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일주일 만의 등교
[전학생은 명탐정] 일주일 만의 등교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8.11.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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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1장
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베이비뉴스
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베이비뉴스

“자, 들어가자.”

열린 교실 문 앞에서 선생님이 어깨를 부드럽게 밀었다. 하지만 내 두 발은 땅바닥에 풀로 붙여버린 양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떡 버티고 서자 잠시 당황했던 선생님은 슬며시 웃더니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선생님에게 손을 붙잡힌 나는 어어, 하는 사이에 교실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창피해서 망설였던 건데, 길 잃은 아이처럼 선생님 손을 붙잡고 들어가다니 두 배 더 창피해졌다.

선생님과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한여름 매미 떼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의 입이 일제히 닫혔다. 교탁 뒤로 돌아간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그렇듯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다들 활기차구나. 하긴 우울한 것보단 낫지.”

올해가 선생님 첫해인 정수연 선생님은 늘 웃는 얼굴에 우리들에게 좋은 말만 해줘서 인기가 많다. 근데 옆 반인 3학년 2반의 ‘불여우’ 김여운 선생님도 처음 몇 년 동안은 항상 싱글벙글이었다고 하니 우리 선생님도 언제 변신할지 모른다.

“참, 오늘부터 용재가 다시 학교에 나왔어요. 지난주 내내 독감 때문에 아파서 못 나왔으니까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해야 돼요?”

“잘해줘야 돼요!”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치며 나를 보는 바람에 아까부터 붉어져 있던 얼굴을 깊숙이 숙였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분위기가 이상해 고개를 들어보았더니 60개의 눈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허둥지둥 선생님 쪽을 보자 한 손을 든 선생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마도 이제 그만 네 자리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하신 모양인데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보지 못한 것 같다.

할 말도 없으면서 교탁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였을까. 나는 황급히 내 자리인 교실 맨 뒤로 걸음을 옮겼다. 이럴 때면 반에서 제일 큰 키가 원망스럽다. 맨 뒷자리까지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100미터는 걷는 기분이었다. 겨우 한 칸 앞까지 왔을 때 내 자리 앞 책상에 발이 걸려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웃는 소리에 아픈지도 모르고 벌떡 일어났다.

“저런! 조심해야지. 괜찮니, 용재야?”

선생님의 걱정 어린 물음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마침내 내 자리에 앉았다. 짝꿍 세영이 입을 가리며 쿡쿡 웃는 게 몹시 거슬렸다. 평소에는 대놓고 깔깔 비웃는 아이가 그래도 짝이 아파서 며칠 만에 나왔다고 하니 신경이 좀 쓰이는 모양이었다.

“좀 이따 얘기 좀 해.”

여전히 입을 가린 세영이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대꾸도 하지 않았다. 1교시 도덕책을 꺼내면서 얼른 집에 갈 수 있는 오후 2시가 오기만을 바랐다. 학교에 온 지 10분도 안 돼서 집에 갈 시간을 생각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도덕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다.

일주일 만에 듣는 수업은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듣는 둥 마는 둥 멍하니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변신 로봇 ‘타이탄X’와 그의 숙적 ‘이블 제노’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진지하게 고민해보려는 순간, 세영이 공책 귀퉁이를 찢어 만든 쪽지를 내 쪽으로 툭 건넸다.

‘너 정말 귀신 봤어?’

쪽지 내용을 보자마자 냉탕에 던져진 것처럼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날 밤 겪었던 무서운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얼른 고개를 흔들어 안 좋은 기억을 털어버렸다. 물론 그 정도로 일주일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공포가 훨훨 사라질 턱이 없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고작 그런 것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세영이는 정말 못된 아이다. 어떻게든 잊으려고 노력하는 짝의 마음도 몰라주고 자기 호기심만 만족하려 들다니!

나는 쳐다보기도 싫어진 세영을 무시하고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렸다. 좁은 운동장 너머로 막 이른 아침을 지난 동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올해부터 아빠라고 부르지 말래서)를 비롯한 아저씨들의 출근과 우리 같은 학생들의 등교가 끝난 지금 시간대는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동네 전체가 조용하다.

