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이 되겠다는 일곱 살… "대견하고 안쓰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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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이 되겠다는 일곱 살… "대견하고 안쓰러워요"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09.15 09: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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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주년 특별기획] 바퀴 달린 엄마-⑩시각장애 지소연(가명) 씨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지난해에 이어 창간 8주년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 시즌2를 연재합니다. 장애가 있는 부모들의 삶과 육아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한 날 둘째 아이한테 물어봤어요. ‘있잖아 네 친구 엄마들은 예쁘고 눈도 예쁜데, 엄마는 눈도 조금 무섭고 그런데 너 어때?’ 그랬더니,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엄마 괜찮아’라고 너무 덤덤하게 얘길 하니까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지소연(가명·27) 씨는 9살, 7살, 6살, 4살 된 아이 넷을 키운다. 위로 셋은 딸아이, 막내는 아들이다. 한 살 많은 남편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지 씨는 고등학교 때 전학 간 특수학교에서 남편을 만났다. 2월에 학교를 졸업하고 3월에 바로 결혼. 남편은 다른 지역에서 안마 일을 한다. 2주일에 한 번씩 집에서 만나는 주말부부로, 결혼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12일 경기도의 한 재개발지역에 있는 다가구주택 2층 지 씨의 집을 찾았다. 평일 오후 4시, 현관문을 들어섰다. 넷째가 막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가방에서 알림장을 꺼내 엄마에게 내밀어 보이고 있었다. 가지런히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과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지 씨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지 씨는 선천성 시각장애로 7살이던 1997년 시각장애 1급을 판정받았고 고등학교까지 특수학교를 다녔다. 좋은 사람만 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할 수 있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지 씨는 정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그 해 첫 아이를 낳았다. 지 씨는 아이 넷을 '독박육아'로 키우면서 “육아가 힘든 것보다 많은 걸 못 해주니까 미안한 맘이 가장 크다”며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하는 중에 넷째 아이가 식탁 아래 지소연(가명) 씨 다리에 뽀뽀를 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인터뷰하는 중에 넷째 아이가 식탁 아래 지소연(가명) 씨 다리에 뽀뽀를 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가던 할머니들… 병원 가는 것조차 피하던 시절

“첫 아이는 뭣 모르고 낳았죠(웃음). 아기가 정말 좋으니까. 그런데 둘째, 셋째 아이를 보면서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물려줄 것도 없는데 내 욕심 때문에 많이 낳은 건 아닌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첫 아이를 낳고 ‘이 애가 내가 낳은 애야?’ 하고 얼떨떨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큰 대학병원을 다녔다. 지 씨의 눈은 뿌옇고 파랗다. 뿌연 건 각막 혼탁인데, 이것이 큰아이에게 유전됐다.

대학병원에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안타까운 시선들. 아이를 임신해 배가 불렀고 눈은 안 보이는 지 씨 앞을 지나갈 때면 혀를 끌끌 차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런 시선이 싫어서 병원도 자주 못 가고 밖에 나가는 걸 피하게 됐다. 첫째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나긴 했지만 건강하게 잘 자랐고, 이만큼 키웠으니 시선이 달라졌겠다는 생각도 있어 둘째 아이부터는 병원에 잘 갔다.

지 씨는 어릴 때부터 아이가 너무 좋았다. 특수학교에는 유치부부터 고등학생까지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쯤 되니 학교생활에 적응도 했고 스스로 앞가림은 할 수 있게 됐다. 3학년이 되면서부터 학교 유치부 아이들은 거의 지 씨가 돌보다시피 했다. 아이를 워낙 좋아하니까 학교 선생님들이 유아교육과를 가라고 할 정도였다.

“빨리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결혼하고 임신했을 때 그냥 좋았어요. 임신이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주변에서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너무 일찍 애 엄마가 돼서 안타깝다는 얘기를 하시긴 하셨죠. 가족들은 제가 행복하다면 괜찮다는 마음 반,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 반, 반반인 것 같아요.”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양가 모두 크게 반대는 없었지만, 지 씨의 아버지는 지 씨를 꼭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셨다. 지 씨는 대학을 어느 과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기 싫었다. 학교에서 안마 자격증을 따고 나와서 밥벌이는 할 수 있고,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하는 것은 할 수 있으니 안마를 직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수학교에서는 직업기능을 하나씩 수료한다. 청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제과제빵을 배우고 시각장애인들은 안마를 배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배우고, 2학년 땐 실습, 3학년 2학기부터는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아이들 방. 책상 밑에 넷째가 숨어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들 방. 책상 밑에 넷째가 숨어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길거리에서 아이가 ‘이게 뭐야?’ 묻지만, 대답을 못해주니까…”

아이가 넷이라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저희 아이들이 (엄마를) 막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아니에요”라면서, 오히려 지 씨가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해 미안한 것들을 이야기 한다. 아이들 영양을 생각해 생선 음식을 해줘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인 지 씨는 생선 가시 바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먹다가 가시가 나와도 큰 애들은 “뱉어” 하면 스스로 가시를 뱉는데, 아이들이 세 살쯤 클 때까지 생선류는 못해줬다.

