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지난 2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일이 생각난다. 다양한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소개해주는 시간. 그 중에는 동물체험이라는 이색 프로그램도 있었다. 사파리 모자를 쓴 동물체험 전문가라는 사람은 두툼한 담요가 덮어진 하얀 플라스틱 통을 들고 부모 앞에 나왔다. 담요를 걷어내고 플라스틱 통에서 토끼와 거북이를 차례차례 꺼내놓았다. 토끼와 거북이는 동화책에서나 접할 수 있는 조화다. 실제로 토끼와 거북이가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거북이는 차디찬 교실 맨 바닥에, 토끼는 작은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거북이는 등껍질 일부가 벗겨졌는지 파여 있었다.
“아이들이 다양한 동물을 경험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도록 하는 체험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인기가 아주 많아요.”
동화책 주인공들의 등장에 아이들은 신기한 듯 만지려고 난리가 났다. 곳곳에서는 이 모습을 추억에 담을 사진 촬영도 진행됐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에 놀란 걸까? 거북이는 바닥에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당황한 동물체험 전문가라는 사람은 급히 플라스틱 통에 거북이를 담았다. 그리고 그 거북이 등껍질 위에 하얀 토끼를 올린 뒤 담요를 덮어 자리를 떠나는 게 아닌가?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졌다. 들어보니 실제 동물체험 중에는 토끼와 거북이를 데리고 경주도 한단다. 어찌 이런 일이.
이런 황당한 동물체험이 전국의 어린이집이나 교육기관에서 ‘이동동물원’, ‘미니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다. 동물 종류만 해도 다양하다. 앵무새, 염소, 돼지, 너구리, 꽃사슴, 사막여우, 미어캣, 전갈, 스컹크, 뱀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동물이 아이들 바로 앞으로 총출동한단다. 얼마 전 세종시에 사는 친구는 전갈을 만지는 아이 사진을 받았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미세먼지나 황사를 이유로 어린이집 야외활동에도 제약이 생기면서 야외동물원을 가는 대신, 찾아오는 동물 서비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딱 한번 아이와 동물원에 갔다가 우리에 갇혀 괴로워하는 곰을 본 뒤 동물원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어린이집에도 미니동물원이 열린다니... 남편과 나는 다짐의 연장선으로 동물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시키지 않기로 했다. 어린이집 월간계획안을 통해 동물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날에는 아예 아이를 등원시키지 않겠다고 어린이집에 미리 말했다. (아이는 딱 한번, 부모의 동의 없이 동물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어린이집은 갑자기 프로그램 일정이 바뀌어 예고 없이 동물체험을 하게 됐다며, 알림장으로 염소를 만지는 아이 사진을 보내왔다. 하아.)
동물체험 프로그램에 거부감이 든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아이의 안전 때문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나이가 고작 3살, 많게는 7살이다. 그 아이들이 동물을 만진다고 생각해보자. 동물체험 전문가라는 사람(솔직히 토끼와 거북이를 한 통에 담아서 다니는 사람이 전문가인지 모르겠다.)의 지도하에 차례차례 만진다고 해도 힘 조절이 안 되는 아이들인지라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동물들이 어린이집 한곳에만 오겠는가? 다른 어린이집, 또 다른 어린이집에도 계속 돌아다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귀엽다”는 이유로 어루만지고 사진촬영을 할지 알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동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 스트레스를 우리 아이들에게 공격적으로 표출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어린이집 교사로 있는 한 지인은 동물체험 중 사막여우의 할큄을 당했다고 한다.
또 질병의 위험도 걱정이었다. 거북이는 살모넬라균(식중독의 원인이 된단다.)이 있다. 너구리는 옴 진드기와 같은 피부병이나, 심할 경우 광견병과 같은 인수공통질병을 갖고 있어 위험하단다. 새들은 매년 조류독감으로 말썽이다. 위험요소가 어마어마한 이런 동물들을 내 아이, 내 아이 친구들이 생활하는 밀폐된 교실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여럿이니 감염 위험도 높다. 아무리 동물들이 예방접종을 잘했다고 해도(그 많은 동물들이 받을만한 예방접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교실을 철저하게 소독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가 동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감’이라는 이유로 동물을 접하는 건 원치 않았다. 어린이집도, 업체도 동물체험을 “아이들과 동물이 교감하는 시간”으로 포장한다. 잠깐 동물을 쓰다듬고 알림장에 올리기 위해 기념촬영 하는 게 교감의 시간일까? 뱀을 목에 두르고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응원하는 게 교감의 시간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동물체험에 대한 거부감으로 곳곳의 이동동물원을 검색한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아이들이 투명 아크릴 박스 안에 갇힌 아기돼지를 관람하는 사진도 있었다. 아크릴 박스의 크기는 딱 아기돼지가 서 있는 크기, 좌우로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크기였다. 아이들이 동물의 몸 면면을 잘 살펴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다고, 직접 만져본다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니다. 과한 걱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혹시 아이가 동물을 장난감 다루듯 생각할까봐 걱정됐다.
지난달, 많은 사람들은 퓨마 ‘뽀롱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8년을 갇혀 지내다 겨우 4시간 30분을 자유롭게(이것도 동물원 안에서) 뛰어다녔던 퓨마. 그래서 죽었다. 많은 이들이 퓨마의 소식에 울었고 동물 복지에 대해 다시 성찰한다고 말했다. 이제,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모들도 같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 또한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 작은 우리 속에서 미쳐가는 동물들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저 신기하니까, 책에서 만난 동물을 실제 볼 수 있으니까, 그게 다였다. 잠깐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우리들의 욕심으로 야생 속에서 뛰어다녀야 할 동물을 평생 철창 안에 가둬두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었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늦지 않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가 어떻게 동물을 사랑해야 할지, 그러려면 부모인 내가,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고 싶다. 또 그 고민이 지속됐으면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먹어본다. 아이와 동물원에 가지 않겠다. 혹시라도 벌어질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의 이동동물원 동물체험에 내 아이를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부모들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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