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육아도 잘하고 싶은데…" 아픈 몸을 사는 직장맘
"일도 육아도 잘하고 싶은데…" 아픈 몸을 사는 직장맘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8.27 10:3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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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직장맘의 고민 상담... "살아, 눈부시게"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후배가 “선배,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물었다. 제주도 먼 바다 어딘가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뉴스로 부산한 오후였다. 후배는 오래 고민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후배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괜찮아졌나 보다 생각했는데, 몸이 힘드니 회사 생활이 더 견디기 힘들어졌나 보다. 얼마 전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보이는 팀원들을 위한 '몸보신' 회식에서 그 후배에게 물었다. “지금 제일 너를 힘들게 하는 게 뭐야? 남편의 불규칙한 근무? 아이가 계속 아프고 힘들게 하는 하는 거?” 후배는 뜻밖의 말을 했다.

“제가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픈 몸을 사는 엄마들이 많다.
아픈 몸을 사는 엄마들이 많다 ⓒ최은경

순간, 13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큰아이가 돌이 막 지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두 달을 넘게 앓았다. 보름 가량 입원했고. 그때부터 나는 매일 약을 먹는 엄마가 되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아프면, 일도, 육아도, 여행도, 글쓰기도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엇도 할 수 없겠구나. 건강을 지키는 것, 돌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구나 절감했다.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더 나빠지지 않게 막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이 몸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겼다. 그래서다. 내가 그 이후로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어차피 아프면 할 수 없는 게 일이다(일 뿐이겠냐마는). 그때까지는 해보자 싶었던 거다. 그렇게 10년을 더 넘게 일했다. 남편과 부모님, 회사 등 주변의 도움이 컸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일할 수 없었을 거다.

“일도, 육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다 잘 하고 싶었던 게 욕심이었을까요?”

핏기 하나 없는 지친 얼굴로 후배가 말했다. 후배는 결혼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한 이상 육아를 이유로 부모들에게 또 다른 희생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조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 독박육아를 선택했다. 그만큼 당찬 후배였다. 나는 직급을 떠나 함께 일하는 선배로서 후배에게 필요한 조언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이야기들을 선배랍시고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과연 이런 말이 도움이 될까 의심하면서. 회사 주변을 맴맴 돌며 더운 바람을 맞았다. 땀이 났다. 마음속에서도.

◇ “제가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원래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더 무거운 법이다. 해결할 수도 없으면서,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마음으로 퇴근 후 합정동에 가야 했다. 지난 2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합정동 빨간책방 카페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던 것.

최근 웹툰+에세이 「살아, 눈부시게」(위즈덤하우스, 2018년)를 출간한 작가 김보통의 라이브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살아, 눈부시게」는 김보통 작가가 몇 년 전 연재했던 ‘내 멋대로 고민 상담’ 내용을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엮어 나온 책이다. 행사장 입구에서 김보통 작가에게 받고 싶을 상담 내용을 적었다. 

'직장맘도 대충 살아도 되나요? 정말 대충 살아도 되나요?'

써놓고 보니, 몇 시간 전 후배에게 하지 못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 때는 좀 대충 살아도 되는데"라고. 내 질문은 선택받지 못했다. 김보통은 이날 말했다.