지 씨가 완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나다 보니 그동안 훈련을 통해 극복한 부분도 많다. 지 씨는 잔존시력이 있어 버스는 타기 어렵지만 지하철은 탈 수 있다. 자주 가는 길은 거의 외워서 간다. 시력 관리가 중요한데, 제일 좋은 관리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 안 보기. 그렇게 관리해도 피곤한 날은 안압이 먼저 오른다. 어디서든 눈을 붙이고 있어야 하는데, 지 씨는 눈만 안 보면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기가 어려워서 지하철 노약자석에라도 앉을라치면 눈치를 많이 받는다.   

지 씨는 3년 전부터 안마 일을 시작했다. ‘안마헬스키퍼’라고, 서울의 한 IT 회사에서 직원 복지 차원으로 운영되는 시간별 안마서비스다. 하루 4시간 주 2~3일 근무하고, 출근하는 날에는 활동보조인이 와서 청소, 장보기, 저녁 준비 등 집안일을 도와준다. 한 달에 154시간.

지 씨는 주말이면 애들이랑 공연도 보러 가고 놀러도 나가려고 하는 편이다. 지 씨는 못 봐도 애들은 보이니까 다양한 걸 알게 해주고 싶다.

“길거리 다니면서 ‘엄마, 이거 뭐야?’ 하고 많이 물어보는데 바로 대답을 못해주니까 그런 게 조금 아쉽더라고요. 그런 충족감을 아이들한테 줄 수가 없으니까….”

지 씨는 말끝을 흐렸다.

큰아이는 초등학생. 아래로 세 명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첫 아이는 말이라도 배우면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네 살까지 집에서 키웠다. 둘째부터는 아이가 많아져서 힘도 들었고, 어린이집에서는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까지 잘 챙겨줘서 돌 지나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솔직히 (아이 친구) 엄마들이랑 만나는 건 꺼려져요. 여기 엄마들이 뭉치는 걸 좋아해서 엄마들 반 모임을 한 번씩 하는데, 저는 지하철 아니면 이동이 힘들어요. 또 다 같은 부모 입장으로 만나는데 민폐 끼칠까봐 안 간 것 반, 못 간 것 반이에요. 공개수업에는 출근하는 날이랑 겹쳐서 아직 못 가봤어요.”

둘째, 셋째 아이가 태권도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 지 씨는 아이들을 데리러 태권도 도장 앞에 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둘째, 셋째 아이가 태권도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 지 씨는 아이들을 데리러 태권도 도장 앞에 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눈 무서워 좀비 같아’ 그러면 ‘아파서 그래’ 한마디만 해줬으면”

“큰아이랑 저랑 나가면 눈이 특이하니까 사람들이 쳐다봐요. 어떤 아이가 ‘눈 무서워, 좀비 같아’ 하면 엄마들이 ‘쉿, 조용히 해!’라고 말해요. 그럴 때 ‘그냥 아파서 그래’라고 한마디라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호기심이 풀릴 때까지 말하잖아요. 엄마들은 아이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윽박을 질러요. 저희 아이와 같이 커가야 하는 아이들이잖아요. 저희 아이가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기 위해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이 넷을 독박육아 하면서도 지 씨는 육아가 힘들진 않다. 다만 엄마로서 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다. 지 씨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없다. 아이는 같이 그림책을 보고 얘기하길 원하는데, 지 씨가 글씨를 읽으려면 바로 눈앞에 갖다 대고 봐야 겨우 볼 수 있으니 아이랑 같이 볼 수가 없다.

지 씨는 가장 필요한 게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한 복지관으로부터 아이들의 언어지원 서비스를 받았다. 아이들의 독서활동을 도와주는 것이었는데 2016년 10월부터 이용하다가 올해 3월에 끊겼다. 20만 원 남짓 하는 이용 비용을, 추가비용 2~6만 원 정도만 지 씨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복지관과 시에서 내줬는데 시가 예산 문제로 바우처를 중단했다. 이제 누구도 책을 읽어줄 사람이 없게 됐다.

“큰아이는 시각장애아라 말하는 데 이상이 없어서 언어치료보다는 책 읽어주는 언어지원 서비스를 희망했어요. 그런데 장애등급이 있으니 무조건 언어치료를 받으라고 해서 황당했어요. 언어치료는 지적장애아나 뇌병변 아이들이 언어가 어눌하니까 받는 것인데, 저희 아이에게 필요 없는 언어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선을 그어버리니까….”

