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에게는 노동부가 없다"
"대한민국 여성에게는 노동부가 없다"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10.30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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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정치하는엄마가 만든 ‘2018 함께서울 정책박람회’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출산에 의한 경력단절은 성차별에 의한 부당해고다. 사직서는 내 손으로 썼지만, 사직할 마음은 없었다. 그만두라고 강압한 사람은 없었지만, 등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 사장님 대신 대한민국이 나를 잘랐다. 부당해고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데, 사람을 낳으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출산을 하면 일단 정신이 없다. 그렇게 48개월이 지나면 드디어 한숨을 돌리는데 이미 나의 노동은, 사회적 자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싸우자. 싸워야 한다. 싸우는 여성이 이긴다.”

발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장하나 공동대표는 이 글을 읽었다. 이어 장 공동대표는 대한민국 엄마가 처한 현실을 해결하려면 조직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2018 함께서울 정책박람회’를 열었다.

함께서울 정책박람회는 서울시 정책을 제안하고 논의하는 자리다. 분야별 정책 전문가들이 서울시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정책포럼’과 일상과 밀접한 주제를 바탕으로 인지도 있는 연사가 나서는 ‘정책토크’, 시민단체에서 공론화한 내용을 정책으로 발제하는 ‘시민 공론장’, 환경 정책을 즐거운 놀이와 체험으로 만나는 ‘정책놀이터’ 등으로 진행됐다.

정치하는엄마들은 27일에 열린 ‘정책포럼’의 여섯 번째 시간 ‘출산 후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대안 모색 : 성평등 노동 관점으로’를 맡아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 여성들의 경력단절 현황을 정치하는엄마들이 직접 전하고, 출산 후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치하는엄마들이 맡아 진행한 27일‘출산 후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대안 모색 : 성평등 노동 관점으로’에서 경력단절여성의 현실과 성별임금격차를 다룬 자료를 들고 발언하는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27일 ‘출산 후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대안 모색 : 성평등 노동 관점으로’에서 발언하는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 “직종별로 모성애 차이 있나… 몰래 아이 낳아 키우는 기분”

‘경력단절’의 주어는 ‘여성’뿐이다. 경력단절남성은 왜 없을까. 장 공동대표는 그 이유로 국회를 지적했다. “평균 연령 55.5세에 평균 재산 41억 원인 이들에게 엄마들의 노동권 문제를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 노동자의 44.6%는 아이를 낳고 ‘일하다 그만둔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서 확인된 이 수치는 경력단절이 ‘여건이 안 좋은 여성에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여성 둘 중 하나라면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으면 돈이 더 많이 드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관둬야 하는 현실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하다.

말뿐인 육아휴직제도도 대한민국의 엄마를 더 힘들게 한다. 공무원·국공립교사 엄마는 75%가 육아휴직을 쓴 반면 일반회사 근무자 중 육아휴직 사용자 비율은 34.5%뿐이고, 임시일용근로자는 1.9%뿐이다.

장 공동대표는 “공무원과 일반회사 종사자들이 모성애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닌데 이런 차이가 발생한다”며 “인권, 효율, 회사경영, 수익 등에 피해를 안 주는 방식으로 엄마들은 알아서 몰래 낳아서 키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산 후 여성의 노동권이 박탈되는 문제는 여성 전반에게 영향을 끼친다. 장 공동대표는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또 회사 일에 지장을 주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일반 회사에서는 (여성을) 안 뽑게 된다”며 “여성을 ‘잠재적 임산부’로 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혼 여부와 출산 가능성을 함께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도 바꿔나갈 것 중에 하나다. 한국은 비혼출산율이 1.9%로, OECD 가입국 중 비혼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OECD 평균이 41%고, 합례출산율 1.8 대를 기록하는 프랑스는 56.7%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결혼관계가 아닌 부모, 소위 ‘정상가족’이 아닌 관계에서 태어난다. 

장 공동대표는 “정부가 의지만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여성에게는 노동부가 없는 상황”이라며 “오명을 벗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해야 한다”고 변화를 촉구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27일 2018함께서울 정책박람회에서 ‘출산 후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대안 모색 : 성평등 노동 관점으로’를 맡아 진행했다.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정치하는엄마들은 27일 2018 함께서울 정책박람회에서 정책포럼 ‘출산 후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대안 모색 : 성평등 노동 관점으로’를 맡아 진행했다.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 오랜 저출산에 주 28시간 노동에 합의하고 24시간 보육 주장하는 독일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독일도 임신을 보는 시각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유럽 내부에서 굉장히 가부장제가 강하고 가족 중심, 가장 중심 국가”라고 말했다. 독일도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해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는 나라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독일은 일·생활 균형을 위해 여러 정책을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한 ‘시간제 근무’는 독일의 같은 제도를 모델로 한 것이다. 최근까지 독일은 엄마는 시간제 근로를, 아빠는 전일제 근로와 연장근로를 하는 가정을 모델로 삼았다. 독일도 한국처럼 여성이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 돌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8세 이상 40세 미만 그룹에서 무자녀 여성은 77%가 전일제 근무를 하는 반면, 유자녀 그룹은 그 비율이 22%로 떨어진다.

황 연구위원은 “여성이 재취업을 하더라도 월소득 350유로(약 45만 원) 미만 미니잡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독일에서도 경력단절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독일이 일·생활 균형을 위해 내놓은 네 가지 대책을 제시했다. 우선 ‘동일노동 또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다. 독일의 성별임금격차는 21% 정도로 유럽 내에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많은 여성이 시간제 노동을 하고 있고, 여성이 많은 산업은 임금도 낮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성별임금격차로 발생하는 문제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최저임금법을 제정했다. 2017년에는 임금 공개를 골자로 하는 공정임금법을 제정했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노동자 중심의 노동시간 유연화 등 현재 독일에서 논의 중인 노동정책을 소개했다.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노동자 중심의 노동시간 유연화 등 현재 독일에서 논의 중인 노동정책을 소개했다. 김재희 기자 ⓒ베이비뉴스

◇ "남성-여성 모두에게 육아 부담 없이 양질의 일자리 제공해야"

노동자 중심의 노동시간 유연화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노동을 하되, 노동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을 두고 시간주권이라 한다. 노동자가 시간주권을 가질 때 육아나 돌봄도 선택할 상황이 온다. 황 연구위원은 “노동자에게 자신의 업무장소뿐 아니라 일정, 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에게 부여하고 사용자는 합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2월 독일 금속노조(IG-Metall) 바덴뷔뎀베르그(Baden-Wurttemberg)지부와 남서금속산업 사용자연합은 주당 노동시간을 28시간으로 단축하는 단체협약에 합의했다. 동시에 노동을 더 원하는 노동자는 40시간까지 노동을 할 수 있게 했다.

황 연구위원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졌다”며 “육아 등으로 시간이 중요한 노동자에게 시간을 주고, 육아가 끝나 돈을 더 벌고 싶다고 하는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을 더 늘려서 소득을 보전할 수 있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공공보육의 전면적 확대가 있다. 황 연구위원은 독일에서 등장한 ‘24시간 보육’ 개념을 소개했다. 출장을 가거나 야근 근무를 하는 등 여러 가지 근로형태가 있기 때문에 24시간 공공보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출산이 여성에게 경제적 손실이든 경력단절이든 무슨 이유든지 간에 손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황 연구위원은 “가부장 제도가 견고하게 결합된 상황에서 외벌이 모델로는 가정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육아에 대한 부담 없이 삶과 일의 균형이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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