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예산으로 민간위탁… '아동보호'는 누구 책임?
쥐꼬리 예산으로 민간위탁… '아동보호'는 누구 책임?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11.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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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그 후, 국가는 부재중①] 아동보호전문기관, 기관 수·인력 부족 심각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 하지만 세상의 관심은 자극적인 학대 내용과 행위자에 대한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피해자인 아동에 대한 사후관리와 대처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아동학대 사후관리 체계의 여러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 기자 말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복지법 제45조에 의거해 아동학대 예방사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간 연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의해 2001년 10월 설립됐다. ⓒ베이비뉴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복지법 제45조에 의거해 아동학대 예방사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간 연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의해 2001년 10월 설립됐다. ⓒ베이비뉴스

“밤길 조심해라. 목젖을 따버리겠다.”

“너희가 뭐라고 아동학대를 운운하냐.”

“너희가 왜 왔냐? 신분이 뭐냐?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고 우리끼리 해결할 일이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 상담원이 학대 의심 행위자들로부터 현장에서 들은 말들이다. 학대 피해아동을 찾아내고 보호하는, 말 그대로 아동보호의 최전선에 있는 상담원. 인력도 모자랄뿐더러 갖은 욕설과 폭언, 심지어 폭행과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최근 한 지역 아보전에서는 학대 피해아동을 가정에서 분리 조치한 것에 불만을 품은 아동의 어머니가, 항의를 하며 상담원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상담원은 3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실제 10년 넘게 아보전에서 일했고 조사팀장을 맡은 경험이 있는 두 소장과 전화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상담원들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까.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십여 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상담원들이 주장이다.

“학대 피해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기 위해 데리고 차에 탔어요. (학대행위자가) 따라와 차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아이를 내려놓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보전 근무지가 거주지역 내에 있을 때는 학대 행위자가 ‘네 가족도 무사하지 않을 줄 알라’고 말해, 가족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한 적이 있죠.”

유기용 전남 서부권 아보전 분사무소장이 21일 베이비뉴스와 한 통화에서 한 말이다. 유 소장은 본인이 십여 년 전 처음 상담원 일을 시작할 때와 지금 상황이 변한 게 없다고 털어놨다.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이라고.

유 소장은 “상담원도 가정에선 귀한 자녀인데 학대행위자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고 협박을 당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에 트라우마가 생겨 현장 대면의 어려움이 크다”면서, “특히 20대 중반 연령의 상담원이 많은데 학대행위자들은 미혼 여성 상담원에게 양육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않았으면서 뭘 안다고 그러느냐’ 무시하고 ‘어리다’는 이유로 욕설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강민숙 전북 서부 아보전 군산사무소장은 같은 날 베이비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동학대 신고가 늘고 있고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지만 현장에 나가보면 학대행위자나 의심자들은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아보전 상담원에 대한) 상해사건도 발생하고 욕설, 폭언 등은 늘 겪는 익숙한 일”이라고 전했다.

◇ “욕설·폭언·폭행 흔한 일… 매년 세 명 중 한 명 사직”

아보전 증설 및 상담원 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과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6만 5060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아보전 증설 및 상담원 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과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6만 5060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아보전은 지자체를 통해 위탁받은 민간법인에서 운영한다. 근무하는 상담원은 민간인 신분이다 보니 조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너희가 뭐냐? 공무원이냐?”라고 소리를 지르며 조사를 거부하거나 저항해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도 없는 게 현실. 

전국 지역 아보전 직원들의 업무량은 정규업무시간 연 1961시간(하루 8시간)과 비교해 거의 두 배다. 2017년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이하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아보전 상담원이 수행한 업무 총량을 산출한 결과 288만 6071시간으로 추정됐다. 1인당 업무량은 약 3853시간에 달한다.

한 지역 아보전에는 17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 아보전은 조사팀과 사례관리팀으로 나눠 운영한다. 강 소장은 “조사 전담 직원은 사무실에 앉기 어렵다. 아보전은 2인 1조로 3~4팀의 조사팀을 운영하는데, 신고가 많은 날은 전 직원이 다 현장에 나가더라도 다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담원 업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지만 피해아동, 학대 의심 행위자, 주변인을 만나려면 그들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 대부분 퇴근 이후 시간이 돼야 만날 수 있어 늦은 시간까지 상담이 이어지는 게 일상이다.

