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개별성'을 볼 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의 '개별성'을 볼 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11.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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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나에게 와서 '꽃'이 된 연이

겨울을 바라보는 가을이 깊다. 자신의 일에 점점 흥미를 잃어버리는 듯 해는 매일 서둘러 자리를 뜬다. 해가 떠난 자리에는 오소소한 공기가 냉큼 와서 빈틈을 채운다. 무심한 찬바람에 거북이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나면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두 아이를 모두 겨울에 낳아서인지 아이가 없던 시절보다 겨울이 덜 춥고, 더 좋다. 지나간 유행가를 들으면 그 노래를 자주 듣던 시절이 자동 재생되듯 바람이 차가워질 때마다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기다리던 그때가 떠오른다. 잊지 말아야지 했던 태동의 느낌도 결국은 잊고 말았지만 ‘나의 겨울’은 아이 같은 얼굴로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러나 보기 좋은 눈이 함박 내리고 나면 질척거리고 미끄러운 길이 남는 것처럼 겨울의 찬바람과 긴 밤 앞에서 낭만은 힘이 없다. 종소리를 듣고 황급히 달려나가는 신데렐라 마냥 해가 넘어가면 얼른 집에 가야할 것 같은 시린 겨울밤. 차디찬 바람은 아이들 속으로 인정사정없이 들이칠 것이다. 엄마는 마음처럼 여유로울 수가 없다.

연이를 데리고 피아노 학원 문을 나서니 이른 시각인데도 사위가 어둑해진다.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좁은 통로, 들어올 때는 낮이었는데 장면이 바뀐 듯 나갈 때는 밤이다. 슬슬 적응이 되겠지만 아직은 이른 밤이 낯설다.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짙어진 도로로 들어가며, 밤에 쫓기듯 집으로 향한다.

시동 켤 때 함께 소리를 내기 시작한 라디오에서는 초로의 목소리가 그제처럼 어제처럼 흘러나온다. 바쁜 일과가 끝나고 반복이 주는 일상의 편안함에 한숨 돌리는 순간. “철수는 오늘, 전문가에 대해 생각한다”는,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삼십 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진정한 전문가’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어 말한다. “전문가는 단순히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상대의 개별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요.” 집으로 가는 짧은 길, ‘개별성’이란 말에 마음 어딘가의 현이 묵직하게 눌린다.

최연소 관람객, 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시는 도슨트 선생님. 전문가의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람미술관 'beyond thinking' 전. ⓒ신은률
최연소 관람객, 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시는 도슨트 선생님. 전문가의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람미술관 'beyond thinking' 전. ⓒ신은률

◇ 개별성, 과정을 지켜보는 일

개별성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사람 또는 어떤 상황이나 현상이 각각 따로 지니고 있는 특성”이다. ‘각각 따로 지니고 있는 특성’은 한데 뭉뚱그릴 수 없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남들과 달라서 성가신 것이지만 이해하고 인정하면 고유한 것이 된다.

‘뽑으려 하니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꽃이었다’는 말처럼 전문가는 각자의 특성이 이해되고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도록 돕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그게 무엇이든 잡초가 아니라 꽃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아이들은, 달라서 그만큼 특별한 존재들이다. 연이와 윤우가 다른 건 물론이고 불과 몇 분 차이를 두고 태어난 쌍둥이들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닮은 얼굴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이웃집 쌍둥이 아이들은 볼 때마다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지만 한 명은 매일 태권도 도복을 입고 다니고, 다른 한 명은 핑크빛 옷을 좋아한다. 하나씩 따져보지 않아도 그렇게 모든 것이 다 다르겠지만 단순하게라도 확인할 수 있는, 한날 같은 배에서 태어난 두 아이의 ‘각각 따로 지니고 있는’ 취향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데도 ‘진정한 전문가’의 자세가 필요하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우리는 아이를 관찰하고 파악한다. 그러면서 남들과 다른 내 아이만의 고유함을 발견한다. 개별성을 발견한다는 건 하나의 또렷한 무언가를 단숨에 찾는 게 아니라 실은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다.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건 우주를 품는 것과 같다’는 말의 뜻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단점이라 여기는 많은 특성들은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그만의 개별성인지도 모른다. 「강점 육아」(다온북스, 2017년)의 저자 윤옥희는 아이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서 보라고 조언한다.

부모가 ‘진정한 전문가’처럼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면 단점도 각각 특별한 것, 개별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느림은 신중함으로, 부끄러움은 섬세함으로, 건성인 듯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보다 그 속에서 아이의 관심사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이의 전문가’로서 나를 돌아본다. 연이의 개별성을 지켜보고 그에 맞게 대하고 있는가. 자랑할 것도 숨길 것도 없이 아이를 그 자체로 이해하고 있는가. 어떤 면을 꽃으로 보지 못하고 잡초처럼 뽑아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모두 고유하다는 걸 존중하고 품을 때 우리는 부모로서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 '나의 연이'의 고유함을 생각한다

고백하건대 연이의 ‘진정한 전문가’임을 포기했던 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연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많은 부분을 다듬어야 하는 잡초라고 여겼던, 엄마라는 이름의 서툰 어른. 연이와 나의 관계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을 의식했던 지난 시간을 거슬러 본다. 느린 연이를 재촉하는 대신 ‘연이답다’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 '정말로 한 우주를 온전히 품었구나' 싶어서 이제야 안도하게 된다.

‘나의 겨울’과 ‘나의 연이’의 고유함을 생각하게 되는 가을. 연이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가만가만 불러본다. 그 낮은 목소리에 엄마도 어딘가 치유되는 느낌이다. 나에게 와서 '꽃'이 된 연이. 연이와 함께 하는 일곱 번째 겨울은 더 따뜻하고 특별할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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