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자 3명 폐강 직전인데 “가도 될까요?" 물었다
신청자 3명 폐강 직전인데 “가도 될까요?" 물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10.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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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독자와의 만남, '무모한 도전'이라 해도

가을학기 강의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4개월 전에 이야기된 강의였다. 그것도 내 책으로! 책 낸 지 1년... 부끄럽지만 독자와 무려 처음 만나는 자리다. 몇몇 저자는, 네임드(유명세)와 상관없이 책을 내고 꾸준히 독자들을 만났다. 나는 안 그랬다. 출판사나 남이 차려주는 밥상도 없었지만(엉엉),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가 그 밥상을 차릴 용기도 배포도 없었다. '나도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데...' 그저 마음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처음엔 사인하는 것도 어찌나 떨리던지. ⓒ최은경
처음엔 사인하는 것도 어찌나 떨리던지. ⓒ최은경

밖으로 내뱉지 않는 말은 아무도 모른다. 진짜 아무도 몰라줬다. 누굴 원망할 자격도 없다. 처음부터 책을 낸 출판사에 강의는 못한다고, 그거 빼고는 다 하겠다고 말한 나였다. 책을 내보니까 알겠더라. 말의 힘을.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도 팔 수 없다는 걸. 아무리 애써 만들어도 재고로 쌓일 수밖에 없다는 걸.

그래 맞다. 무명의 저자들은 대부분 다 그렇다. 너무 잘 알지만 나는 피해 가고 싶었다. 나는 빠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 책을 알리고, 팔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 말 대신 글을 쓰면서 독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다. 내가 하는 말을, 내 생각만큼 귀담아 들어줄 리 만무하다. 위안이라면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스테디셀러 정도는 되는 것 같다는, 출판사 편집자님의 말이다. 충분한 위로가 됐다. 그래서 계속 내 이름으로 글을 썼다. 그림책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대해. 그렇게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었다.

책이 나오고 한동안 대형서점에 놓인 책을 보러 갔다. 그 기쁨과 뿌듯함... 뭐라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최은경
책이 나오고 한동안 대형서점에 놓인 책을 보러 갔다. 그 기쁨과 뿌듯함... 뭐라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최은경

그랬으니 지난 6월 “작가님 책 이야기를 하시면 된다"는 말에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으로 뛴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다. 드디어 나도 독자를 만나는구나. 기회를 준 그분들께 감사했다. 그 사이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세 번 바뀔 즈음인 8월 말에 문자가 하나 왔다. ‘접수 인원이 적으면 폐강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의가 폐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난 9월 말 이번에는 "죄송하다"는 문자가 왔다. 이런저런 인사치레를 빼면 내용은 한 줄로 요약 가능했다.

‘접수인원이 3명이라, 아무래도 진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접수인원이 3명이라, 아무래도 진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몰랐다. 강의가 폐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Pixabay
‘접수인원이 3명이라, 아무래도 진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몰랐다. 강의가 폐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Pixabay

이쯤 되면 배경음악이라도 깔아야 할 판이다. 좌절과 비탄이 가득 담긴. 근데 그 짧은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청자가 3명이면, 적어도 5명은 온다는 건데... 그분들이 시간을 내서 오신다는데, 내가 가서 무슨 이야기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왜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강의를 하는 곳은 천안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 강의를 위해 하루 휴가를 내야 하고, 강의안도 준비해야 하고, 거리도 1시간 반이 넘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려는 분들이 오신다는데.

생각도 잠시, 결정 장애에 빠졌다(내가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도움이 필요했다. 잘 나가는 작가이자, 글보다 강의가 적성에 맞는 것 같은, 100명 앞에서도 강의를 척척 해낸 <소년의 레시피>의 저자 군산 언니, 배지영 작가에게 연락했다. 역시, 배 작가는 내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그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말해줬다. 더는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문화센터 담당자에게 즉시 문자를 보냈다.

‘접수 인원 3명이면 5명 정도는 오실 것 같은데 제가 한번 가서 강의를 하면 폐가 안 될까요? 취소 공지 하기도 번거로우실 테고... 그렇게 오시는 독자분들 꼭 만나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다. 준비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테니, 사실 취소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하늘이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보다.

“강사님만 괜찮으시면 저희도 괜찮아요. 더 홍보해서 인원 모집 더 하겠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내 인생 첫 ‘독자와의 만남’을 예정대로 하게 됐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거. 강의를 하기로 한 그날이 애들 학교 운동회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오 마이 갓. 둘째 입학 후 처음 하는 운동회인데... 게다가 남편은 그즈음 출장을 가게 될 수도 있다고 알려왔다. 사방이 지뢰밭이었다. 다행히 남편 출장은 20일로 정해졌지만, 운동회는 아니었다. 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헉, 엄마 강의 날이랑 같네. 어쩌지? 못 가겠네...”

나는 못 가도 아빠는 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들은 크게 서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5학년 큰아이는 엄마가 강의를 또 한다는 사실에 놀라며, 기뻐해주기까지 했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연재 '엄마가 한번 해봤어'의 영향이 컸다. 아이는 자신과 비슷한 엄마가 강의를 준비하고 실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성큼 자랐다. 발표를 할 때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아이였다. 발표하는 날이면 울면서 학교에 갔던 아이였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언젠가는 학교에서 5번이나 뽑혀서 계속 발표했다는 말도 할 만큼 좋아졌다. 기록의 힘이다. 

이제 정말 남은 건 그날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이다. 블로그나 카페, 온라인 서점 등에 올라온 책에 대한 독자 반응을 살펴보면서 강의안을 짜 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즐겁다. '내가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없는 재주를 한탄할 만큼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많아졌다. 그때 마침 읽은 운명적인 책이 있었으니 바로 박웅현의 「여덟 단어」다. 달변인 줄 알았던 그도 나 같은 때가 있었다니 깜짝 놀랐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하고 제 자신을 돌아봤더니, 너무 잘 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죠. 하지만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할 말을 하는 것'이었어요." - 59p.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때 가장 필요한 건, 마인드 컨트롤이다. 그거면 된다.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 실패든 성공이든 경험에서 배운다, 떨어도 괜찮다, 떨려도 괜찮다'... 이런 마음으로 내 글을, 독자들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보니 말하고 싶은,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할 주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할 말이 생겼다.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엄마들에게 꼭 필요한 그림책 육아’ 그 이야길 들려줄 참이다. 10월 19일,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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