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을 싸고 있었다. "우리 여행 가니까 거기서 읽고 싶은 책을 네가 한번 챙겨볼래?"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엄마, 이거 곰돌이 책!" "엄마 이것도!" "이거랑~" 하며 총 열한 권의 책을 가방 앞에 쌓아두었다. 아이는 그중 단 한 권도 포기할 수 없다며 모두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나의 옷가지를 빼고 아이가 챙겨놓은 책 전부를 가방에 눌러 담았다. 1년 전의 일이다.
책을 좋아하는, 책이 장난감인 아이를 보며 친정 엄마가 말했다. "너도 어렸을 때 저렇게 책을 참 좋아했어." 정녕 그렇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면 지금은 왜 이 모양인 건지' 엄마에게 되물었지만 엄마는 옛일을 아름답게 회상하실 뿐이었다.
연년생인 언니와 나는 어릴 적 나란히 엎드려 책을 잘 봤다고 한다. 책을 그렇게 '끼고 봤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책은 내 머리맡 베개에 종종 끼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난 단지 책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한 어른으로 자랐을 뿐이다. 도대체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의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 많은 아이들이 책을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책은 장난감 중 하나다. 하지만 언젠가 책이 장난감이 아닌 공부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아이들이 손에서 책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
3년간 방송을 같이 했던 한 작가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 글 쓰는 것을 배웠고, 라디오 작가가 됐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늘 책을 읽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책을 읽고 있으면 자신도 책 한 권을 골라와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고 한다. 아장아장 걸을 때에도, 이제 막 쫑알쫑알 말을 시작할 때에도, 머리가 커져 엄마의 말에 반박하던 청소년 시기에도 말이다. 같은 책을 엄마와 돌려 읽고 책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곤 했다는, 나로서는 몹시 생경한 일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나 보다.
"엄마, 여기 주인공은 이런 심리였나봐."
"그래?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주인공이 여자 친구를 만났을 때 말이지~ 어쩌고저쩌고."
그것이 엄마와 함께 노는 방법 중 하나였다고 한다.
1년 전만 해도 여행가방에 책을 꾸역꾸역 챙겨넣던 아이가 요즘에는 '책은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시원스럽게 말한다. 장남감만 한 보따리 챙기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부부는 대책회의를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책을 더 자주 읽자고.
읽고 싶은 책을 쌓아놓고 그중 한 권을 펼쳤다. 조금 전까지 '책 읽어줄까?' 물으면 '아니'라고 답하던 아이가 슬쩍 곁에 온다.
"엄마, 책 읽지 마."
"왜? 나는 책 읽고 싶은데?"
"그럼, 내 책 먼저 읽어줘."
"그래, 그럴까?"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좋아하는 성인으로 자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