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저녁이 있는 삶
아이들과 저녁이 있는 삶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8.12.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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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아빠가 출장 간 2주①

남편이 출장 간 2주, 아이들은 생각보다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했다. 깨우면 순조롭게 일어났고 밥도 잘 먹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일도 남편 말처럼 어렵지 않았다. 온갖 어리광을 받아주는 '다그래' 아빠와 안 받아주는 '단호박' 엄마의 성격을 아이들도 아는 거겠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지 않나.

그런데 아빠와 엄마가 차이 나는 결정적 한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운전이다. 나는야 10년 차 장롱면허 소유자. 차로 학교에 데려다줄 수 없으니 아이들은 걸어야 했다. 다행히 걷기 좋은 가을이었다. 낙엽 깔린 길을 걸으며 산책하듯 걸었다.

“걷는 게 힘들지 않아?”라고 물으니, 운동도 되고 좋다는 큰아이. 오히려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줄 때보다 일찍 등교할 수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도 돌고 좋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운전을 못해 아침부터 힘들게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미안한 마음이 싹 가셨다. 오히려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길.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 ⓒ최은경

그렇게 매일 아이들을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서둘러 집으로 와 컴퓨터를 켰다. 회사에는 당분간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말해둔 터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 일이 재택근무 할 수 있는 직군이라 다행이다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집에서 하루 9시간 근무가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시댁으로.

저녁을 먹이고 집으로 데려와 평소보다 긴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빠가 있을 때 우리 가족이 만나는 시간은 저녁 8시였다. 밤 11시에 잔다고 치면 하루에 함께 있는 시간이 고작 2, 3시간 남짓인 거다. 아이들이 자고 일어나면 일찍 출근하는 나는 없을 때가 많고.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게 미안할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없던 2주 동안은 저녁 6시 반이면 가족이 모일 수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가족이 함께 있는 짧은 시간에 대부분 텔레비전이 켜져 있을 때가 많았는데, 나랑 있을 때는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가 더 많았다. 텔레비전을 켜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 잘 놀았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로웠다.

“근데, 신기하다.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을 튼 적이 없네? 안 그래?”

“그러네… 집에 오면 아빠가 텔레비전을 켜니까 늘 그냥 보게 되는 건데.”

“니들이 트는 게 아니고?”

“아니야.”

영상통화로 팩트체크. 남편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남편은 아이들 때문이라고 하고, 아이들은 아빠 때문이라고 하고. 누구 말이 맞나 싶지만, 내가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은 그냥 장식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틀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아이들이 체념하게 된 걸지도. 그때였다. 큰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가 저녁에 집에 있으니까 되게 안정적인 것 같아. 숙제나 이런 것들이나 학습지 같은 뭔가 해야 될 일을 알아서 하게 되는 것 같아, 아빠가 있을 때와 다르게.”

“그래? 좋은 일이네. 그런데 엄마도 저녁에 이렇게 너희들과 시간을 오래 보내니까 좋다. 마음도 편안하고. 아침에 너희들 학교 데려다주는 것도 좋더라고.”

큰아이는 5학년. 육아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손을 좀 덜어도 될 만큼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어릴 때는 어린 대로, 또 크면 큰 대로 엄마가 언제나, 여전히, 계속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지난 여름방학이 생각났다. 작은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방학을 맞아 두 아이가 할머니네 집에 있기 시작하면서 신경 쓰일 때가 많았다. 애들이 온종일 텔레비전, 유튜브, 핸드폰을 하고 있다고 해서 더 심란했던 거 같다. 왠지 직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애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아이들의 행동도 이해는 됐다. 이번 여름은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 수 없을 만큼 지독히도 더웠으니까. 학원에도 가지 않는 아이들이 그 많은 시간 동안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뻔했다. 내가 집에 있는다고 크게 달랐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 달리, 마음은 천불이 나고 속상했다. 그렇다고 당장 학원을 억지로 밀어넣을 수도 없고(그럴 마음도 없고). 또 내가 방학 내내 휴가를 쓸 수도 없고. 답이 없으니 불편한 마음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듣자니 이번 겨울방학은 무려 2019년 1월 8일이란다. 방학을 늦게 하는 대신 개학이 무려 3월 2일이다.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 수업을 겨울방학 전에 다 하고 3월까지 쉰다는 거다. 오 마이 갓. 이때 나는 결심하게 된다. 두 번째 육아휴직을 써야겠다고.

육아휴직은 애들 어렸을 때나 쓰는 게 아니냐고? 천만이다. 올여름, 내가 느낀 그 비참한 기분. 다시 두 달 동안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마음을 이리저리 달래가며 보내고 싶지 않다. "엄마가 있어 안정적인 것 같다"는 내 아이들도 그럴 거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 방향도 출산 장려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바뀐다고 하지 않나. 남편의 출장으로 인한 '아이들과의 저녁' 시간이 나에게 준 깨우침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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