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할 거야"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할 거야"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12.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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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일곱살 인생]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며칠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퀸(Queen) 콘서트를 보고 나온 기분이라고 하더니 그말이 정말 맞았다. 평소에 흘려듣던 노래들이 귀를 압도하며 마음을 쿵쿵 때렸다. 프레디 머큐리는 무언가를 더 알았구나. 저이의 섬세함 덕분에 이렇게 멋진 노래를 듣는 거구나.

예술가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도장 찍듯 생각하고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을 보며 예술가는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다시 느꼈다. 주관, 고유한 생각, 색깔, 흔들리지 않음. 그런 단어들과 어울리는 사람. 결국엔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묵묵히 흘러가는 강물 같은 사람이 예술가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쉽게 예술가이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술가적 마인드는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고, 또 필요하다. 어쩌면 부모가 되는 건 자의 반 타의 반 예술가가 되는 것과 다름없다. 아이를 키울 때도 20년 가까이 밀고 나갈 자신만의 색깔, 육아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숨겨진 기질을 조심스럽게 파악하듯 부모로서 우리는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예술가적 기질을 끄집어내야 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연한 완두콩 같은 발가락을 만지다가 종종 나를 덮쳐오는 어찌할 도리 없는 막막함과 외로움을, 무대에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목청껏 노래하는 저 가수처럼 이겨낼 각오도 해야 한다. 부모라는 왕관은 생각처럼 가볍지가 않다.

◇ 엄마의 기쁘고 슬픈 눈

엄마가 되고 나서 영화를 보면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들이 그 전과 달라지는 걸 느낀다. 영화 속에 아이가 등장하면 유심히 보게 되고, 어느 가족의 부대낌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삶이 보인다. 그 안에서 그려지는 가족의 모습이 실제와 얼마큼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보헤미안 랩소디' 노래 도입에서, 프레디가 'mama(마마)'를 어떤 심정으로 불렀는지 짐작하게 된다.

영화 속 프레디의 엄마는 항상 그를 애잔하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보수적인 아빠와 각을 세울 때도, 아무런 상의 없이 가족의 이름을 버렸을 때도. 친구를 소개한다며 '애인 같은 남자'를 데려와 가족 모두가 거실에 둘러앉은 묘한 분위기 속에서도 엄마는 마치 제 살을 떼어내듯 직접 만든 음식을 내온다. 평범하지 않아 외로웠을 그에게 음식을 권하는 엄마의 눈빛은 언제나 따뜻했을 것이다.

어느새 세상의 고유명사가 되어가는 아들은 이제 부모의 품이 좁다. 그런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언제나 부모가 예상하는 바를 뛰어넘는 이 속수무책인 아들에게, 엄마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눈빛을 준다. 선망하고 열광하고 때로는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아들을 흔들림 없이 지켜보았을 젖은 두 눈동자.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지난 삶을 부정해야 할 때, 프레디는 가장 먼저 'mama'를 부른다.

◇ 자식을 위해 자신을 놓아야 할 때가 있다

단정하게 옆으로 빗은 머리, 구김 없는 양복, 안경 너머의 굳은 표정. 가훈으로도 손색없을 "좋은 말,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아빠와 거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같이 날것인 아들은 좀체 가까워지지 않는다. 아빠가 바라고 원하는 삶을 아들은 한 톨도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아빠는 모른 체한다. 아빠는 항상 아들이 못마땅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아빠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잘못 화를 내었다가는 사랑하는 아들이 품에서 완전히 튕겨나갈까봐 그는 최선을 다해 꼿꼿하다. 내 자식이 이렇게 훨훨 날아가버리려 한다면, 그 너머가 어떤 삶일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어른이라면, 저리 무표정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먼저 등을 돌리는 건 아빠가 아니라 언제나 아들이다. 합이 잘 맞춰진 연극처럼 두 사람이 서로를 등지는 일은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프레디가 그의 특별한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인사시키던 날, 집을 나서려는 아들이 평소처럼 등을 돌리려 하자 아빠는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두 팔을 벌려 마주 선 아들을 품에 안는다. 결국엔 자식을 위해 자신을 놓는, 시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늙은 아빠.

자식의 삶의 무게를 부모가 대신 짊어질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어딘가 저릿하니 아파왔다.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무서운 선고를 받는 것처럼 망연해지는 일이라는 걸 부모가 되니 알 것 같다. 언젠가 반드시 그때가 오리란 것도.

◇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할 거야"

따지고 보면 진부한 설정들이다. 젊은이가 우연한 기회로, 자신이 갖고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펼친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엄마는 따뜻하다. 승승장구하던 예술가는 슬럼프에 빠진다. 사람과 건강을 잃고 후회한다. 그리고 재기한다.

그럼에도 성공한 예술가의 자취를 좇는 건 흥미롭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할 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를 차돌 줍듯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을 디자인하는 '예술가로서 나'를 만나고 싶어진다. 이제는 결코 혼자가 아닌, 세 사람 몫만큼 묵직해진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네 삶의 주인으로 살기를. ⓒ 신은률
네 삶의 주인으로 살기를. ⓒ신은률

얼마 전, 유치원 상담을 다녀왔다. 선생님께서는 연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고, 연이의 감정에 대해 많이 물어주기를 권하셨다. 연이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친구가 상처를 받을까봐, 혹은 주변을 의식해서 입을 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연이가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좀 더 솔직할 수 있기를 바라셨다. 내 어릴 때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연이가 더 애틋해졌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연이도 엄마처럼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터득하게 될 것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다만, 소망이 있다면 연이가 커가면서 주변보다는 자신에게 더 집중하기를.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늘 자문하기를. 연이 나이만큼, 엄마로서 짧은 경력을 쌓아가는 나에게도 바란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기를. 그리하여 더 단단한 눈으로 아이를 지켜볼 수 있기를.

나를 규정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라고, 용기 있게 말하는 엄마. 동시에 "나는 나"라고 얘기할 연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 연이가 무엇이 되길 바라기보다 무엇이든 되어도 좋다고 믿어주는 엄마. 이름이 알려주듯 언젠가 훨훨 날아갈 연(燕)이를 생각하며, 제 깜냥을 믿는 예술가처럼 내 보통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고 싶은 날이다.

*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일 년에 절반은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드라마PD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일곱 살, 다섯 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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