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학습서’는 독서능력 키우기에 득일까? 독일까?
‘만화학습서’는 독서능력 키우기에 득일까? 독일까?
  • 칼럼니스트 권장희
  • 승인 2018.11.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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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육아 지혜바구니] 우리 아이 공부 잘하는 두뇌 만들기⑥ 

Q. 우리 아이는 집에 글자로 된 책들이 많이 있어도 늘 만화로 된 학습서만 보고 있어요. 학습만화도 독서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요?

A. 가정에서나 학교, 그리고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보고 있는 책들은 대체로 만화로 구성된 학습서들, 이른바 ‘학습만화’이다. 글자로 된 지식서, 과학정보서, 역사서 등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나마 글자로 된 책을 읽고 있다면, 판타지나 이야기 책 정도이다. 

집집마다 많은 책들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즐겨보는 책은 만화로 된 학습서들이다. 수십 번 본 학습만화를 다시 볼지언정 글자로 된 지식서적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이 눈앞에 있으면 책을 읽기가 어려운 것처럼, 학습만화가 눈앞에 있어도 글자로 된 지식서적을 읽을 수가 없다. 학습만화는 생각을 담당하는 두뇌영역인 전두엽을 거의 사용할 필요가 없다. 반면 글자로 된 책을 읽으려면 단어와 문장과 구조와 맥락을 끊임없이 연결하고 확인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우리의 본성은 편하고 쉬운 것에 기울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학습만화 앞에서 글자 책을 선택하는 것은 의지를 동원해야 할 힘든 일이다.  

부모는 ‘우리 아이가 책을 좋아해요. 독서가 취미입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독서를 좋아한다는 아이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 아이는 부모의 생각과 달리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눈을 감은 채로 이야기했다면 ‘이 아이는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었겠구나!’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눈을 떠서 보니 예상과 달리 5, 6학년이거나 중학생이다. 연령에 비해 아이들이 구사하는 어휘 수준이 낮아 순간 오해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은 학습만화일 뿐이다. 그리고 낮은 어휘 수준은 학습만화를 주로 보는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글자로 된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눈은 앞뒤의 문맥을 다시 살펴보면서 그 단어가 문맥 가운데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추론’하게 된다. 추론은 두뇌 전두엽의 주된 기능 중의 하나이다. 추론을 통해 낯선 단어의 뜻을 대략 알게 되고, 맥락 가운데 문장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전두엽의 ‘추론’ 기능을 통해 어휘를 확장하는 것은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이자 소득이다. 

고도의 전문적인 개념과 관련된 용어가 아니라면 책을 읽으면서 굳이 사전을 찾을 필요는 없다. 사전은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읽거나 공부할 때 찾아보는 도구이다. 우리말의 의미는 이미 알고 있지만,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영한사전을 찾아본다.

누구도 독서를 하면서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단어의 뜻을 확인하면서 책을 읽지 않는다. 우리말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면 영한사전을 찾아 그 단어의 영어 뜻을 찾아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국어능력이 낮은 아이는 영어실력도 향상시킬 수 없다.

학습만화는 두뇌 전두엽에서 ‘추론’ 기능을 수행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 학습만화를 볼 때를 생각해보자. 글발도 많지 않지만, 그나마 말 주머니에 있는 글을 읽다 보면 모르는 단어를 만나게 된다. 글자 책과 같이 문장을 다시 읽으며 문맥 속에서 그 단어의 의미를 추론해야 한다. 그런데 문장을 다시 보지 않고 눈은 이미 그림을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문장 속에서 단어가 갖는 의미를 추론하지 못한 채 다음 장면으로 눈이 옮겨간다. 그래서 학습만화는 반복적으로 보지만, 어휘는 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본 듯한 학습만화를 펴놓고 어렵다고 생각되는 단어를 찾아서 아이에게 그 뜻을 물어보라. 수십 번을 보았지만, 신기하게도 묻는 단어의 뜻을 설명하지 못한다. 학습만화 책들은 중간 중간 설명하는 장문의 글이 있다. 아이들은 이 글을 읽지 않는다. 아니 읽을 수가 없다. 그림을 중심으로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아이는 다음 장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장을 넘기기 바쁘기 때문에 한가하게 설명문을 읽을 여유가 없다.

요즘 어머니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아이가 책을 읽다 말고 엄마에게 단어의 뜻을 자주 물어온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단어의 뜻을 말해줄 필요가 없다. 단어의 뜻을 설명해준다 해도 소용이 없다. 추론을 통해 스스로 단어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단어의 뜻을 물어오면 이제부터는 이렇게 대응해보자.

“그 단어의 뜻이 궁금하구나. 엄마에게 그 단어가 들어 있는 문장을 한번 읽어주렴.”

