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엄마 뒤에 몸을 숨기며 쭈뼛쭈뼛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
"안녕하…."
고개를 살짝 숙이는 듯했기에 그나마 인사 같아진 애매한 인사를 받고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됐다.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목소리도 작고 말도 잘 못한다면서 그것 때문에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자꾸 혼이 난다며 답답해하셨다. 정말 아이는 그랬다. 초등학생 같지 않게 큰 덩치에 목소리는 아주 작았으며, 그마저도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어떤 과목을 좋아해?"
"…수학요…."
"수학이 왜 좋아?"
"……."
아이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지금 답을 찾아내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계속 길어졌고, 결국 아이는 대답하기를 포기한 채 꾸지람을 기다리는 듯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때 내가 말했다.
"나는 영어를 좋아해. 왜냐면 영어가 재밌더라고. 배우면 바로 써먹어볼 수 있잖아. 그것도 언어니까. 근데 좋아하긴 하는데 잘하지는 못한다~."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 '왜'로부터 생각이 시작되고 '왜'로부터 지식이 쌓인다
그걸 왜 좋아하는지. 왜 먹고 싶은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왜'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튀어나온 답은 늘 "그냥요…."였다.
나는 대학 졸업 1년 후쯤 방송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송을 하고 있다. 공중파 아나운서로 방송하게 된 것만도 10년이 넘는다. 그리고 그중 8년 가까이 뉴스를 진행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언론인이라 말하면 그게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과연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
"Read between the lines."
행간을 읽는다는 말이 있다. 표면적인 말의 내용 말고 숨은 뜻까지 살펴 읽는다는 말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행간을 잘 읽지 못한다. 보이는 것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그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에 소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왜? 왜 그런 건데? 무슨 의도가 있는 건데? "왜"라고 묻고 답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신문을 봐도 뉴스를 봐도 보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뿐이었다.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 이상 생각의 회로를 확장시키지 못했다.
"왜"라는 질문 하나가 뇌를 깨운다. '왜'로부터 생각이 시작되고 '왜'로부터 지식이 쌓인다. 나는 왜 그랬는지, 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끊임없이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뇌를 깨워야 한다.
아이에게 끊임없이 '왜'인지를 묻자. 아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의문을 갖고 답을 찾아볼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하고 귀를 기울여볼 수 있도록 말이다.
도대체 너는 왜 그 모양인지, 왜 그 따위로 행동하는 건지, 다그치는 '왜' 말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게 하고 싶은 것인지, 아이의 생각과 감정에 말을 걸어보는 '왜'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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