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꼰대'의 언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꼰대'의 언어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11.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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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아이들의 세상을 우리는 모른다
삐죽 새어나오는 꼰대질을 숨길 수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베이비뉴스
삐죽 새어나오는 꼰대질을 숨길 수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베이비뉴스

아침부터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교복치마 때문이다.

세탁소에 교복치마를 맡겼다는 말을 할 때부터 수상했다. 보통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일은 엄마인 나에게 시키는 애가 언제 커서 혼자 세탁소를 가다니! 처음엔 그저 기특하고 신기했는데, 아뿔싸!

아침에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바람같이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가는 아이를 붙잡아 세웠다. 치마 길이며 너비가 눈에 띄게 줄어 있다. 아침 댓바람부터 치마를 좀 내리라고 붙들고 당겨보는 엄마와 하나도 짧지 않다는 딸래미와의 실랑이가 시작된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옆 테이블에 이제 막 스물이나 되었을까? 젊은 친구들이 앉아 왁자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남자 둘 여자 둘이었는데, 취하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한 여자아이(내 눈에는 ‘아이’로 보였으니)가 몸을 휘청이며 밖으로 나갔다. 나도 화장실에 다녀올 겸 해서 따라 나갔다. 화장실에 들어간 ‘아이’가 영 불안해보여 문 앞을 지키고 섰다. 그런데 나오는가 싶던 ‘아이’가 다시 들어가 먹은 것을 다 게워내기 시작했다. 등을 두드려주면서 내가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내가 딸 같아서 그래요”

그 ‘아이’는 날 보고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다음 날 아침밥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그러자 큰아이 하는 말이 대뜸 “헐, 꼰대!”란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딸 같아서 그래요"는 너무 나갔다.

페이스북에 이 일을 올렸는데 거기서도 반응들이 그랬다. "최고의 오지라퍼네요", "'감사합니다'로 돌아온 것이 다행입니다" 등. 나는 나의 숨길 수 없었던 ’꼰대질‘을 깊이 반성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 삐죽 새어나오는 꼰대질을 숨길 수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집에서야 ‘부모와 자식’처럼 위계질서가 분명하니 ‘훈계’라는 명목으로 이런 저런 삶의 경험에 빗댄 이야기를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서면 이십 대, 삼십 대 친구들이 어느덧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하니 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어울려야 하는데, 집에서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하다가는 바로 ‘꼰대’ 취급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가끔은 나이 사십 대에 어울리지도 않는 신조어를 써보기도 하지만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참 감성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청년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이제는 그들과 살아온 환경이, 그래서 감수성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처음 생각을 했다. 그 이후부터 내 나이를 자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도저히 나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 시작은 “나는 그들을 모른다”부터이지 않을까. 또한 그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부분은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것까지 받아들여야 한다.('좋은 세상을 물려주려고 십수 년간 세상과 싸웠으나 나는 여기까지이다'라는 것도 인정해야 할 듯.)

다른 하나는, 나는 겪지 않았던 지금 시대의 어려움이 그들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꼰대질’, 우리 때는 어려움도 잘 이겨냈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해빠졌다는 ‘꼰대질’, 청년실업은 요즘 애들이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해서 생기는 문제라는 ‘꼰대질’, 요즘 여자들이 살판났다는 ‘꼰대질’을 입 밖으로 내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듣기 싫었던 말을 나는 또 저들에게 반복해서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레 나는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한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왜 세상은 이만큼밖에 바뀌지 않았나. 우리 아이들이, ‘요즘 애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해보려고 거리를 그렇게 많이 뛰어다녔는데, 왜 요즘 아이들은 꿈이 사라지고, 대학의 낭만도 사라지고, 노량진 학원가에만 아이들이 넘쳐나는, 초등학생들의 꿈이 건물주인 그런 세상밖에 물려주지 못했는가.

우리 때는 당연한 행복으로 여겼던 결혼과 나의 2세에 대한 설렘을 왜 ‘요즘 애들’은 미련 없이 포기하도록 만들었는가. 왜 내 아이가 짧은 치마를 입으면 ‘예쁘다’는 생각보다 ‘몰카와 범죄를 조심하라’는 말부터 나오도록, 왜 그런 세상밖에 이루지 못한 건지.

요즘 애들에게, 요즘 청춘들에게 꼰대질 하지 말라. 그 아이들의 삶은 충분히 고달프고, 그 아이들이 이후 감당해야 하는 세상은 우리보다 충분히 어려우니까.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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