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올해 여름. 살인적인 무더위가 늦여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과연 이 더위가 끝나긴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랬던 날씨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지더니 어느새 가을이 왔습니다.
청명하고 맑은 가을을 맞아 그동안 미뤄뒀던 가족여행도 주말마다 부쩍 다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은 계절이 있구나라고 감사하며 말이죠. 무더위에 지쳐서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만 주로 있었던 아이들도 모처럼 자연의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뛰어놀았습니다. 산과 바다로 부지런히 다니며 아이들에게 자연의 맛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날씨를 보면 다시 우울해집니다. 바로 미세먼지 덕분이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세먼지 어플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더웠지만 깨끗한 공기 덕분에 몇 달 동안 구석에 방치되었던 어플이 다시 메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굳이 어플을 키지 않아도 창문 밖을 내다보면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가 예측이 됩니다.
회색빛으로 뒤덮인 바깥 풍경을 보면 '혹시 이건 상쾌한 아침 안개가 아닐까?'라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새벽의 기온차로 만들어진 이슬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해가 뜰수록 사라집니다. 해가 제법 올라와도 여전히 불투명한 회색빛 연기는 역시나 미세먼지였습니다.
아침 등원을 준비하면서 마지막에 꼭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아이들 얼굴에 씌웁니다. 마치 독가스가 나오는 전쟁터로 아이들을 내모는 기분마저 듭니다. 저도 처음에는 마스크 쓰고 외출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출 후에 목이 붓고 칼칼하면서 기침과 통증이 생긴 이후로는 꼭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합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우리 몸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직 면역체계가 약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입니다. 모두 아이들 건강을 위한 마음에서 하는 행동이지만 한편에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우리 세대가 잘못한 행동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모습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미래에는 물을 사 먹어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말에도 코웃음을 쳤었습니다. 그러니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과연 누가 했을까요? 미세먼지의 습격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30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동안 환경은 더욱 오염이 되었고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외출을 삼가고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모가 되었네요. 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맑은 공기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일주일에 몇 시간뿐인 야외 체육시간마저도 미세먼지로 인해 내부 활동으로 대체되는 현실이 미안합니다. 하원을 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주말에도 외출은커녕 하루 종일 집안이나 실내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답답한 미세먼지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그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소하지만 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모여서 결국 세상을 바꾸니까요.
모두 부모가 되고 나서 바뀐 생각들입니다.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 나아가서 다음 세대까지도 고민을 하게 됩니다. 개인, 개인의 노력은 비록 미흡할지라도 결국 그게 모여서 다수가 되면 우리 사회도 조금씩 달라지겠지요.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사회,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세상이 다시 만들어질 테니까요.
*칼럼니스트 노승후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TX조선, 셀트리온 등에서 주식, 외환 등을 담당했으며 지금은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5년째 두 딸을 키우며 전업 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일과 가정 모두를 경험해 본 아빠로서 강연, 방송, 칼럼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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