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월화수목금, 주 5일의 시간을 꽉 차게 유치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갔다가 종일반 수업을 듣고 오면 오후 5시 30분, 그러다 보면 밥 먹고 씻고 정리하고 자기 바쁜 아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아이는 입에 늘상 이런 말을 달고 산다.
"얼마나 더 놀 수 있어?"
"오늘은 늦게 자고 싶다."
괜히 마음이 쓰인다. 이맘때는 놀고 싶을 때까지 놀아야 하는데, 유치원 다녀오기 바쁘니 말이다. 유치원에서도 특별한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노는 일이 다일진데도 부모로서 온전히 시간 내서 놀아주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금요일 밤 자기 전 이런 제안을 했다.
"내일은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놀자. 아들, 너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진짜? 그럼 내일은…."
아이의 입에서는 뭘 하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가 술술 흘러나왔다.
일어나자마자 아들 하고 싶은 대로 놀기로 했다. 먼저는 보드게임을 하고 싶단다. 얼마 전 시에서 운영하는 육아공동나눔터에서 무료로 2주 동안 대여한 보드게임. 밤마다 시간이 부족해 게임을 하다가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 계속 하고 싶었나 보다.
우리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까페로 갔다. '○○의 마블'이란 게임을 오전 내내 했다. 당연히 나의 돈(게임머니)은 계속 없어지고 아들은 점점 부자가 되는 짜여진 시나리오의 게임이다. 세계 모든 도시를 점령한 아들은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아 재밌다. 내가 이겼어!"
그다음은 노래방 가기! 요즘 나오는 만화영화 주제곡을 부르러 가고 싶다고 했다. 동전을 넣는 노래방이 유행인데 거기 가자고 해서 갔다. 불렀던 노래 또 부르고, 또 불렀다. 지겹지도 않은지 내리 여섯 곡을 부르는 것 아닌가. 그만큼 아이에게도 스트레스 배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이크를 잡고 도통 내줄 생각을 않더니, 나에게 마이크를 내밀며 "이제 아빠 차례야!"라고 한다. 부를 만큼 불렀나 보구나 생각하며 나도 노래를 몇 곡 부르며 아이와 공감했다.
그 다음은 예산을 가고 싶다고 했다.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를 타고 예산을 가자는 것이다. '뜬금포'인 아들의 말에 당황은 했지만 약속한 것이 있기에 함께 갔다. 사는 동네와 가까워 자주 방문하는 예산은 예당저수지로 유명한데, 바다가 아니라도 아름다운 노을이 질 때면 바다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드는 곳이다.
과자 손에 들고 하나 입에 물고 예당저수지의 일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사진을 잘 찍는 편이긴 하지만 유독 이날은 더 사진 포즈를 잘 잡아주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뭘 하고 싶으냐고 했다. 그러니 자신의 공룡 장난감에게 집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나,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막막했다. 하지만 아이가 하자는 대로 했다.
가게에서 준비물을 사고 집에 들어가 하나씩 하나씩 꾸미기 시작했다. 평소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던 공룡친구들의 집과 잠자리를 꾸며주는 아이의 미소는 마치 부모가 아이를 위해 침대를 만들어주는 그런 행복 미소였다.
아이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그동안 부모로서 얼마나 짜여진 틀에서 아이와 놀아주고 시간을 보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아이도 온전한 인격체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다고 부모의 말을 따르고 우리가 정한 시간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부모의 커다란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고 놀이의 권한을 주니 이렇게 잘 따르고 행복해하고 시간도 잘 간다. 또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고 함께해주니 아이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두세 배는 올라가는 것 같다.
그날 아이는 일찍 자라고 하지 않았는데 불구하고 피곤했던지 평소보다도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고는 아빠에게 하는 말.
"오늘 하루 정말 재밌고 행복했어!"
아이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다.
가끔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루를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만큼 부모의 인내와 절제가 따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얻는 아이의 행복한 미소와 만족스러운 마음을 본다면 더 행복하겠지? 가끔은 아이에게 말해보자.
"아들(딸),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칼럼니스트 김대욱은 공주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CCC 공주지부에서 대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교사인 아내와 함께 대한민국의 교육과 현대사회의 육아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남편이다. 아들 딸을 둔 아빠로서 그들의 일상과 삶을 기록하는 아마추어사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