지 씨는 지원이 지적장애 아동 위주이고, 특수학교도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같이 가진 아동이 많다보니 시각장애아는 통합반을 시킬 정도로 많지 않다고 했다. 장애마다 특성이 있는데 다 지적장애 쪽으로 치부해 지 씨 큰아이에게 필요한 서비스는 거의 제공되지 않는다는 게 지 씨의 설명이다.

집으로 가는 길. 둘째, 셋째, 넷째 아이는 잠시도 쉴새 없이 장난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집으로 가는 길. 둘째, 셋째, 넷째 아이는 잠시도 쉴새 없이 장난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학교나 어린이집 교사들이 장애인 부모를 이해하는 게 필요해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친구들이 ‘네 눈 좀비 같아’ 하고 놀리니까, ‘엄마 나는 눈이 언제까지 아파야 돼?’라고 물은 적도 있었어요…. 특히, 학교나 어린이집 교사들이 장애를 하나로 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장애 특성이 다양한데, 제일 많은 게 지체장애나 지적장애니까 그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세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첫 상담을 갔는데 “(학급에) 아이가 한두 명도 아니고 20명이 넘는데 ○○이만 적극적으로 봐드릴 수는 없어요”라고 해서 2학기 땐 상담을 안 갔다. 2학년 1학기 때 상담을 갔더니 “제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요?” 하고 먼저 물어와서 정말 감사했다. 아이는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사들이 아동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 부모를 이해하는 게 필요해요. 특수아동을 대하는 것만큼 장애인 부모를 대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인 부모에게 작성할 서류를 오늘 던져주고 내일까지 가져오라고 하는 경우다. 지 씨는 활동보조인이 있어야 서류 작성이 가능하다. 활동보조인과 시간을 맞춰야 해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그런 배려는 없다는 것이다.

지 씨네는 매달 장애연금 27만 원씩 54만 원과 주거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온다. 큰아이 앞으로 매달 10만 원씩 장애아동수당이 있다. 지 씨는 "제일 힘든 건 주거안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임대주택 하나 얻어 들어가라고 해요. 시각장애인들은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는데 임대주택은 지하철역과 거리가 멀어요. 복지콜이 안 잡히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임대주택 얻어서 들어가는 것보다 택시비가 더 많이 들어가니 임대주택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목돈 자립자금 마련을 지원하는 희망키움 통장을 들라고도 한다. 하지만 목돈을 만들어 그게 재산으로 간주돼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떨어지면 지원이 없어진다. 집에 보증금이 들어가면 수급도 중단돼 버리니 월세로 다닐 수밖에 없다. 수급자가 안 되면 주거급여도 못 받고 아이들 혜택도 못 받고 생활이 힘들어지니 수급자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돌봄서비스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시각장애인인 지 씨 입장에서는 누구를 집에 들이는 게 쉽지 않다.

“누군가가 도와주러 오시면 주방에 손을 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살림을 둘이 하는 것인데 저는 물건 위치가 바뀌면 힘들기 때문에 누구를 부르기도 그렇고… 그래서 한 번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어요.”

네 아이가 뭉쳤다. 신난 누나 셋과 달리 넷째는 책상 위가 무서워 마음껏 웃지 못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네 아이가 뭉쳤다. 신난 누나 셋과 달리 넷째는 책상 위가 무서워 마음껏 웃지 못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 씨가 아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건 뭘까.

“가장 해주고 싶은 건, 소소하게 아이들이랑 앉아 책을 읽어주는 거예요. 가족여행은 오래는 못 가죠. 오래 가려면 차를 끌고 가야 하는데 둘 다 운전을 못하니까요. 차 없이 긴 여행은 힘들고 박물관이나 놀이시설에 종종 가는 편이에요.”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지 씨. 아이들의 대견하고도 안쓰러운 마음을 걱정하는 지 씨는 한 가지 바람을 더했다. 

“아이들 심리검사를 주기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애부모를 둔) 아이들이 많이 성숙하고 위축되는 게 있어요. 둘째 아이만 해도 이제 겨우 일곱 살인데 철이 빨리 들어서 제 눈이 돼주려고 하는 게 많이 보여요. ‘내가 당연히 언니, 엄마, 아빠를 챙겨야 돼’ 하는 마음이 있어요. 일곱 살이면 마냥 아이여야 하는데 대견하고 고마우면서도 응석부려야 할 나이에 안쓰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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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 2018-09-25 23:11:06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게 정부에서 세심하게 봐주시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lsy1**** 2018-09-21 21:50:04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해 보이네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