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도 있어”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도 있어”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10.31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가 한번 해봤어] 끝내 만나지 못한 독자들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덴스토리, 2017년) 저자로 독자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전날,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소풍 가기 전날 같은 느낌이랄까. 수능 전날 같은 기분은 확실히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보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 컸으니까.

지난 19일, 강의 장소는 천안. 나는 수원역으로, 아이들과 남편은 학교로 갔다. 아이들은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미리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운동회는 처음인 둘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의하는 곳은 생각보다 크고 좋았다. 강의실 앞엔 ‘짬짬이 육아 특강’이라고도 적혀 있었다. 배정된 곳은 스무 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강의실이었다. 이것저것 점검하는데 어느새 오전 11시가 됐다. 11시 20분이 됐을 무렵, 강의 관계자가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말했다.

“강사님, 죄송해서 어쩌나요. 오시기로 한 분들이 안 오셔서 전화를 해보니 다들 못 오신다고.”

“아… 이거 제가 오히려 더 죄송하네요. 제가 한다고 해서 괜히…. 근데 진짜 아쉽네요. 준비 많이 했는데….”

신청자 수가 많지 않아서 폐강될 뻔한 강의였다(관련 글 : 신청자 3명 폐강 직전인데 “가도 될까요?" 물었다). 그걸 하겠다고 한 나였다(알고보니 무려 유료강의였다). 그러니 내가 더 죄송할 수밖에. "요즘 특강 참여율이 좋지 않아 폐강이 많이 된다"는 관계자의 말도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담당자도 나도 서로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준비를 많이 했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구나, 아니 진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마음이 어쩔 줄을 몰랐다. 관계자들과 어색한 인사를 뒤로 하고 건물을 나오는데, 어딘가 숨고 싶었다. '이런 날은, 좀 우울해도 되겠지' 생각했다. 그때,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운동회는 12시 반에 끝나고 알뜰시장은 1시부터 한대.”

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이렇게 된 거 아이들 운동회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때가 11시 반. 천안역에서 11시 40분 기차를 탔다. 뛰면서 기차표를 예약해 겨우 기차에 올랐다. 정신은 멍했다. 군포에서 수원, 수원에서 천안, 천안에서 다시 수원.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데 2시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오면 좋겠다... 20분을 기다렸지만
한 사람이라도 오면 좋겠다... 20분을 기다렸지만 ⓒ최은경

복잡한 감정을 비워내고 하나씩 정리해봤다. 내 첫 번째 '독자와의 만남'이라면서 오겠다는 후배를 끝까지 말리길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빈 강의실 안에 있는 내가 솔직히 좀 창피했다. 이게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내가 무명의 저자라 그런 것 같아서. 그때 내가 큰아이에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진아, 모든 일에는 배울 게 있어. 성공이든 실패든 경험에서 배우는 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실패할까봐, 뭔가 잘 되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아이에게 해준 말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은 독자와의 만남, 나는 뭘 배워야 할까. 핸드폰 메모장을 한참을 바라보다 한 자 한 자 적었다.

"오늘의 배움…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랬다. 나도 문화센터 관계자도 최선을 다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허탈한 마음은 그 마음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마음도 그 마음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었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어. 잘했어, 은경."

수원역에 내리자마자, 바통 터치하듯 지하철 1호선을 갈아타고 학교로 달려갔다. 교장 선생님이 운동회 폐회를 선언하는 순간, 운동장에 있는 큰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이가 활짝 웃었다. 그대로 둘째 교실로 내달렸다. 알뜰시장이 이미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둘째가 무척이나 기대했던 행사였다. 물건도 팔고, 원하는 걸 살 수 있다면서. 나를 발견한 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엄마 회사, 아니 강의하러 간댔잖아.”

“금방 끝나서 빨리 왔어.”

놀란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한 사람도 오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겠지만. 몇 주간을 '이날만 지나면…' 하고 손꼽았다. 그만큼 마음의 부담이 컸고, 잘하고 싶었다.

아침까지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너무 많이 오면 어떡하지?'라는 어깨뽕 들어간 상상도 해봤다. 이 시간만 지나면 시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다니…. 다시 아쉬운 생각이 흘러넘친다. 언제 또 할지 모르는 자리인데. 아쉽고 또 아쉬웠다. 남편이 말했다.

“잘하든 못하든 그게 아니라 준비할 걸 해보지도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더 크겠다.”

그랬다. 그래도 덕분에 아이들 운동회를 조금이나마 함께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큰아이가 ‘엄마 강의 잘 하고 왔냐’는 소리가 없다. 한편으로는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어렵게 먼저 말을 꺼냈다.

“진아, 엄마 오늘 '독자와의 만남' 한다고 했잖아.”

“아, 맞다. 엄마 잘 했어? 어땠어?”

“음…. 배운 게 많았어.”

“응? 뭘? 사람들 많이 왔어?”

“귓속말로 해도 돼?"

"응? 그래도 돼."

"(귓속말로) 사실… 한 명도 안 왔어.”

“진짜? 너무하다. 아….”

“속상하긴 했는데… 엄마가 배운 게 있어.”

“뭔데, 뭔데?”

“음… 그건 말이야…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거야. 처음엔 아무도 안 온 게 엄마 탓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엄마 잠도 안 자고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혹시 나에게 실망했으면 어쩌지?' 아이 눈치를 살폈지만 다행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외려 '그게 뭐, 어때서, 그럴 수도 있지' 쿨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조금은 민망하기도 했지만 굳이 말을 꺼낸 건 실패의 경험에서도 뭔가 배울 수 있다는 걸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맞아, 엄마. 운동회도 그렇잖아. (우리 반) 청팀이 이기긴 했지만 홍팀도 이기려고 최선을 다했을 거야. 그래도 진 거잖아. 홍팀처럼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도 있는 거지.”

“와... 진짜 그렇구나.”

이런 말을 하는 아이에게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더 구구절절 이야기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딸도 나처럼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실제로는 이겼지만) 마치 운동회에서 진 게 아쉬운 것처럼. 그때 훅 들어오는 딸의 한마디.

“그래도 엄마가 그 ppt 만든 건 아깝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래도 괜찮아. 다음 기회가 있을 거야. 다음에 그걸로 하면 되지.”

다음이라니. 나는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 말이 맞았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을 내가 아이에게 듣다니. 그리고 이 말 한마디가 그렇게 힘이 되다니. 깊은 위로가 되다니.

이날 배운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실패의 경험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말해줘야겠다. "괜찮다"고. 말로만 괜찮은 게 아니라, 실제로도 괜찮다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