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린아, 이 그림 네 살 때 그린 거야? 다섯 살 때 그린 거야?”
“네 살 때요.”
“우와! 그걸 어떻게 기억해?”
“몰라요!”
어릴 적 그림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반응은 처음. 당황한 저는 얼른 화제를 바꿨습니다.
"수린아, 목련꽃 기억해? 봄에 목련 꽃잎으로 풍선 불었잖아.“
“….”
“목련 나뭇잎이 가을에 무슨 색이 되는지 알아?”
“….”
“노란 색이야. 은행잎보다 진한 노란 색. 황토색에 가까워. 우리 봄에 꽃 피웠던 목련 나무 보러갈까?”
“….”
“엄마는 수린이 덕분에 목련나무가 좋아졌는데, 수린이는 이제 관심 없구나?”
“….”
“은행나무 밑에서 뒹굴었던 거 기억나? 그때 수린이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 은행나무 싫어요!”
“은행나무가 싫다고?”
“냄새 나서 싫어요!”
“이 사진 좀 봐봐. 귀엽지 않아?”
“하나도 안 귀여운데….”
“아! 이제 생각났다! 네 살 때 자운서원에서 단풍잎 비 맞고 와서 ‘가을나무’ 그렸잖아. 그치?”
“….”
“한지를 잘라 붙이고…. 그러고 보니 단풍잎이 별 모양이네? 별을 좋아하는 수린이는 아름다운 건 죄다 별이 되나봐? 이거 좀 봐봐.”
“….”
“수린아, 무슨 일 있어?”
“머리는 텅 비고, 몸은 고민으로 가득 찼어요.”
아아…. 대화를 멈춰야 했습니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나듯, 이제 열 살 수린이는 입을 다물고 성장을 위한 준비의 시간을 맞이하나 봅니다. 올해, ‘딸그림 엄마글’을 쓰길 참 잘했습니다. 하마터면 어릴 적 그림 이야기를 못 들을 뻔했습니다. 겨울을 보낸 수린이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대하며 기다려야겠습니다.
*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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