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아빠가 없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왜 나는 아빠가 없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8.11.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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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아이를 위한 특별한 위로

“엄마, 왜 나는 엄마가 도시락을 안 싸주고 이모가 싸주는 거예요? 소풍 갈 때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가 도시락 싸주는데 나만 이모가 싸줘서 너무 슬퍼요….”

이렇게 말하는 딸의 입술이,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딸아이의 눈가가 내 가슴을 또 아프게했다.

처음으로 어린이집 종일반에 들어간 아이들은 삐그덕 문 여는 소리에 자기 엄마가 온 줄 알고 가장 반가운 얼굴로 쳐다봤다가, 자기 엄마가 아닌 걸 알고 또 금세 시무룩한 얼굴이 된다. 그 아이들 사이에서 당연히 자기는 언제나 꼴등으로 집에 가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 사랑이는, 그 아이들처럼 엄마가 일찍 올 거라는 기대가 처음부터 없었다.

집에서 먼 강남으로 일을 다니는 엄마는 '밤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엄마다. 딸아이가 '왜 엄마는 해가 떴을 때 회사에 가는 게 아니라 밤에 출근하냐'고 물어봤다. 딸아이에게 밤이 아니고 새벽이라고 대답해줬다. 나의 직업 특성상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나와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새벽은 그저 캄캄하고 어두운 밤일 뿐이라….

그런 엄마가 일을 그만두었으면 한다는 아이의 철없는 말. "그럼 엄마가 무슨 일은 했으면 좋겠어?"라고 물어보면, 자기 어린이집 선생님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엄마도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니까 우리 어린이집에 와서 가르치라고…. 엄마가 자기 어린이집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는 딸아이의 볼멘소리에 그저 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미안해, 사랑아. 엄마가 김밥 못 싸줘서 미안해. 그리고 용서해줘. 너 어린이집에 매일 혼자 늦게까지 기다리게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사과뿐이다.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참고 있는 딸에게, 참고 또 참으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엄마가 된 도리로서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엄마, 왜 나는 아빠가 없어?”

사랑이의 마음이 슬프다니, 기분전환 겸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1남 3녀. 남동생은 일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고 우리 세 자매와 친정 엄마 아빠를 모시고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사진도 많이 찍고 오랜만에 하는 가족여행이 모두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 사랑이가 흘리듯 얘기하는 게 또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엄마, 왜 나는 아빠가 없어…?”

말을 하기 시작한 다섯 살부터 사랑이는 항상 왜 자기는 아빠가 없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그날 사랑이의 질문은 달랐다. 진심으로 아빠의 부재가 마음속 상처가 된 듯 말하는 것 같았다.

그전에 했던 질문이 그냥 별 생각 없이 아빠와 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궁금함, 질투, 속상함에서 한 얘기였다면, 이번에 한 질문은 '나는 정말 아빠 없이 살아야 하나? 아빠가 없는 삶을 이제 받아들여야 하나?'라는 체념 혹은 단념에서 한 말이었다. 사랑이의 눈빛에서 그 진심과 상처들이 느껴져 더 가슴이 아팠다.

여행하는 동안 둘째 언니의 남편, 나에게는 형부, 사랑이에게는 이모부인 이 남자의 행동이 사랑이에게는 특별했나 보다. 사촌 언니와 오빠들에게서만 느껴지는 당당함과 아빠의 자상함. 모든 것들이 자기에게는 없었던 새로운 감정들이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한 질문이, 일곱 살이 된 지금 사랑이에게는 부러움과 속상함이 동반된 질문였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동안 투정 부리면서 물어봤던 질문들을 이제는 진심으로 비교하면서 말하고 있구나…. 아… 막막하다….'

이제 아이의 마음에, 아빠의 부재에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도 함께 자라는 듯싶었다. '새로운 방법으로 아이의 마음을 먼저 만져줘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더 고민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다가온 듯했다. 아이의 마음에 원망이 자라기 전에 먼저 알아서 아이 마음을 잘 챙겨주라는 ‘마음의 경고’인 듯싶었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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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무엇으로 채워줘야 할까

오랜만에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저는 사실 사랑이에 대해서 다른 것들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알아서 잘 가르쳐주시고 돌봐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건, 사랑이가 아빠의 부재를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입니다. 워낙 속이 깊고 잘 참는 아이라서 저에게 표현을 하지 않지만 어린이집 생활에서는 무의식적으로 표현이 될 거 같아서 궁금합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사랑이 담임선생님께서 조심스레 얘기하셨다.

"봄에는 사랑이가 미국에 있는 아빠를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항상 '우리 아빠 미국에 있다~'라고 아이들에게 자랑하며, 미국이 정말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름에 '아빠와 다시는 살 수 없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며칠 전 세계 여러 나라 국기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을 때 사랑이가 ‘나는 미국이 너무 싫어. 미국은 절대 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빠에 대한 원망의 감정들이 분명 생길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에게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 작은 아이의 가슴에 아빠에 대한 원망이 자라나는 걸 어찌 위로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에 아이에 대한 미안함 마음만 가지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고 애기하기에 아이의 가슴은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아이에게 매번 미안함 마음만 가질 바엔 현실적으로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두 가지의 감정들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아이의 마음에는 언제나 아빠의 부재가 가득할 텐데, 그것을 무엇으로 채워줘야 할지….

◇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을 특별한 위로의 시간

그런던 어느 날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언니와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언니도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언니였는데, 우연히 기회가 되어서 함께 만나는 자리가 생겼다. 언니를 만나기 전, 사랑이에게 새로 만나게 될 친구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사랑아 오늘 만나는 친구 원이는 너처럼 아빠랑 살지 않아. 원이도 너처럼 엄마랑만 살고 있어. 원이랑 너랑 상황이 똑같지. 너도 아빠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원이도 아빠가 보고 싶겠지. 그래도 너랑 원이는 아빠가 보고 싶어도 엄마랑 지금처럼 씩씩하게 살고 있고 또 노력하고 있어. 오늘 그 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놀았음 좋겠어.“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엄마 아빠가 다 있어서 손잡고 다닐 수 없는 환경이기에, 자기처럼 아빠 없이도 밝고 씩씩하게 자라는 친구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내가 선택한 있는 최선의 지혜로운 방법이였다.

'너만 아빠가 없는 게 아니야. 이 아이도 아빠가 없어. 어때? 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더 생긴 것, 정말 좋지 않아?'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 마음속에, 원이 마음속에 서로의 아픔을 알아줄 수 있는 시간, 이해할 수 있는 시간, 정말 특별한 위로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원이의 엄마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는 어색함 없이 서로의 상처를 끄집어내면서 실컷 욕도 했다가, 그래도 혼자 애 키우는 게 정말 기특하지 않냐며 우리끼리 자기 자랑도 하면서 했다. 말하지 않아도 같은 눈물을 흘렸을 우리였기에 그냥 함께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들. 세상이 정해준 기준에 나는 따라갈 수도, 같은 조건에서 출발할 수도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내 방법대로 사랑이를 위로해주고 힘을 주고 싶었다.

며칠 전 한쪽 팔이 없는 아기가 한쪽 팔이 없는 젊은 여성을 안아주는 기사를 보았다. 한쪽 팔이 없는 여자의 마음에 한쪽 팔이 없는 아기의 안김은 그 어떤 힐링보다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원이와의 만남은 사랑이에게도, 원이에게도, 나에게도, 원이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을 특별한 위로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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