그러면 아이는 소리 내어 자신이 잘 모르는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주의 깊게 다시 읽을 것이다. 엄마가 단어의 뜻을 알려주기 위해 읽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다시 한번 천천히 해당 문장을 읽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구나! 그런 문장 속에 나오는 단어였네. 네 생각에는 그 단어가 대략 어떤 의미이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물으면 아이들은 나름의 생각을 동원하여 설명을 한다. 그리고 그 설명은 대부분 맞다. 왜냐하면 그 문장에서는 그 단어의 뜻은 아이가 설명한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휘는 이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책을 잘 읽는 아이들은 어휘력이 뛰어나고 문장 이해력이 높아 공부도 잘하게 된다. 

다시 읽어보고도 단어의 뜻을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는 추론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앞장의 내용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글을 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에는 읽던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엄마와 함께 앉아서 첫 장부터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어가기를 권한다. 함께 천천히 한 단락씩 순서대로 읽어가면서 흐름을 이해하다보면 질문했던 단어가 있는 문장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아이는 그 단어의 의미를 추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학습서를 만화로 볼 때와 글자 책을 읽을 때, 두뇌 전두엽에서 ‘추론작업’이 다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연구자가 있다. 일본 도호쿠대학의 가와시마 교수는 만화를 볼 때의 뇌(전두엽) 활동과 책을 읽고 있을 때의 뇌활동을 첨단장비를 이용해서 영상으로 확인하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뇌가 전면적으로 활성화되었지만, 만화를 보고 있을 때에는 매우 부분적으로 활성화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비디오게임을 할 때의 뇌활성화 정도도 함께 측정했는데, 만화를 볼 때와 비슷했다. 만화를 볼 때나 비디오게임을 할 때에는 두뇌 전두엽에서 추론이나 상상력이 동원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영상촬영 결과도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일본 도호쿠대학의 가와시마 교수가 확인한 뇌활동 영상 ⓒ권장희
일본 도호쿠대학의 가와시마 교수가 확인한 뇌활동 영상 ⓒ권장희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하도 책을 읽지 않아서 학습만화라도 읽혀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책을 못 읽는 것이다. 책읽기를 담당하는 두뇌의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뜻이다. 어휘가 부족하고 문장을 해독하는 능력이 발달되지 않아 글자로 된 책들을 읽어내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글자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단기처방으로 학습만화만 읽게 하면 어휘가 확장되지 않고 추론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독서능력이 점점 떨어져 책을 더 멀리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뇌 속에 책을 읽는 ‘도서관’을 잘 지어내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학습만화를 모두 없애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의 가장 큰 적은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것에 만족하여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격언이다. 학습만화가 나쁘기 때문에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 학습만화도 학습의 1단계인 사실을 확인하고 설명하는 지식을 얻는 정도의 역할은 한다. 그러나 학습만화는 추론을 통해 지식을 확장하고 어휘를 늘리며, 문장이해력을 넓히고 상상력을 키워가는 두뇌 전두엽을 자극하여 발달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비록 학습만화가 좋은 것이라도 없애는 것이 좋다.

집에 한 번도 보지 않은 학습만화는 없을 것이다. 한 번 이상 보았다면 그 책의 사명은 다 한 것이다. 충분히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보지 않은 학습만화가 있다면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학습만화를 책장에서 꺼내 치워버리자. 그리고 지식서, 역사서, 과학서, 정보서들만 남겨두자. 그러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글자 책을 읽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학습뇌가 발달하게 되어 공부도 잘 할 것이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라면 학습만화를 치우고 대신에 아이의 연령보다 약간 쉬운 책을 읽도록 도와주자. 학습만화보다는 어렵지만, 어휘가 쉽고 문장도 길지 않은 쉬운 글자 책을 선택하여 읽게 하자. 아이가 5, 6학년이라면 3, 4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관련 책을 읽게 하고, 3, 4학년 아이가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1, 2학년 수준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주자. 

쉬운 책을 읽다보면 점점 어휘가 늘어나고 책을 읽어내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어지기 때문에 머지않아 자기 학년에 맞는 책도 읽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연령보다 더 높은 수준의 어려운 책도 읽어낼 것이다. 이렇게 독서능력이 자란만큼 공부도 잘 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권장희는 교직생활을 거쳐 시민운동 현장에서 문화와 미디어소비자운동가로 청소년보호법 입법을 비롯해, 셧다운제도 도입,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활성화, YP활동(청소년스스로지킴이, 미디어교육활동) 개발 보급 등을 해왔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 중독예방을 위한 민간교육기관인 사단법인 놀이미디어교육센터를 설립해 기쁘게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아이 게임절제력」 「인터넷 게임세상 스스로 지킨다」 「게임 스마트폰 절제력」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구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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