아동학대 업무를 함께하는 경찰의 경우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며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아보전은 오후 6시 이후로는 1명이 전화 당직을 서는 체계다. 야간이나 주말에도 신고가 들어오면 당직자와 보조당직자가 출동하고, 응급상황이면 응급조치 후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유 소장은 “새벽에도 경찰의 출동 요청이나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뛰어나간다. 기관뿐 아니라 경찰, 법원, 시설 등 연계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경찰과 법원에 처분 관련 행정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상담원 인력이 얼마나 증원되면 업무 과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상담업무 수행에 필요한 상담원 적정인원은 1477명이었다. 아보전 연간 업무처리 소요 시간 및 1인당 실질 연간 가용 근무시간을 적용해 타당한 적정 인력규모를 추정한 결과다. 하지만 실제 인력은 749명(2017년 12월 1일 기준)뿐. 결국 필요한 인력의 절반만 일하고 있고, 한 사람이 두 사람 몫 이상을 일하니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대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과 아보전 상담원이 동행 출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경찰서마다 아동학대 전담 경찰관은 한 명. 모든 신고에 동행하기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보고서 현장 조사 동행 현황을 살펴보면, 상담원 단독 현장 조사 5만 7333건(58.7%), 상담원·경찰 2만 2418건(22.9%), 경찰 단독 1만 3166건(13.5%), 상담원·경찰·공무원 3327건(3.4%) 순으로 나타났다.

어린이집이과 같은 기관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CCTV 분석도 필요하다. 어린이집 CCTV의 경우, 학대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최대 두 달 치를 확인해야 해서 시간 소모가 많다.

유 소장은 “상담원 개인 판단이 아니라 CCTV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자체사례판단회의 혹은 사례전문위원회의를 진행해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해 결과를 유관기관에 전달한다. 아보전 판단을 가지고 행정처분 하기보다는 사법기관 수사 과정을 반영해 행정처분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참 어렵다”고 말했다.

◇ “아보전 상담원 수, 업무량 적정인원의 절반뿐”

아보전 상담원들은 지난 7월 16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자료사진은 전북 서부 아보전 윤여복 관장. ⓒ전북 서부 아보전 제공
아보전 상담원들은 지난 7월 16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전북 서부 아보전 윤여복 관장. ⓒ전북 서부 아보전 제공

2018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의당 윤소하 의원(비례대표)은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10년간 4배 증가했으나 아보전은 동 기간 1.4배 증가에 그쳤고, 상담원 1인당 평균 상담 건수는 2016년 1546건, 2017년 1155건으로 연간 천 건 이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윤 의원은 그밖에 부족한 아보전 기관 수도 지적했다. 시도별 아보전 설치현황을 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아보전은 61개소(2017년 말 기준)로 한 기관당 평균 3.7개 시군구를 담당하고 있다. 지역은 행정구역이 넓어 학대 발생 시 신속한 지원에 한계가 있는 만큼 관련 전문기관이 더 촘촘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강 소장은 “전북 서부 아보전이 익산에 있는데 고창까지 관리한다. 왕복 3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미래세대 아동, 보호체계 강화에서 창의력 증진까지’라는 주제로 2018 육아정책 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시 이순기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부장은 ‘아동학대 관련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아동보호 공공성 강화 방향’에 대해 델파이 조사를 진행한 결과, “학대피해아동 시설확충(연령별, 특성별)과 아동학대 관련 예산확보, 아보전 증설, 인력확충 등이 높은 순위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아보전 상담원들은 지난 7월 16일 아보전 출범 이후 첫 집단행동, 1인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주요 내용은 “아동보호체계 구축, 아보전 기능 강화, 상담원 처우를 개선(인건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 당시 청와대 게시판에 아보전 인프라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상담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한 달간 진행해 6만 5060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아보전 기능 강화와 관련해선, 조사영역은 공공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강제성을 가지고 조치하는 역할을 하고, 민간에서는 동반자적인 관계로 다가가는 방법으로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민간 신분으로 조사를 하다 보니 저항이 크고, 사례관리를 조사와 동일한 기관에서 하다 보니 대상자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유다. 이들은 각각의 전문성을 가지고 제도적인 부분이 개편되길 바라고 있다. 전북 서부와 전남 서부권 지역은 지역이 넓어 분사무소를 설치하고 사례관리와 조사 전담을 분리했다.

왜 아보전 증설과 상담원 처우 개선은 실행되지 않을까. 문제는 예산에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상담원의 처우에 대해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 적용을 '권고'하고 있으나 임금은 1년 차 신입사원부터 20년 차 관장까지 모두 연 2703만 원. 호봉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동학대 예방과 사후관리 사업추진 부서는 보건복지부, 예산 편성은 법무부 범죄피해자 보호기금과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으로 이원화돼 있어 적정 예산 확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매년 상담원 세 명 중 한 명은 버티지 못하고 현장을 떠난다. 사직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중앙 아보전 관계자는 “현장조사와 사례관리 두 분야 모두 과중한 업무량과 긴 시간 업무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현장조사를 나가면 학대 행위자의 고압적 폭언, 폭행으로 신변 위협을 느껴 그만두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산하로 위탁운영 되는 중앙 아보전은 2018년 11월 현재 전국 62개 지역 아보전을 관리하고 있다. 지역 아보전은 지자체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서울시·서울 노원구·부산시 아보전 세 곳을 제외한 59개소가 민간에 위탁운영 되고 있다. 지역이 넓어서 관리가 힘든 세 곳(전북 1곳, 전남 1곳, 경남 2곳)은 분사무소를 설치해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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