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을 대하는 태도, 한국은 "설마" 미국은 "혹시"
허리케인을 대하는 태도, 한국은 "설마" 미국은 "혹시"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8.09.17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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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유학생 엄마의 육아이야기
내다보기도 힘든 창 밖: 허리케인 플로렌스의 영향으로 강한 비가 내리고 있다.
내다보기도 힘든 창 밖. 허리케인 플로렌스의 영향으로 강한 비가 내리고 있다. ⓒ이은

나는 오늘 이 칼럼을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상륙한 직후에 쓰기 시작했다. 바깥에는 바로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비가 퍼붓고 있고, 근처의 나무는 금방이라도 뿌리가 뽑힐 듯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다. 다행히 전기는 아직“은” 끊기지 않았고, 지난주부터 여러 곳에서 권고한 대로 집에는 미리 사둔 생수와 배터리, 통조림과 같은 비상식량이 준비되어 있다.

지난 주말부터 마트의 생수 칸과 빵을 파는 매대와 통조림 매대는 거의 비어 있었으나, 다행히 지속적으로 새 물건이 들어왔다. 허리케인 관련 대비 공고가 열흘 전 정도부터 꾸준히 반복됐기 때문에 해변에서 내륙 쪽으로 세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조용하게 대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학교는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휴교했고, 남편의 직장도 수요일 저녁부터 다음 주 초까지는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해왔다. 지역방송은 물론이고 커뮤니티센터와 아이의 학교에서도 안전 관련 수칙에 관련한 이메일과 텍스트가 반복해서 왔다. 그래서 나는 오늘 미국의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빠가 아직 완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비정규직인 탓에 큰아이는 프리스쿨 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짧은 기간 동안 각기 다른 곳에서 살면서도 어느 곳에 있든 다르지 않다고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높은 안전의식이다.

혹자는 미국의 총기사고와 같은 것들을 예를 들어 반론을 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개인적으로 자연재해나 기타 안전사고에 있어서는 미국의 안전의식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느꼈다.

아이가 기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는 안전수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아이가 다니던 공립 프리스쿨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화재대피 훈련을 하곤 했다. 안전 수칙은 커리큘럼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요소였기에 아이들 스스로 교실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법을 토론하고 자신들만의 규칙을 정하는 것을 학기마다 강조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평소에는 한없이 인자한 느낌의 등원·등교 지도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차도에 가깝게 걷는다거나 여러 아이들이 있는 길에서 뛴다거나 하면 한국 엄마인 내가 보기에는 좀 지나칠 정도로 제지하고 반복해서 훈육한다는 점이었다.

한번은 한 아이가 학교 앞 보도블록에서 아이들이 등교하는 차를 세워두는 차도에 가깝게 붙어서 걷자, 선생님이 달려와서 아이에게 안쪽으로 걷게 지도하고는 한참 동안 안전 교육을 하셨다. 자가용 차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내리는 곳이라 차의 속도가 거의 0에 가까웠는데도, 평소에는 늘 생글생글 웃으시던 선생님의 표정은 아주 진지하고 심각해보였다.

◇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내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데 중요한 것

허리케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확실히 한국에서 느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진지해 보인다. 한 번도 허리케인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어본 적이 없었다는 같은 학교 학부모조차, “설마…” 하면서 준비할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에게 “혹시라도…”를 강조하면서 구급상자와 배터리로 작동되는 라디오를 미리 구비해 놓을 것을 거듭해서 추천해주었다.

커뮤니티의 행사와 아이의 방과후 활동도 혹시 만약에라도 있을 수 있는 안전사고를 대비해서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아직 허리케인이 본격적으로 상륙하지도 않은 지난 목요일부터 모든 일정이 변경되자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하면 행사를 진행하는 기관도 수업을 준비한 선생님들도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른 학부모의 반응들은 나와는 상반됐다.

모두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행사에 참여하러 오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 사람의 안전을 생각하면 허리케인이 아직 상륙하지 않았어도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옳고, 인근 지역 사람들 역시 미리 허리케인에 대비하고 집 안에 안전하게 머무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는 것이다.

“설마…”라는 태도보다는 “만일을 위해서라도…”라는 태도가 당장은 불편하고 손해보는 것 같더라도 나의 안전과 내 아이, 내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데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기반은 지역 사회와 기관, 직장과 정부의 지지와 지원일 것이다. 아이의 학교가 변경 없이 수업을 강행했거나, 특히 남편의 직장이 평소대로 계속 일을 했다면 나는 허리케인에 대비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엄마, 돌고래야, 돌고래!”

아이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해서 밖을 내다보니 창문 밖으로 어디서 온 것인지 짐작조차 안 되는 돌고래 모양의 거대한 튜브가 날아가고 있다. 아이는 고래가 나타났다며 신나서 콩콩 뛰고 있다. 돌고래는 우리 집 주방 창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춤을 추다가 한참 있더니, 다시 휙 바람에 휩쓸려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본의 아닌 휴가를 얻은 남편은 다시 아이와 레고놀이를 하러 가고 나는 혹시라도 모를 침수에 대비해서 중요한 책들을 높은 곳으로 옮기러 간다. 바람 소리는 세차고 내리는 비는 점점 굵어져 창문을 두드린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이것만큼 내 마음이 안전할 수 있는 때가 어디 있으랴.

그저 이 허리케인이 조용히 머물다 지나가길 바란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다치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이 없도록….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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