내가 사는 곳은 인천 남구의 우학동(友鶴洞)이다. 옛날에는 이 동네에 학이 하도 많아서 사람들하고 친구처럼 지냈다는 전설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맨 처음 동네 이름의 뜻을 들었을 때는 학하고 친구가 되면 뭐하고 놀까 궁금했었다. 학이 태워준다고 해도 등에 타고 하늘을 날기에는 학이 너무 작고 마른 것 같은데… 혹시 두세 살짜리 애들은 가능하려나? 물론 지금은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옛날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으로 코웃음을 칠 뿐이다. 그런 허황된 얘기를 믿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렸거든.

최근에는 학은커녕 참새도 잘 안 보이는 우학동에서 태어나 열 살인 오늘날까지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고 쭉 버티고 있다. 영화관도 없고, 수영장도 없고, 하늘 높이 솟은 아파트도 없고, 뭐 하나 제대로 된 놀 거리도 없는 이 동네가 아버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서너 층짜리 빌라랑 시끄러운 술집만 널려 있는 여기서 40년을 넘게 살다니 아버지는 재미라고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아버지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형(그러니까 나한테는 큰아버지)이랑 한 동네에서 오순도순 사는 게 좋아서 우학동을 떠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나도 그 덕분에 매일매일 사촌 형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그건 나쁘지 않다. 앗, 두 사촌 형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그중 둘째인 용수 형 생각이 나서 기분이 나빠졌다. 밉살맞은 용수 형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고, 일주일 동안 온몸이 아프고, 이불에 실례(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다)까지 했으니….

용수 형 때문에라도 얼른 우리 집이 우학동을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1교시가 끝났다. 이제 하나둘셋넷다섯, 애들이 왕창 몰려오겠지. 시끄러운 발소리와 함께 내 자리로 우당탕 몰려오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나는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에 했던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야, 용재는 내 짝이니까 내가 먼저 물어볼 거야!”

세영이 평소 짝이라고 잘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우선권을 내세웠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어이가 없는데, 나를 둘러싼 반 아이들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주춤거리며 세영에게 물어볼 기회를 양보했다.

“용재, 너 지난주에 귀신 본 거 맞지? 감기 때문이 아니라 귀신 보고 너무 겁나서 이불에만 처박혀 있느라 학교 안 나온 거라며?”

세영의 예의 없는 말에 화가 치솟았다. 내가 겁에 질려 일주일 동안 이불에만 처박혀 있었다고? 곧바로 세영에게 반박하려고 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분명 나는 지난주 내내 이불 속에서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겁에 질려 있었고, 밤마다 온갖 귀신과 괴물들이 앞다퉈 출현하는 악몽을 꾸었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기는 창피해서 입만 크게 벌리고 우물쭈물했다. 그때 얄밉기로는 세영이 못지않은 병호가 끼어들었다.

“아니야. 그냥 귀신을 보기만 한 게 아니라 처녀귀신한테 홀려서 밤새도록 우학산을 떠돌아다니다가 아침에 발견됐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너희들은 진짜 모르는구나.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가 사람으로 둔갑해서 용재를 자기 초가집으로 데려갔대. 정신을 차린 용재가 울면서 집에 보내달라고 하니까 간을 빼주면 보내주겠다고….”

우리 반 1등 스트라이커 원석의 말은 왠지 구미호 전설과 '별주부전'에서 토끼 간을 탐내는 용왕의 얘기가 합쳐진 것 같았다.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없이 듣다가 문득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나는 두 손을 마구 내저으면서 고함을 질렀다.

“다들 그만! 그런 거 아니야! 나,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은….”

드디어 내가 그날 밤 겪었던 일을 털어놓으려 하자, 개울가의 개구리 떼처럼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던 반 아이들의 입이 일제히 뚝 멎었다.

기대에 가득 찬 눈을 초롱초롱 뜨고 내 입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갑자기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하나도 모르는 애들이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갖고 노는 것 같아 무지하게 짜증이 났다. 또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왠지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날까 봐 걱정도 됐다. 이제야 겨우 안정을 찾고 학교도 나왔는데 또다시 무서운 기억에 시달리기는 싫었다.

말을 할 듯하다가 입을 꽉 다문 내가 답답해서였을까. 모든 아이들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지만 2교시 국어 종이 살렸다. 수업을 준비하느라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바람에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럽다, 용재야. 완전히 우리 반 영웅이네.”

가장 늦게 자리로 돌아가던 재호의 말이었다. 성격이 얌전하고 말도 남자애들 같지 않게 조용조용 하는 편이라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친구다. 평소 주목받을 일이 별로 없는 재호는 반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모은 내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런 게 영웅이라면 나는 절대 안 할래.”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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