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린아, 이 그림 생각나? 이때가 언제였지?”
“여섯 살 때요.”
“여섯 살에 수린이가 영어를 공부했었어?”
“유치원에서요.”
수린이 그림 ‘영어가 너무 어려워’를 보니까 수린이 여섯 살 때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수린이는 수민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유치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이십 분씩 영어수업을 했습니다.
“A가 웃고 있네?”
“A 배울 때는 좋았어요.”
“B도 웃고 있네?”
“B 배울 때까지는, ‘와! 신기한 글자가 다 있네!’ 하면서 재미있었어요.”
“C 표정이 이상한데?”
“C 배울 때부터 재미가 없었어요.”
“D는 화가 난 것 같은데?”
“D 할 때는 머리가 아팠어요.”
“E는 울고 있는 것 같아.”
“E 할 때는 울고 싶었어요.”
아아…. 다섯 살에 우리말을 시작했던 수린이. 또래 친구들보다 말이 느려서 유치원에서 하고 싶은 말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아 답답해하던 수린이에게 ‘영어’라니요. 영어 수업 시간, 수린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F는 얼굴을 가리고 있네?”
“.….
나머지 알파벳들은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여섯 살 수린이에게 뭐가 뭔지 분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수린아, 요즈음에도 영어가 어려워?”
“아뇨. 재밌어요, 엄청!”
열 살 수린이는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럼, 요즘엔 어려운 거 없어?”
“곱셈이요. 두 자릿수 곱셈이 자꾸 헷갈려요.”
열 살 수린이는 이제 수학이 어렵습니다.
“여섯 살에 어려웠던 영어가 열 살에 재미있어졌듯이, 열 살에는 어렵지만 열네 살쯤 수학이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수린이는 점점 더 잘 하는 아이니까, 엄마는 그럴 것 같은데?”
열 살 수린이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습니다. 영어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잘 하게 돼서 좋고, 지금은 수학이 어렵지만 언젠가 수학을 잘 하게 될 날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나 봅니다.
다섯 살에 말문이 트인 아이, 우리말이 서툰 여섯 살 아이에게 영어 수업을 듣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아이마다 때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다섯 살에 우리말을 시작한 아이라면, 열 살은 돼야 외국어를 배울 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수학이 어렵다는 수린이에게 수학 문제를 더 얹어주는 대신, 여유로운 시선으로 지켜보며 기다려야겠습니다.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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