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때문에, 엄마랑 다시 살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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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때문에, 엄마랑 다시 살게 될 줄 몰랐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09.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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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이지은 글·그림 「빨간 열매」

돌아보니, 일을 쉰 적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하면서 보고 느낀 그림책이 적지 않습니다. '어른이'의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글쓴이 말

덕질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 엄마」(웅진주니어, 2016년)를 내 '생애 그림책'으로 꼽을 만큼 좋아했는데, 「빨간 열매」(사계절, 2018년)를 몰라보다니.

페이스북에서 광고 및 동영상이 돌기도 했고, 종종 들르는 그림책 전문 서점에서 작가와의 대화도 열었는데 「빨간 열매」라고 해서 관심이 없었다. 작가 이름을 미처 보지 못했던 거다. 아니 나중에,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도 '이 이지은'이 '그 이지은'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전 그림책과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이지은 작가의 그림책들. 그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이지은 작가의 그림책들. 그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웅진주니어(좌) ⓒ사계절(우)

나도 안다.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고 있다는 걸. 작가의 색깔을 어떻게 하나로 단정할 수 있냐고, 다양한 모습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싶은 건 모든 작가의 바람 아니겠냐고, 그런 면에서 이지은 작가는 성공한 게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인정, 인정한다. 그래서 더 놀라울 뿐이다. 이지은 작가의 변신이.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게 있더라. 그림책 속에 깃듯 따뜻한 마음, 그건 여전했다. '역시 이지은이구나' 싶었다. 또 울어버렸다.

어느 날 배고픈 아기곰은 빨간 열매를 맛있게 먹는다. 정말 맛있어서 더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의심 없이 나무를 오른다. 빨간 열매인가 싶은 것을 만나지만 아니다. 또 그런 것을 만나지만 역시 아니다. 나무 꼭대기 끝까지 다다랐지만 빨간 열매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뭐지? 엄청나게 큰 빨간 열매가 저 멀리 보이는 게 아닌가. 고민 없이 지체 없이 몸을 던지는 아기곰. 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쿵 하고 떨어지는 아기곰을 '검고 푸진' 그 무엇이 받아 안을 것이라고는. 아기곰의 엄마였을까, 아빠였을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어른 곰이었을까.

「빨간 열매」(이지은, 사계절, 2018년) 표지 ⓒ사계절
'빨간 열매' 중에서 ⓒ사계절
「빨간 열매」 중에서 ⓒ사계절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중고등학교 무렵부터 '대학만 가면 집에서 나와야지' 생각했다. 집은 고단한 마음을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함께 있는 그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대학엔 갔지만, 집을 나올 수 없었다. 돈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빨리 졸업이란 걸 하고 싶었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그러려면 가능한 한 빨리 취업이란 걸 해야 했다. 대기업, 공무원, 높은 연봉? 처음부터 그런 목표 따윈 없었다. 그저 취재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면 족했다. 기대치가 낮아서 였을까. 생각보다 빨리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독립할 수 없었다. 대학 다니면서 은행에서 빌려 쓴 학자금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턱없이 적은 월급으로는 저축은커녕 카드를 돌려막기 바빴다. 근근이 버텼다. 사방이 막힌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독립하지 못하고 그 집에 계속 살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그랬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그 막막함. 힘들었고 순간순간 우울했다.

그때였다. 아빠가 교통사고가 난 건. 염치가 좀 없었지만 합의금으로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달라고 했다. 아빠는 노발대발했다. 그 돈을 빼내서 나에게 준 건 엄마였다. 빚부터 갚으라고 했다. 빚으로부터 탈출한 나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했다. 내 기준에서 '완벽한' 독립이었다. 오해마시라. 도망이나 회피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같이 살고 싶었을 뿐.

◇ "경력단절 되면 엄마가 취업 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그런 내가, 오매불망 집에서 독립하길 바랐던 내가, 엄마랑 다시 살게 될 줄 몰랐다. 아이 때문이었다. 아쉬운 건 나였는데 하나도 달갑지 않았다. 엄마랑 함께 있는 건 여전히 편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엄마가 없으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회사는 멀었고, 몸은 아팠다. 아픈 몸으로 일하러 가는 내가 엄마는 못마땅했다. "그만두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이대로 경력단절 되면 엄마가 취업 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내 맘을 몰라주는 엄마가 서운해서 아무 말이나 해댔다. 엄마는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내가 서운했을 거다.

그래도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엄마에게 "저녁으로 뭐 해줄까?"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 기운이 펄펄 났다. 찬밥으로 때우는 5분 밥이 아니라, 따습고 정갈한 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불맛이 나는 제육볶음, 양파가 떡보다 많은 엄마만의 떡볶이 같은 엄마만의 음식, 엄마만의 맛이 나는 음식을 먹을 때면 더 그랬다. 에너지가 가득 담긴 엄마 밥을 든든히 먹은 나는 틈틈이 글을 쓰고,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빨간 열매' 중에서 ⓒ사계절
「빨간 열매」 중에서 ⓒ사계절

맞다. 아기곰이 나였다. 세상을 향해 겁도 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오르기만 하던 내가 고꾸라질 때 나를 받아준 건 엄마였다. 붉은 열매를 먹여준 것도 엄마였다. 노란 열매를 생각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 것도 엄마였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빨간 열매」를 읽으면서 주책맞게 눈물이 난 건 그 때문이었다.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다. 이지은 작가도 책 뒤에 썼다.

"아기곰을 받아준 큰 곰처럼 든든한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생각합니다. 내일의 노란 열매를 다시 꿈꾸기 위해서요."

나도 큰 곰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정성스레 빨간 열매를 먹이고, 내일의 노란 열매를 꿈꾸게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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