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괴롭히는 ‘모성’… “엄마됨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까”
여성 괴롭히는 ‘모성’… “엄마됨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까”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11.20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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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12일 행복마을마더센터 강연 ‘엄마는 처음이지? 괜찮아’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서울 관악구 미성동 행복마을마더센터에서 지난 12일 오전 11시부터 연속 강연 ‘엄마는 처음이지? 괜찮아’ 두 번째 시간 ‘‘맘충’과 ‘참된 어머니’ 사이 : 엄마는 왜 괴로운가?’가 진행됐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우리 사회가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이중적입니다. 엄마를 ‘맘충’ 또는 ‘치맛바람’으로 칭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숭고한 모성애’를 강조하죠.” 

‘엄마’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엄마한테 받았던 부당함과 서운함이 생각나면서, 동시에 그 상처가 지금 내 아이와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그렇다면 모성은 왜 대물림 된다고 할까. 아버지는 없고, 엄마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걸까.

지난 12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관악구 미성동 행복마을마더센터에서 연속 강연 ‘엄마는 처음이지? 괜찮아’ 두 번째 시간 ‘‘맘충’과 ‘참된 어머니’ 사이 : 엄마는 왜 괴로운가?’가 있었다.

이번 강연은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에서 주최한 것으로 서울시 여성안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다. 최근 현안을 포함해 엄마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아, 성평등 교육(19일)·성교육(27일)·집단모성 워크숍(12월 3일) 등으로 기획됐다. 

연속 강연 ‘엄마는 처음이지? 괜찮아’를 맡은 조은영 경기여성지원센터 이사는 스스로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성평등’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모성’을 공부하게 된 계기를 “아이가 생기면서 ‘우울함이 어디서 오는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라고 밝혔다. 

모성 이데올로기는 학술적 용어로 ‘본질은 모성에 있기 때문에 모든 여성은 어머니가 돼야 하고 아이 양육에 가장 우선적인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다는 사회적 규범이자, 마음의 습관’이라고 정의한다. 모성은 타고나는 것이며, 여성이라면 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혼 여성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돌보는 것도 모성이라고 표현한다. 

◇ “우울감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엄마의 삶”

조 이사는 “모성은 여성을 괴롭게 만든다”고 말했다. 표준에 맞지 않는 아이를 배척할 때도 비난의 화살은 엄마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빠는 엄마만큼 괴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민하다”, “과민반응이다”, 나아가 “엄마가 모든 걸 받아줘서 그렇다”고 하기도 한다고 조 이사는 설명했다. ‘아이 때문에 괴롭다’는 말은 엄마 사이에서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프랑스와 미국에서 제2물결 페미니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여성의 욕구가 세상을 뒤흔든 시기였다. 임신중절, 코르셋 폐기 등이 여성의 자유를 갈망하는 움직임이이 때 있었다. 

같은 시기 미국 시인 아드리안 리치는 아이 셋을 키우며 느낀 모성과 모성 경험을 글로 썼다. 리치는 책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평민사, 초판 2002년)에서 아이 다섯을 살해한 엄마의 마음을 다른 엄마만이 이해한다는 점에 집중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지극히 정교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내 신경을 건드려 거덜 나게 만들고, 그들의 끊임없는 요구가, 단순하고도 인내심을 보이면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 요구를 못 들어준다는 데 대한 절망감, 내 운명에 대한 절망감을 마음속에 가득 채우며, 이건 내가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죽게 되면 그제서야 우리가 서로에게서 헤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런 때면 나는 사생활과 자유로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불임 여성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아드리안 리치)” 

조 이사는 엄마들이 느끼는 ‘자기 분열’적 감정을 설명하며 이스라엘 출신 사회학자 오나 도니스가 쓴 책 「엄마됨을 후회함」(반니, 초판 2016년)을 언급했다. 이 책은 ‘엄마가 되는 것에는 행복과 고통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왜 후회한다는 사람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행복마을마더센터에서 열린 연속 강연 ‘엄마는 처음이지? 괜찮아’ 두 번째 시간에는 엄마와 함께 강연을 듣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오후 2시면 벌써 두려운 기분이 들기 시작해요. 두 시간만 지나면 제2근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럴 때 드는 생각이 뭔지 아세요? 솔직히 말해서 ‘친정엄마가 없고 아이와 나만 있게 되면 어쩌나, 그러면 나 혼자서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데’ 그런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요. 하루종일 그래요. 이 기분과 매일 싸우는 거죠. (오나 도나스, 「엄마됨을 후회함」)”

사회에서는 엄마를 ‘완전한 여성’, ‘진정한 어른’이라고 지칭한다. 실제 엄마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조 이사는 “자기 분열과 모멸, 우울감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엄마의 삶”이라고 정리했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는 상실감도 경험한다. 

