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의 '국영수' 과외보다 한 번의 여행
백 번의 '국영수' 과외보다 한 번의 여행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08.17 18: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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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여행비용은 ‘교육’비다
라오스의 주요 교통수단, 일명 툭툭이를 타고 ⓒ엄미야
라오스의 주요 교통수단, 일명 툭툭이를 타고 ⓒ엄미야

3주 만에 집에 도착했다. 편하다. 남편은 우리가 없는 동안 집에서 밥을 한 끼도 안 해먹었는지, 집 떠나기 전 음식들이 냉장고에 그대로였다. 싱크대엔 즉석밥과 즉석라면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참치캔을 따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라오스 음식도 우린 맛있게 잘 먹었지만, 현지에서 돼지고기와 배추, 마늘, 양파를 사서 김치찌개 비슷하게 잘 해먹기도 했지만, 집에서 해먹는 김치찌개에 비할쏘냐. 여행은 돌아왔을 때의 편안함, 내 집의 소중함을 느끼려고 떠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온 행복감에 젖었다.

나는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가족 모두가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만 데리고, 또는 한 명씩 따로 데리고 떠나기도 한다. 작은아이가 너무 어릴 때는 큰아이와 둘이 주말을 이용해 지리산에 다녀오기도 했고, 추진하던 일이 잘 안 돼 좌절을 했던 어느 날엔 작은 아이를 친구 삼아 제주도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특히 한 아이만 데리고 떠나는 여행은 좀 더 특별한데, 자칫 소홀할 수 있는 각자의 아이들을 적어도 그 기간 동안만은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아이’로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라오스 여행은 큰아이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방학기간을 목표로 떠났다. 친구들은 부족한 학습을 보충하는 기간으로, 학원이 성업을 하는 방학기간에 그것도 중학생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발상에 처음부터 마음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업문제와 더불어 비용의 문제도 있었다. 뻔한 형편에 잦은 여행은 남편에겐 불만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설득했다.

“우리는 아이들 학원을 보내지 않으니, 여행비용을 아이들 사교육비라고 생각하자.”

나는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넓은 시야와 열린 가슴이다. 나는 이 두 가지만 가지고 있다면 살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세상에 ‘죽고 싶은’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될 테니까.

◇ '어떤 일에 죽을 만큼 애쓰지는 말아라, 어디든 길이 있다'

라오스에서 일주일가량 현지 주택에 머물렀는데, 그곳에 사는 주인들은(정확히 말하면 월세로 사는, 라오스는 외국인이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다) 한국인 여성 디자이너 두 명이었다. 

친구 사이인 이 둘은 한국에서 웹디자이너로 회사생활을 하다가 여행 온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 너무 좋아서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고 했다. 이곳에 산 것은 2년이 조금 넘었는데 각국의 NGO 단체들과 협업해 현지 민족의 공예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외국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렇게 외국에서 산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죠. 대학 나와서 멀쩡한 직장 들어가서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것밖에 다른 길은 고민을 안 하고 살았죠. 그런데 한국 밖을 나와보니까 너무 다양한 세상이 있는 거예요. 지금 한국에 있었다면요? 왜 결혼 안 하느냐는 얘기를 엄청 듣고 있었겠죠.”

젊은 언니 두 명이 낯선 땅 라오스에서 공예품 디자인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용기 있고 멋있게 비쳤을까, 아니면 고생스럽게 비쳤을까.

사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 그저 이런 인생도 있다는 것을, 이런 선택도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어느 나이가 되면 왜 결혼하지 않냐고 채근받지 않는 그런 선택도 있다고.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넓은 세상이 너희들 앞에 펼쳐져 있고 그 속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단다. 그러니 어떤 일에 죽을 만큼 애쓰지는 말아라. 어디든 길이 있다. 실패해도 괜찮단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아이들과 자주 짐을 꾸리는 이유이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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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2018-09-01 06:44:55
넓은 세상을 본다는 건 엄마, 아빠도 성장하고, 아이들에게도 숨쉴틈을 주겠지요. 지금 보이는 손바닥만한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걸, 지금 느끼는 힘겨움이 전부는 아니라는걸 아이들이 일찍 알면 알수록 행복해지고 할것이 많은 희망찬 세상이 되겠지요. 저도 아이들이 얼른 커서 함께 돌아다니고 여행다녀보고 싶네요. 잘읽었습니다~~~^^

ha79p**** 2018-08-31 20:09:53
직접 체험하는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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