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제보에 일방 폐원…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비리 제보에 일방 폐원…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11.19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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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서울 광진구 A어린이집 비리 의혹 보도 뒷이야기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불이익을 감수한 용기 있는 제보자들의 증언 덕분에 서울 광진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발생한 비리 의혹을 세 차례 단독보도 할 수 있었다. ⓒ베이비뉴스
불이익을 감수한 용기 있는 제보자들의 증언 덕분에 서울 광진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발생한 비리 의혹을 세 차례 단독보도 할 수 있었다. ⓒ베이비뉴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15분쯤 늦었다. 오전 취재가 늦게 끝난 탓. ‘혹시라도 제보자가 마음을 바꿔 가버리면 어떡하나’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올랐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제보자는 검정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눌러쓴 채 입구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초조한 눈빛. 순간 눈이 딱 마주쳤다.

가쁜 숨을 고르며 가방에서 녹음기와 노트북을 꺼내는 기자에게 경계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기자는 처음 만나봐요.”

서울 광진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원장과 교사의 몸싸움’에 대해 전화로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의 주장은 '원장이 교사를 부당해고했고 교사가 해고예고수당을 요구하자 원장이 뺨을 때리는 등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것. 또한 그 뒤 원장은 교사의 개인정보가 담긴 임면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인신공격성 메시지와 함께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기사 : [단독] "CCTV 꺼!" 어린이집에서 원장-교사 몸싸움 논란

‘갑질’과 ‘블랙리스트’ 쪽으로 무게를 두고 일단 제보자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제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장은 다른 사람의 명의를 대여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본인은 교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교사 인건비 지원금을 부정수급받았다. 원장 명의를 대여해준 사람 역시 그곳에 교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실제로는 보조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상황.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사의 급여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페이백’, 시간연장아동 허위등록을 통한 부정수급 의혹도 있었다.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나오는 의혹은 충격적이었다. 동시에 너무 막막했다. 내용도 많았지만 제보자가 가진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확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폭행사건에서 부정수급 쪽으로 취재 방향을 전환했다. 제보자에게 부정수급과 관련해 증언해줄 사람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고 헤어졌다. 더 이상 취재 진행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린이집 교사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재취업도 어렵다. 불이익을 각오하고 내부고발을 하기란 쉽지 않다.

반쯤 포기하고 있던 차에 이틀 뒤 연락이 왔다.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잡고 증언해줄 분들을 만나, 일치하는 진술과 증거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해당기사 : [단독] 부정수급·페이백·명의대여… '논란'의 어린이집)

◇ 폭행사건에서 비리 의혹으로 바뀐 취재 방향

“지금 얼마나 바쁜 시간인데 아이들 돌보는 시간에 전화해 업무를 방해하시는 거예요. 자꾸 이렇게 전화하면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겠어요. 기사 쓰시면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습니다. 전화하지 마세요. 더 이상 질문에 답하지 않겠어요.”

명의대여와 부정수급 의혹에 대해 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두 번째로 전화한 상황. 원장은 목청껏 본인 말만 하고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 수화기를 쾅 내려놨다.

첫 통화에서 폭행사건에 대한 입장은 들었다. 원장은 몸싸움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고, ‘뺨을 때리지 않았다’, ‘부당해고가 아니다’, ‘원래 문제가 있는 교사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억울한 게 많다고 했다. 반박자료가 있다고 해서 보내달라고 했지만, 자료는 끝내 오지 않았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본인은 원장이 아니라 어린이집을 맡아서 운영하는 주임교사라고도 했다. 주임교사가 교사 면접과 채용도 하느냐고 묻자 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기자님, 다음 메인에서 제 기사 찾았어요. 대박 완전 신기합니다. 절 도와주시는 분들이 정말 아무도 없었는데 기자님 만난 건 제게 행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사합니다.”

처음 기자를 만나봤다던 제보자. 두 건의 기사가 나간 직후, 흥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로 나왔고, 억울함을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았다.

기자는 이슈를 쫓아다닌다. 그리고 대개 그 이슈는 즐겁고 기쁜 일보다, 불편하고 골치 아픈 일인 경우가 많다. 보통은, 살면서 기자를 만나는 일이 없으면 제일 좋을 거다. 그래도 제보자가 '처음 만난 기자'라고 하니 더 책임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취재 과정에서 페이백에 대한 통장 입출금 내역, 현금을 출금한 사진, 현금 출금 시간, 녹취, 문자메시지 등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확보해 확인했다. 문제는 기사에서 취재원이 누구인지 유추할 만한 내용은 모두 피해야 했다는 점이다. 취재원이 누구인지 드러나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들을 지키는 것이 특종보다 더 중요했다.

◇ 제보자 용기 퇴색 안 되려면 제도적 장치 절실

보도 다음 날,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원 운영을 더 이상 못하게 됐다고 연락했다. 지난 2일 학부모를 대상으로 폐원설명회를 열고 원아를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길 것을 요청했다. 급기야 9일 교사들에게 한 달 여유를 줄 테니 다른 곳(어린이집)을 알아보라고 통보했다. 폐원을 이유로 해고를 통보한 것.(☞ 해당기사 : [단독] 부정수급 논란 어린이집, 보도 후 일방 폐쇄 통보)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갑작스러운 폐원 통보에 당황스러워했다. 해당 구청에 문의한 결과, 원장이 원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원을 신청하려 했으나 부정수급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기 전이라 폐원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했다. 부정수급 관련 보도 직후, 구청 담당자는 어린이집에 현장조사를 나가 CCTV를 확보하고 사실확인서를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원아를 다른 어린이집으로 전원시키는 것을 막을 규정이나 지침은 없다는 점이다. 원아가 다 빠져나가면 사실상 폐원이다. 원아가 없는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구청에서 시설폐쇄나 운영정지 등 행정처분을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원장에 대한 자격정지나 자격취소 외에는 따로 처분을 내릴 수도 없다. 폐원으로 부정수급, 페이백, 아동 허위등록 등의 의혹을 다 덮으려는 의도가 보였다.

특히 이 어린이집은 원장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대여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구청은 명의를 대여한 자나 대여받은 자 모두 형사고발 할 수 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자격정지나 취소를 행정처분 할 수 있다고 했다.

취재에 들어갔을 때, 원장은 기자에게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떠날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다. 원장은 폐원하더라도 자격정지 등 처분받은 기간만 지나면 새로운 어린이집을 또 열 수 있다. 일명 ‘간판 바꿔 달기’가 가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이집을 다니는 원아와 학부모가 입게 된다.

제보자와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그리고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큰 용기를 내어준 제2, 제3의 제보자들도. 기자를 믿고 마음을 졸이며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증언해준 제보자에게 폐원 통보밖에 전해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앞으로도 많은 분이 용기 내 제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단시간에 모른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미비한 규정을 보완하고 어린이집 비리를 하나씩 근절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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