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스마트폰을 주지 않았다
끝까지 스마트폰을 주지 않았다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8.1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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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두 아이와 함께 한 기차여행

바야흐로 방학과 휴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새로운 작품 촬영에 들어간 남편은 일주일에 한두 번 ‘아, 내게도 남편이 있었지’ 잊지는 않을 정도로 집에 들어온다.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는 '독박육아'의 시간. 반사적으로 주변이 한층 더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누구는 괌으로, 어느 집은 제주로, 잠시 일상을 버리느라 분주하다. 그야말로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아이들과 집에서만 지지고 볶고 있자니 심장이든 머리든 한 곳은 터질 것 같아,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끌고 부산행 열차에 올라탔다.

기차역까지 처자식을 바래다주며 남편은 몇 번이고 괜찮겠냐고 물었다. 바리바리 짊어진 짐까지 치면 아이 셋을 챙기는 것과 다름없는 여행길이다. 세 살 아들 데리고 터키를 여행했다는 용감하고 뜻있는 엄마도 있는데, 외국도 아니고 ‘고작’ 부산을 가려는데 못 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조금만 버티면 ‘파라다이스 친정’이 펼쳐질 것이다. 처음으로 남편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나선 친정 길. 꿀인 줄 알고 발을 들였다가 뒤늦게 파리지옥이라는 걸 알게 된 한 마리 똥파리처럼, 나는 기차에 척 달라붙어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됐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과 함께.

◇ ‘만화라도 보여줄까, 그러면 편할 텐데…’

자리에 앉고서야 도착지까지 두 시간이 아니라 세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됐다. 급행은 주말에만 운행되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손가락을 몇 번이나 꼽아봤는지 모른다. 두 시간과 세 시간은 체감 시간이 달랐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게 될까봐, 그로 인해 아이들이 행여나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될까봐 공공장소에서는 항상 긴장 상태가 된다. 낮잠이라도 한숨 들어주면 좋을 텐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미리 챙겨간 색칠 공부를 꺼내줬다.

기차가 낯설고 신기했는지 아이들도 조심하는 눈치였다. 객실 내에도 오후의 활기가 들어차 있었다. 내내 색칠하고, 그림 그리고, 잡지 보고, 간식 먹고, 화장실 다녀오고 몇 번을 반복하니 어느덧 구포역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많이 컸구나,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야무지게 내리는 연이와 윤우를 보며 감격스러움이 밀려왔다. 이 정도라면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얌전히 색칠하는 연이와 윤우. ⓒ신은률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얌전히 색칠하는 연이와 윤우. ⓒ신은률

부산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사뭇 달랐다. 오전 기차라 그런지 주변은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이제 막 새로운 날을 시작한 아이들은 어김없이 활어처럼 힘이 넘친다. 기차를 탄다는 이벤트를 또 치를 생각에, 객실 자동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연이와 윤우는 신이 나 있었다.

들뜬 아이들이 귀여운 건 100% 엄마뿐일 것이다. 주변과의 분위기 차가 클수록 고된 시간이 될 것은 분명했다. 앞으로 세 시간, 우리 세 식구를 포함해 KTX 254편 13호차 승객들의 여행길을 망치지 않는 케어와 훈육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색칠 공부를 얼른 꺼내주었다. 이미 해봤던 거라 며칠 전보다 흥미가 떨어져 있었다. 짐이 늘더라도 스티커나 숨은그림찾기같이 평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잇감을 조금 더 챙겼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간식을 들이밀었다. 우물거리느라 조용해진 것도 잠시, 아이들은 그 작은 의자에 기름이 발린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온몸으로 미끌거리기 시작했다. “얌전히”, “조용히”, “어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아이들을 말렸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듯 시끄러운 건 우리 아이들뿐이었다. 앞도, 옆도, 뒤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이어폰 너머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오면 한 번씩 눈길을 주는 사람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모두가 각자의 작은 창에 몰두하고 있었다. ‘만화라도 보여줄까, 그러면 편할 텐데…’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두 녀석과 밥을 먹을 때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버텼더니 아이들은 밥 먹을 때 스마트폰을 찾지 않는다. 버티면 습관이 된다. 앞으로 아이들과 기차를 타는 일이 종종 생길 텐데, ‘기차=스마트폰’이라는 공식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번이 그 첫 단추를 끼우는 날이 된 것이다. 모두가 스마트폰의 재미에 빠진 이 조용한 객실에서 굳이 스마트폰을 주지 않으며 싫은 소리를 연발하고 있는 내 모습이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 다음 번 기차여행을 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없이 ‘기름 발린 의자’에 아이들을 둔 이유는, 연이와 윤우를 아이들답게 오래 두기 위해서다. (그게 민폐 수준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스마트폰 없는 거실에서는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듯, 아이들은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는다. 정 할 게 없어 심심하면 차라리 잠을 자라고 권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큰다면 이런 엄마의 모습이 융통성 없고 답답해 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엄지족’인 현실에서 괜스레 유난 떠는 일일 수도 있다. 가끔은 내가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방식이 맞는지, 요즘 같이 아이들이 귀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만 공공장소에서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엄마 내공」의 작가 오소희는 ‘완벽한 육아란 없다, 언제나 최선인 육아만 있을 뿐이다’라고 따뜻한 말을 던진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쉬운 말인데 때로는 종이 위에 정확히 박힌 문장이 위로가 된다.

다음 번 기차 여행을 할 때는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잇감을 더 챙길 것이다. 나 혼자 준비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해보면 어떨까.

“기차 타고 갈 때 우리 뭐 하고 놀까?”

손잡고 집 근처 문방구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목적지가 어디든, 그곳으로 가기까지 텅 빈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재미있게 채울 수 있는 아이들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다음 번 여행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잔소리는 줄이고, 기분 좋은 여행길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두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육아’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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