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실수에 '욱하는' 당신에게
아이의 실수에 '욱하는' 당신에게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8.10.16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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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혼이 나야 마땅할까

지난주, 화창한 날씨에 홀려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급하게 결정된 나들이였던 터라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나온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푸드코트부터 찾았다. 동물원 곳곳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푸드코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었고, 우리 옆 테이블 역시 어른 둘에 아이 둘, 한 가족이 식사 중이었다.

"너 뭐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쪽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한바탕 화를 내고 있었다. 아이에게 과자봉지를 주고 '잘 들고 먹으라고, 흘리지 말고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아이가 몽땅 쏟아버린 것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과자들을 아이는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엄마는 곁에서 혼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분노에 조금 더 가까워 보였다.

엄마는 "너는 먹을 자격이 없어! 됐어!" 하면서 빈 과자봉지를 뺏어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아이는 멍하니 서 있다 예상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조금 전까지 아이 손에 들려 있던 과자봉지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모습과 허무하게 텅 빈 아이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화가 난 엄마와 그 곁에서 울고 있는 아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엄마, 이건 실수예요. ⓒ김경옥
엄마, 이건 실수예요. ⓒ김경옥

어릴 적 밥을 먹다가 흘릴 때, 컵에 물을 담아 들고 오다가 왈칵 쏟을 때 나 역시 주로 혼이 났다. 심지어 문지방에 발이 걸려 넘어졌을 때에도 내가 괜찮은지 걱정하는 말보다 "어휴, 내가 방정 떨다가 저럴 줄 알았지!"라는 꾸중을 먼저 들었다. 물론 내가 어릴 적 방정을 좀 떨긴 했지만(그리고 그 방정 떠는 것은 여전하지만) 어른들에게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다.

실수로 물을 쏟을 때에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쩌지? 어른들에게 혼나겠다….'였다. '내가 부주의해서 이렇게 물을 쏟았구나, 빨리 닦아서 깨끗하게 만들어놔야지'라는 자기반성을 할 여유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을 한 바가지 쏟았는데도 혼나지 않았던 그 어느 날 나는 '와! 내가 이제 드디어 컸구나.'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일로 혼나지 않을 수 있음에 기뻐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물론 실수하는 횟수가 적어진 덕도 있지만, 내가 어릴 때와 똑같은 실수를 했을 때에도 혼나는 강도가 약해졌음은 분명했다.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내 앞에서 조카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조바심을 내며 3분을 기다렸다. 그러곤 기대가 만발한 얼굴로 컵라면의 뚜껑을 열어 한 젓가락 뜨려다가 그만 실수로 라면을 모두 쏟고 말았다. 그때 옆에 있던 그 아이의 삼촌이자 나의 남편이 날선 소리를 했다.

"너도 참 가지가지 한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꾸중'이 아니라 '위로'가 아닐까 생각하며 벌게진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기대를 품었던 그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너, 속상하겠다.

네 살인 나의 아이는 여물지 못한 손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실수를 한다. 그리고 어른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도 수많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여전히 흘리면서 밥을 먹기도 하고 부주의하게 팔을 움직이다가 커피를 쏟기도 한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헛디딜 때도 있고, 컵라면에 물을 붓다가도 흘리기 일쑤다. 여전히 실수투성이 어른인 것이다.

이런 실수 때문에 아이들이 혼나야 한다면, 여전히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나는, 우리 어른들은 과연 얼마나 혼이 나야 마땅할까.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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