니 더러워졌달까? 아이스커피를 만들려고 커피가 들어 있는 상태로 얼음을 추출한다든지 하는 행동도 거침없이 했죠.

당연히 저는 이것을 그냥 실수 정도로 지내왔습니다. 우리 아내도 별로 잔소리를 한 적이 없고요. 아무튼 정수기를 깨끗이 쓰고 싶어서 우리 아내에게 앞으로 얼음은 깨끗한 컵에 뽑아서 커피 컵에 옮겨 담고, 뜨거운 물도 주의해서 붓자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정수기를 닦던 사람은 나거든!"

그렇죠. 적반하장이었겠죠. 정작 지저분하게 쓴 사람은 저인데, 제가 정수기 관리를 지적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가슴속에 눌러왔던 이야기를 훅, 했더니 우리 아내도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까 얘기하는데, 오빠! 이제 변기에 앉아서 소변 보면 안 돼?! 변기가 너무 더러워지잖아!"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눌러왔던 이야기를 하나 꺼냈더니 우리 아내도 눌러왔던 이야기를 꺼낸 거죠. 거기에 또 욱해서 저도 또 하나 꺼내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어차피 도움이 안 되거든요. 눌러왔던 이야기는 눌러놨던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꺼내봐야 둘 사이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우리 부부가 안 싸우는 이유는 눌러 담아놓은 이야기가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나만 참고 사는 줄 알지만, 둘 다 참고 있는 겁니다. 둘이서 본격 '디스전'에 돌입하면 "이런 것도 가지고 있었어?"라며 놀랄걸요?! 그래서 한두 번 이야기해서 변화가 안 되는 부분은 그냥 외우고 눌러담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쉽냐고, 속에서 천불이 난다며 반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전에 불행을 불행으로 갚지 말자는 칼럼은 쓴 적이 있습니다. 배우자가 기분 상하게 해도 같은 방식으로 되갚지 말자는 거죠. 그렇게 갚아봐야 다시 불행해질 뿐이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았다며 집에서 실행에 옮겨보겠다는 글들을 봤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정도 뒤에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다시 불행으로 돌려주는 배우자에게 다시 폭발했다!’는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육아와 부부관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칼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목만 읽어도 우리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의 글들이죠. 그런데 실제 삶에 적용해보면 아이도 그렇게 글처럼 빨리 변하지 않고, 나의 분노도 쉽게 통제가 되지 않으며 배우자도 마음에 쏙 들지 않습니다. 다이어트 약 같은 거죠. 광고만 보면 한 알 먹자마자 바로 몸짱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3개월은 운동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육아든 부부관계든 뒤틀려온 시간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방에 그 뒤틀린 시간을 돌려놓겠습니까? 뒤틀린 시간만큼 아니 오히려 더 오래 반대로 틀어야 원점이 되지 않겠어요? 세상의 어떤 철학자도 과학자도 전문가도 당신의 인생에 즉효약을 줄 수 없습니다. 즉효가 될 거라는 성급함을 버리시고 마음에 드는 조언들로 조금씩 삶이 젖어간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좋은 생각에 물들어가는 거죠. 그럼 약효를 확실히 보실 겁니다.

*칼럼니스트 이정수는 ‘결혼은 진짜 좋은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가며 살고 있는 연예인이자 행복한 남편, 그리고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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