"일단 저한테 고민상담을 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뭐냐면 거의 대부분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으로 쓰는 말)예요. 내가 답은 정해놨으니, 너는 대답만 해. (하하) 그래서 상담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를 '일단 이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자'로 정했어요. '이분들이 얼마나 동의가 고팠으면 누군지도 모르는 나한테 동의를 받으려고 할까. 실제로 아무런 효력도, 영향력도 없는 사람인 나한테 동의를 받으려고 하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주변에 아무도 그거에 대한 답을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렇다면 내가 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 질문도 답정너에 가까웠다. '말뿐인 위로'라도 좋으니, 김보통에게 '당연히 대충 살아도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동의를 얻고 싶었다. 그럼 후배를 다시 만났을 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인생 네 멋대로(자존감), 대충 살아(관계), 뭐가 되든, 되지 않든(진로), 응원할 테니까(위로),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연애)'이라는 이 책의 목차대로 아이도, 회사도, 나에게서도 벗어나 대충 살아도 된다고 힘들 때는 좀 그래도 된다고 후배에게 말하면, 나도 후배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 '대충 살아도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사실 후배만 그런 건 아니다. 주변에 아픈 몸을 사는 직장맘들이 너무 많다. 안 아픈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일, 육아 등 해야 하는 일은 많은데,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잘 때 자야 하고, 아이들이 눈 뜨면 눈 떠야 하는 엄마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음을 너무 잘 안다. '애 낳고 주말에 늦잠을 자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하소연, 나도 애 키울 때 많이 했지만 주변의 직장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다.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아서도, 예전과 똑같이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무시 못하는 것 같다. 툭 하면 소화가 안 되어 소화제를 털어넣는 후배, 원인 모를 장기간의 두통으로 시달린 후배, 교사 친구들은 또 어떻고. 만날 허리, 목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쉴 수가 없다. 한 친구는 성대결절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임에도 학교 눈치를 보며 겨우 병가를 내야 했다. 빠진 공백을 위해 휴가 전후로 일을 더 많이 했음은 물론이다. '아파서 쉬는 건데, 이렇게 힘들게 쉬어야 하나'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짠했다.

그래도 그만둘 수 없는 저마다의 이유로 직장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많다. 앞으로는 더 많아지겠지. 이날 김보통 작가가 상담한 내용 중에도 퇴사에 관한 고민이 있었다. 하필 오늘 날, 반드시 여기 와야 할 이유가 이거였을까.  

"애매한 경력, 애매한 나이, 애매한 실력… 회사 다니면서 마음에 병이 생겼어요. 퇴사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마음에 병이 생겼으면 퇴사하면 돼요. 고민 해결? (하하) 그만두라고 했을 때 못 그만두는 사람은 아직 다닐 만한 거예요. (맞아 맞아) 그만 둘 사람은 뭐라고 해도 그만둬요. (맞아 맞아) 마음에 병이 생겼다고 자각했으면 그만두시면 돼요. 애매한 경력, 애매한 나이, 애매한 실력… 저랑 똑같아요. (하하) 그런데 퇴사하고 보니까 정말 애매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만큼 애매한 사람이 어딨어요? 그림도 애매해, 글도 애매해, 생긴 것도 애매해… 그런데도 먹고살잖아요. (하하)

내가 재능이 있을까 없을까 테스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만두고 나와서 테스트해보는 것밖에 없어요. 회사 다니면서 정말 많이 듣는 소리가 '그만둘 데 정해놓고 그만두세요' 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능력자인 거예요. 회사 생활이 힘든 사람이 아니고, 능력자. 회사 다니기 힘들어서 마음에 병을 얻은 사람이 그렇게 하기는 힘들 수 있어요. 제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내일 출근하시면 계속 다니실 거예요. (하하) 세상 사람들이 다 말려도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둘 거예요. 번아웃증후군은 피하셨으면 좋겠어요. 퇴사해도 뭐라도 돼요. 뭐가 안 돼도 상관없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퇴사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 말은 언젠가의 나를 위한 말이기도 했다. 후배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자신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겠지.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후배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꼈으면 하는 거다. 조직 안에서든, 밖에서든. 여성의 경제력 없음과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에게 있는 거니까.

그래도 중요한 건 몸이다. 건강이다. 그게 아니면 현재 혹은 미래를 위한 삶,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 당분간은 몸을 추스르면서 생각을 좀 해보자고 했다. 현명한 답이었는지 모르겠다. 현명한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김보통은 책에서 썼다.  

- 현명하다는 건 어떤 걸까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김보통 작가의 '살아, 눈부시게' 속내용 중
김보통 작가의 '살아, 눈부시게' 속내용 중 ⓒ최은경

그래 맞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더운 바람 맞으며 조언이라고 한 말들이 모두 틀릴 수도 있다. 아픈 몸은 그저 현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 안에 어떤 고충이 있는지 나는 100% 알 길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후배에게 이건 말하고 싶다.

"살아, 눈부시게."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 다시 읽어도 참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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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n**** 2018-09-10 10:48:47
육아만 해도 힘든데 일까지하는 직장맘들 화이팅입니다

bonjui**** 2018-09-10 10:39:28
워킹맘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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