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어리광 학교에선 근엄… 우리 아이는 '1학년'
집에선 어리광 학교에선 근엄… 우리 아이는 '1학년'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9.0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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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Back to School' 미국의 새 학기

8월이 되면 미국 마트와 쇼핑몰에는 'Back to School(백 투 스쿨)'이란 사인이 여기저기 붙는다. 아이들의 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들까지 개학과 개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이나 데이케어에 다니는 더 어린 아이들도 여름학기를 등록해서 다니지 않았다면 대부분 6월 초부터 시작한 길고 긴 여름 방학을 마치고 8월 말이 돼서야 다시 기관으로 돌아간다.

미국의 킨더가든과 초등학교 중 많은 학교들이 학기가 시작하기 전 준비물 리스트를 웹사이트와 통신문으로 공지해두고, 학부모들은 미리 리스트대로 준비해서 예비소집일에 학생의 교실에 제출해둔다. 준비물은 보통 연필, 가위, 크레용, 풀, 그리고 지우개나 파일 폴더 같은 것들인데, 매일매일 따로 준비물을 챙겨보낼 필요없이 학기 초에만 신경을 써주면 되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준비물 걱정을 할 필요가 거의 없다.

예비소집일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격식 없이 간단하게 새 교실에서 인사를 나누고 학기 중의 중요한 일정이나 아이의 등하교 방법(걸어서 등교하는지 자가용으로 등교하는지 혹은 스쿨버스를 타는지 그도 아니면 방과 후 지내는 기관의 차가 데리러 오는지)이나 아이의 학번(학교에서 점심을 사먹는다거나 할 때 입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의 비상연락처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학교에서 공지한 아이의 이번 학기 준비물 리스트: 적혀진 물품을 준비한 뒤 아이의 교실 사물함에 미리 가져다 두면 된다.
학교에서 공지한 아이의 이번 학기 준비물 리스트. 적힌 물품을 준비한 뒤 아이의 교실 사물함에 미리 가져다 두면 된다. ⓒ이은

한국과 달리 새 학년이 봄이 아닌 가을에 시작하기 때문에 큰아이는 한국 나이로는 일곱 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1학년이 되었다. 1학년이 되고 나니 집에서는 아직도 가끔 엄마 쭈쭈를 만지고 애교도 부리고 볼에 뽀뽀도 쪽쪽 하던 녀석이 학교 근처에만 가면 갑자기 근엄해진다.

꼭 잡고 가던 엄마 손도 학교가 보이는 길목에 들어서면 슬며시 놓아버린다. 왠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어서 “왜? 엄마 손 좀 다시 꼭 잡아줘” 하면, “아이, 참. 학교 거의 다 왔잖아. 나중에 집에서 잡아줄게.” 한다. 곤란해하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나도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장난을 치지는 않는다. 교문 앞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면서 학교로 홀로 들어서는 아이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찾도록 엄마는 바라봐 줄 뿐

작년 1년의 킨더가든 생활. 아이는 한 뼘 이상 자랐다. 흘리지 않고 우유팩을 열 수 있게 됐고, 조작이 조금 불편했던 도시락 통도 척척 잘 정리해왔다. 바깥놀이 하러 빨리 나가려는 급한 마음에 어설프게 잠겨 있던 코트 앞자락도 차분히 정리해서 돌아올 줄 알았다. 이유 없이 밀치는 다른 아이를 같이 밀어버리기 전에 가볍게 나무라고 다독일 줄 알게 됐고, 학교에서 한 활동을 엄마에게 설명하는 기술도 늘었다.

새 학기가 돌아오면서 학교 전체 통신문 자세히 읽기도 다시 시작됐다. 은근히 다양한 행사가 자주 있는 이곳에서는 통신문을 꼼꼼하게 읽어야 파자마 파티 날에 혼자 평상복을 입혀보낸다거나 이상한 모자의 날 이벤트가 있을 때 혼자 모자를 쓰지 않고 등교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다행히 아직은 큰 실수를 한 적이 없지만 실수할 뻔한 적은 수없이 많다. 작은 메모라도 학교에서 온 것은 꼭 챙겨서 읽어야 하며 학급 인터넷 게시판도 자주 확인해야 한다.

방학이 끝나면서 피자와 너겟, 냉동식품 위주의 학교 급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를 위해 도시락 싸는 일도 다시 시작됐다. 아이는 한식을 좋아하지만,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이 도시에선 한국처럼 일반적인 밥과 반찬 도시락을 싸주기 힘들기 때문에 주로 속재료를 바꿔가면서 김밥, 주먹밥, 샌드위치, 홈메이드 버거나 피자, 다양한 모양의 동그랑땡 같은 것들을 돌아가면서 싸준다.

얼마 전 전학 온 아이의 새 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저학년들에게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때문에 숙제를 하는 대신 방과 후 아이는 계속해서 신나게 논다. 엄마는 같이 놀거나 아이가 더 신나게 놀도록 응원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다만 놀이터와 바깥 나들이를 사랑하는 아이를, 엄마의 공부 때문에 친구도 없이 집 안에서 주로 지내게 한다는 사실이 미안할 뿐이다.

개학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미국의 1학년 아이는 입학식도 없이 조용하지만 충분히 즐거운 첫 한 주를 보냈다.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하고 묻는 엄마에게 아이는 바깥놀이 시간에 30분 동안 뛰어놀 때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를 이야기하고 새로 이름과 얼굴을 익힌 같은 반 아이 이야기를 해준다. 학기 초반이라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조금씩 녹는 기분이다.

아이는 한참 더 자라 있었고, 신나게 놀기만 했던 여름방학에도 스스로 많은 걸 익히고 배운 것 같다. 방학 때 한국을 방문하고 오면, 우리 아이만 너무 놀게만 하나 나도 모르게 소심해지는 때가 있었다(사실 지금도 조금 그렇다). 하지만 아이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 시기뿐일 거란 생각이 든다.

미국의 새 학기 역시 준비할 것도, 변하는 것도, 또 생각해야 할 것도 많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이가 스트레스 없이 노는 데 집중하도록, 스스로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찾도록 엄마는 그저 마음으로 응원하고 바라봐 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아들… 엄마는 아직은 아들 손 꼭 잡고 같이 등교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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