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 후… 나는 왜 1년을 기다렸을까
아동학대 그 후… 나는 왜 1년을 기다렸을까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08.14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부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발생 1년에 부쳐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아동학대 피해 학부모는 지난해 8월 7일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위치한 A 어린이집 앞에서 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 폐쇄와 가해 교사·원장의 구속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해당 어린이집은 등하원 지도를 이유로 입구를 통학차량으로 막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동학대 피해 학부모는 지난해 8월 7일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위치한 A 어린이집 앞에서 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 폐쇄와 가해 교사·원장의 구속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해당 어린이집은 등하원 지도를 이유로 입구를 통학차량으로 막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첫 번째 재판 날짜가 나왔던 날을 기억한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피해아동 학부모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피해자 국선변호사 ○○○입니다. 어린이집 사건(이○○, 김○○) 공판기일이 3월 9일 14시 10분 부천지원에서 열립니다.” 국선변호인이 보낸 문자를 그대로 내게 전달한 것이었다.

지난해 7월 22일, 학부모 4명은 부천시 중동에 위치한 A 어린이집 만 3세반인 달님반(가칭) 아동이 담임교사인 이아무개 씨에게 학대 피해를 받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2주 뒤인 8월 4일 피해 아동 부모 10여 명이 어린이집 폐쇄와 가해 교사·원장의 구속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해당 어린이집 앞에서 진행했다. 이날을 계기로 A 어린이집 학대 사건은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달 9일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 교사 이 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변호사가 보낸 문자가 오기까지 부모들은 재판이 열리기를 계속 기다렸다. 그동안 부모들은 판사에게 호소문도 써서 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서를 받으러 다녔다. 답답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내 아이가 아동학대 피해를 입었다면…’이라 가정하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본 적이 있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 부모가 쓴 호소문이나 청원 참여 요청글이 많았다. 사건을 경찰에 접수하고 나면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일이 흘러가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잊을 만하면 또 터지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수에 비해 정보는 빈약했다. 

부천의 피해 부모도 각자 지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기대야 했다.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몇 개월 만에 재판을 시작했다더라’, ‘어떤 사건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죄가 나왔다더라’하는 이야기가 들리면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육아가 처음인 만큼 재판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피해 부모가 신고를 결심하고 포털 사이트에 ‘아동학대’를 검색했을 때, 이후 아동학대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잡히는 기사 한 건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마다 공판이 있는지라도 알면 덜 불안할 수 있으니까.

◇ 나는 어떻게 기사 한 편을 1년 동안 쓰는 '게으른 기자'가 됐나  

기관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은 경찰이 접수받는다. 그래서 아동학대 사건 기사 대부분은 경찰서로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가 쓴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고 나면 사회부 기자는 특정 사건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진행상황을 알기 어렵다. 종합지나 통신사는 출입처 간 업무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대개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는 법조 기자 몫이다. 

나는 출입처 없는 취재를 하는 전문지 기자이기에 경찰과 법원을 오가는 취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사건 취재는 처음이었기에 불안한 마음이 컸다. 첫 공판일이 정해졌다는 문자를 받고나서 다른 회사에서 법원 출입을 하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재판 보러 갈 때 방청 신청해야 해요?” 그만큼 아무것도 몰랐다.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무조건 취재를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첫 번째 공판을 방청해보겠다고 팀장에게 보고했다. 첫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부천까지 오고가는 시간을 더하면 한나절은 걸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하루 방청을 한다고 그날 한 건의 기사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재판 방청에 시간을 투자할 만큼 기사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가지 못하는 다른 현장은 동료들이 가야 했다. 부채감이 컸다. 첫 공판 날까지 팀장을 설득하지 못했다.

첫 공판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리고 공소 사실을 설명해주고 끝나기 때문에 보통 금방 끝난다. 3월 9일에 있던 첫 공판에서 판사는 재판정에 앉아 있던 피해아동 부모에게 발언기회를 줬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공판 취재를 허락하지 않은 팀장이 원망스러웠다. 2차 공판을 방청하겠다고 다시 보고했을 때, 팀장은 ‘잘 다녀오라’며 짧게 답했다. 하루에도 기사 수만 건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기사 한 편을 1년 동안 쓰는 게으른 기자가 됐다.  

기자는 사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게 맞는 걸까. 이번 취재를 관통하는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사건 초기에 원장 김 씨는 취재 요청을 두 차례 거부했다. 자연히 피해아동 부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고민은 공판을 보면서 더 깊어졌다. 지난 5월 4차 공판에서 폐쇄회로(CCTV) 영상 44편을 열람했다. 이날 나는 사건 당시 CCTV 영상을 처음으로 봤다. 달님반 교실도 처음이었다. 증거로 제출된 CCTV 영상을 보는 동안 눈물과 울화가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부모들 증언을 들으며 떠올렸던 내용보다 더 낯설었다. 그만큼 충격도 컸다. 

이 씨 측 변호사는 교사 이 씨의 영상 속 행동이 ‘훈육 의도로 발생한 것’이라며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제출했다. 판사는 “영상 의견에 대해서는 일반인 입장에서 판단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판사가 취할 ‘일반인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 ‘운’에 맡겨야 하는 아동학대 재판… 피해자를 위로할 수 있을까

1년을 보내는 동안 피해아동 부모와 만나면 서로의 ‘운 좋음’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눴다. 결정적인 증거물인 CCTV 영상이 확보돼서, 피해아동들의 부모가 한마음으로 수사와 재판에 참여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정해진 출입처가 없어 취재가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이었던 나도 운이 좋았다. 

“모든 조치를 엄마들이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학대 사건은 절차와 과정의 엄정함에 기대기에는 구멍이 많았다. 지난달 사건 발생 1년을 기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1년 간 느낀 고단함을 긴 시간에 걸쳐 털어놨다. 개인이 가진 의지와 ‘운수’에 맡겨야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피해를 증명하는 것도 부모의 손을 거쳐야 했다. 그랬기에 부모들은 열 일 제치고 항상 발로 뛰어야 했다. 

올 9월, 부천 A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선고가 난다. 한 어머니는 “해야 하기에 하지만 정말 힘이 든다”고 말했다. 원장이나 교사가 항소를 하면 또 다시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하고, 민사소송을 원하는 몇몇 부모들은 다시 처음부터 아픈 추억을 들춰야 한다. 아이들은 학대의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사건의 진짜 끝은 어딜까.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관련기사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