‘망각능력’도 상실하게 된다. 조 이사는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며 성장을 하지만 여성은 아이를 보면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며 “아이를 보면서 그 나이 때 나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산업화와 함께 만들어진 ‘모성’…신자유주의에서 ‘엄마 혐오’로 발전

엄마됨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모성애는 ‘후천적인 것’임을. 엘리자베스 바뎅테르는 책 「만들어진 모성」(동녘, 2009년)에서 “모성애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라고 정의했다. 

산업혁명 이후 유모 위탁이 늘고 모유수유율이 5% 정도로 떨어지는 등 봉건사회에 비해 아동 양육에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가 생겼다. 중상주의 정책으로 국가에 노동력이 필요해지면서 유아의 생존도 중요해졌다. 동시에 아이를 잘 키우는 문제에 국가가 집중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모성애라는 개념이 생겼다.

조 이사는 “이 시기에 남성과 여성의 본성이 다르다는 것이 이념적으로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남성이 외부에서 돈을 벌고, 여성은 가정에서 머물며 휴식과 양육을 담당하는 것이 이 때 정리된 남녀의 역할이다. 장 자크 루소는 책 「에밀」에서 “여성의 임무는 남성을 즐겁게 하는 것”라고 적었다. ‘학교’ 또한 이 시기에 나온 것으로, 아동이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할 만큼 교육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모성 담론의 특징은 ‘과학적’이라는 것에 있다. 과학적 모성담론은 일제강점기부터 자리를 잡은 것으로 ‘민족이 실력을 갖춰야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했다. 

조은영 경기여성지원센터 이사는 모성 경험의 확장 가능성을 드라마 '마더'로 제시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초기 모성담론은 이광수와 그의 부인 허영숙 등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들은 언론을 통해 “어머니들이 남성보다 해박해아 하고 지식까지 습득해야 한다”, “모성은 진실로 인류로서의 최고의 성직” 등의 글을 기고했다. 조 이사는 “이때도 모성에 이중적 잣대가 있었다”며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신식 엄마가 되라’고 하면서 ‘근대적 어머니가 가진 희생’도 바랐다”고 설명했다.

과학적 모성담론과 이중적 잣대는 팔구십 년대를 통과하며 또 다른 양상을 만들어냈다. 유래없이 고학력인 중산층 여성이 엄마가 되면서 ‘자기 관리’까지 엄마 역할에 추가됐다. 우리는 이들을 ‘미씨족’이라고 불렀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또 늘어났다. 아이들 곁에서 감정, 스펙, 학점, 취업, 결혼 등을 엄마가 관리하는 시대가 됐다.

조 이사는 “엄마들이 모든 것을 바쳤지만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며 “대학교에 가서 그때서야 방황하는 아이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엄마의 강력한 통제에 강남 지역 중학생 사이에서는 ‘엄마 혐오’ 정서가 크다고 조 이사는 설명했다. 엄마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 “모성 경험은 사회가 행복하게 변화할 가능성을 만든다”

아이를 다 키워놓으면 괜찮아질까. 이 질문에 참석자 모두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조 이사도 “엄마됨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나와 아이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돼 있다는 것은 행복이지만 큰 고통”이라고 덧붙였다. 

“모성 신화가 존재하는 것도 맞고, 그에 저항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모성 경험’이 여성을 풍부하게 만들고 모성애가 내 아이와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확장해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합니다.”

모성 경험은 가족 밖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조 이사는 지난 3월 종영한 tvN 드라마 '마더'를 모성 경험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했다. 

친엄마에게 버림받고 다른 엄마에게 키워진 한 여성(이보영 분)이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 아이를 유괴해 보살피면서 엄마됨을 느낀다는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다. 사람들은 여성이 아동의 친엄마가 아닌 것을 알게 되지만 그녀의 모성을 이해하고 도와준다. 

드라마 '마더'의 인물들을 두고 조 이사는 “(모성 경험은) 내가 낳지 않았어도 엄마와 자녀로 맺는 유대관계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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