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퀴즈를 좋아한다. 서바이벌 퀴즈쇼 어플리케이션도 깔아서 시간 날 때마다 함께 푼다. 둘이 같이 있는데 서로 할 말 없으면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시오” 같은 시답잖은 주제로 스무고개를 한다.
베이비뉴스에서 주최하는 '2018 유모차는 가고 싶다' 캠페인 가족축제 중 ‘아빠육아 골든벨’ 사전 참가자 모집 공고를 우연히 봤다. 안 나갈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있는 주제든 아니든 퀴즈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로 즐거운 일인데다가, 5등 상품이 카시트였다. 그렇잖아도 지금 쓰고 있는 바구니 카시트를 졸업할 때가 돼서 알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본인이 쌍둥이 육아에 엄청 열심히 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있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나와도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1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무조건 카시트를 받아오는 것을 목표로 우리의 모의고사가 시작됐다.
“오빠, 그럼 내가 문제 내볼게.”
“어어.”
“아동수당은 아이가 몇 살이 될 때까지 지급될까요?”
“정답! 스무 살?”
(말잇못)
◇ '크롱'을 아는 내 남편, 혹시 천재 아닐까?
아동수당을 스무 살까지 받는다고 대답해도 괜찮다. 실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의고사를 준비하며 문재인 정부의 출산·육아정책을 알아봤다. 각종 수당과 돌봄 정책들의 정확한 명칭과 지원 범위 같은 것들을 외웠다. 이유식을 시작하는 시기, 돌 전 아이에게 먹이면 안 되는 음식들 같은 육아상식도 대충 알지만 정확히 알기 위해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에서 득음한 소리꾼이라도 된 것처럼, 계룡산 어느 자락에서 삶의 진리를 깨우치고 득도한 도인이라도 된 것처럼, 삼십 년간 삼을 찾아다니다 “심봤드아!”를 외치는 심마니처럼, 남편은 네이버 검색창을 닫고 “아, 모든 준비는 끝났다!”라고 포효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사람 생각보다 천재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유모차는 가고 싶다' 가족축제가 열린 9월 30일. 서울광장에 들어서니 정말 많은 가족들이 모여서 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아기띠를 메거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빠들의 모습이 절반 이상이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도 딱 가을하늘 같아 다들 즐거워보였다.
그러나 아빠들의 표정은 즐거운 반면 사뭇 비장했다. 다들 '못해도 카시트는 타간다'는 심정으로 골든벨 대회에 임하는 것 같았다. 한국사 시험을 10분 앞둔 중2 소년이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듯 남편은 아빠들 사이에서 ‘아동수당 만 6세’ 같은 정보를 중얼중얼댔다.
“오빠, 그게 문제에 나올까?”
“나와, 100프로 나와. 내가 장담함.”
첫 번째 문제는 아내에게 쓰고 싶은 말을 20자 이내로 쓰는 것이었다. ‘거저 주는 문제인가 보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문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뽀로로 친구들 중 악어 캐릭터의 이름을 맞히라는 것이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쌍둥이들은 아직 뽀로로를 볼 시기가 아니다. 남편은 뽀로로는 알지만 뽀로로가 뭔지 제대로 모른다. 뽀로로가 펭귄인지 닭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남편이 탈락할 줄 알았는데 웬걸, 당당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3번 문제, 4번 문제도 당당히 맞혀나가는 남편의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카시트의 꿈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 거저 주는 문제라 생각했는데… '아빠 어디 가'라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짐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 애 둘에, 협찬사인 네이버쥬니어에서 준 참가상과 각종 부스를 돌며 받아온 아기 간식과 물티슈 같은 것들로 손이 모자랐다. 카시트? 카시트는 이름 모를 어느 아빠에게 돌아갔다. 남편은 뽀로로의 문턱을 넘었지만 ‘아빠 어디 가’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
매주 수요일 채널A에서 방영하는 아빠들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이름을 맞히는 문제였다. 보기로 ‘영웅본색’, ‘아빠 어디 가’, ‘아빠본색’이 제시됐다. 나는 또 ‘거저 주는 문제인가 보군’이라고 생각하며, 이 문제에서 남편이 '아빠 어디 가'를 선택하면 진짜 웃길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칠판을 내려놓고 슬금슬금 나오는 것이 아닌가….
패자부활전을 통해 다시 꿈을 꿨지만 남편은 카시트까지 딱 두 문제를 남겨놓고 탈락했다. 우리가 달달 외워갔던 문제는 아마 출제되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골든벨의 여운이 오래갔다. 카시트도 카시트인데 남편은 오답노트를 정리하는 수험생처럼 본인이 알고도 맞히지 못한 문제, 몰라서 못 맞힌 문제를 정리했다. 알려지지 않은 좋은 정책이 있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꼭 알아야 하는 정보들이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된 것 같다. 심지어 남편은 집에 놀러온 내 여동생에게 이런 말도 했다.
“처제, 결혼해서 아기 낳을 거야?”
“네. 낳아야죠.”
“그럼 내가 문제 하나 낼게.”
“(또 시작이네) 네.”
“저출산이라는 말 대신 요즘은 저XX 이라는 말을 쓴대. 그게 뭐게?”
“글쎄요?”
“나도 이걸 몰랐는데, 이번에 골든벨 가서 알았어.”
“모르겠어요. 뭔데요?”
“바로 정답은! '저출생'이라고 하는 거래. 저출산이라는 말은 저출산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떠넘기는 뭐 그런 게 있다고 하대?”
“아 그렇구나….”
사실 나는 바람이나 쐴 겸 다녀오려던 골든벨 대회가 남편에겐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 것 같다. 애들 카시트는 새 것 같은 중고를 저렴하게 구입했다.
참, 1번 문제의 답은 최근에 들었다.
“쌍둥이 기르느라 고생 많아. 사랑해.”
띄어쓰기와 문장부호 포함 딱 20자다. '한글과컴퓨터' 같은 남자 같으니라고.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서울 용산에서 남편과 함께 쌍둥이 형제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다. 출산 전 이런저런 잡지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요즘은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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