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지금도 늦었다는 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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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지금도 늦었다는 말에 대하여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9.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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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학습지 권유하는 사회

무더위가 가시고 나자, 유치원 등원 시각 즈음 학습지 선생님들이 아파트 단지 앞에 나온다. 전단지를 내밀면서 말을 건다. 지금까지 서너 번, 만나는 사람은 달라도 대화 패턴은 유사하다.

우선 아이들이 몇 살이냐고 물어본다. 연이가 일곱 살이라고 대답을 하면 한글을 다 떼었냐고 이어 묻는다. 어느 정도 한글을 익혀가고 있다고 얘기하면 다음 말을 찾는 동안 눈빛이 설핏 조심스럽다. 아마도 “한글 때문에 속상해요”, “안 그래도 힘들어 하고 있어요” 이런 류의 반응을 기대했으리라.

이번엔 윤우에게 시선이 간다. “동생은 몇 살? 한글은?” 같은 질문을 한다. 당연히 윤우는 아직 한글을 모른다. 학습지 선생님은 모른다는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 조금씩 건드려주는 게 좋아요"라는 말을 꺼낸다. 그리고 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점검하고 가면 연이에게도 좋다고 얘기한다.

부족한 걸 채운다는 말에 솔깃해진다. 학교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모래밭에서 금을 찾아오라고 해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취학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 마음은 비슷할 터이다.

“체험수업 신청해보세요”라는 권유에 반 박자 늦게 반응을 한다. 아직은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부족한 걸 채우러 학교에 가는 건데 부족한 걸 채워서 학교에 가면 어떡하나, 하는 원론적인 생각이 성급한 엄마를 가로막아선다. 현실과 원론, 복잡계가 작동하면 으레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얼떨떨한 사람이 되고 만다.

◇ 조금씩 빨라지는 배움의 속도

지난 주말 연이가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그림일기를 갖고 왔다. 연이는 토요일 날 문화센터에서 벨리댄스 수업을 한 걸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일기라니, 왠지 그럴 듯하게 성장한 연이가 대견해서 첫 그림일기를 가족들에게 보여줬다.

그걸 본 친정엄마가 “벌써 연이가 이렇게 글자를 잘 쓰냐”고 놀라신다. 자랑처럼 엄마에게 “요즘 애들 빨라요” 그랬더니, 엄마가 재미있다는 듯 “나도 너희들(나는 삼 남매 중 맏이다)이 빠르다 빠르다 하면서 키웠는데~” 하신다.

연이가 그린 첫 그림일기. 연이는 별다른 사교육 없이 한글을 익혀가고 있다. 모르는 글자는 엄마에게 물어물어 완성했다. ⓒ신은률
연이가 그린 첫 그림일기. 연이는 별다른 사교육 없이 한글을 익혀가고 있다. 모르는 글자는 엄마에게 물어물어 완성했다. ⓒ신은률

내 기준에 내가 크는 속도가 정속이었는데 엄마에게는 빠른 속도였구나. 마찬가지로 연이는 연이한테 맞는 속도로 크고 있는데 내 눈에만 빠른 것일 수 있겠구나.

세대를 거쳐 조금씩 조금씩 배움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거라면 내가 초등학교 때 잠시 했던 학습지를 요즘은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빠른 일도 아닐 것이다. 하긴, 요즘은 돌잡이를 위한 놀이식 학습지도 있지! 빨라진 속도에 적응해야 하는 건 연이가 아니라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 빠른 건 얼마나 좋은 걸까

“지금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면 다행이에요.”

확신에 찬 선생님의 목소리가 얼떨떨한 얼굴로 돌아서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 구역 팀장이라는 선생님의 한마디. 태도에 이미 많은 게 배어 있는, 베테랑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전 학습지를 시작한, 연이 친구의 엄마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지금, 정말 늦은 걸까?’ 하는 생각이 바람결에 지나갔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작가 목수정은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생각정원, 2018년)라는 책에서, 프랑스는 미리 공부하는 걸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각 학년에는 정해진 발달 과정이 있고 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게 마련이다.

또래보다 빠른 아이가 있다면 월반을 권하기도 하는데, 우리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도 월반이 좋겠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의 ‘빠른 속도’로 인해 알게 모르게 휩쓸리게 될 보통의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월반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빠른 것보다 깊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담임 선생님은 그가 가진 재량으로 그 세대에게 주어진 ‘배움의 정속도’를 지켜 나간다. 프랑스 교육 현장이라고 모든 것이 다 좋지만은 않겠지만 알파벳도, 구구단도 3년 동안 ‘가지고 놀며 배운다’고 하니, 그 여유로운 속도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느껴질까 싶어 부러워졌다.

요즘 학교 수업 때, 이미 학교 밖에서 다 배우고 왔다고 생각하고 진도를 나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어느 곳보다 ‘빠름’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면, 여유롭고 친절한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지금 늦었다’고 쉽게 겁을 먹는 건 다분히 한국적인 정서겠지만, 여기 발붙여 살면서 그 정서에 너무 가까워도 걱정, 너무 멀어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미리 걱정하는 건 무용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부족한 걸 채우고 싶다는 조바심 속에는 학교에서 겪게 될 불친절함에 대한 걱정이 팔 할이 아닐까 한다.

어른들의 애틋한 걱정으로 인해 해를 거듭할수록 배움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 점점 더 아이들은 잰걸음을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우리 아이들은 항상 무언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키워지는 게 아닐까.

유치원에서 활동하는 연이. ⓒ신은률
유치원에서 활동하는 연이. ⓒ신은률

「엄마 내공」(오소희, 북하우스, 2017년)이라는 책에서 말하듯, 사교육은, ‘그냥 내내 달고 살아야 하는 일상’이 아니라 ‘필요할 때 받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만의 효용성이 분명 있을 학습지를 두고 생각의 길을 빙빙 돌아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걸 보면, 선행으로 시작한 학습지가 ‘일상’이 되기 가장 쉬운 사교육이라고 여기는구나, 조용히 나에 대해 깨닫게 된다.

여행이라는 '산교육'으로 아들을 키운 「엄마 내공」의 작가 오소희의 조언처럼 “네가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으니 언제든 도움을 요청해. 기다릴게.”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걸로 연이의 속도를 당분간 정해보기로 한다. 설령 지금 ‘무엇’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어느 때, 어느 장소든, 배움의 속도가 연이에게 친절하기를, 그 속도에 연이가 쫓기지 않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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